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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1년인가로 기억이 되는데 추석 때 인가보다. 결손가정 아이들을 위한 잔치가 있었다. 아무개 국회의원이 1톤 트럭에 라면을 한 차 싣고 왔다. 아이들과 관계자와 사진을 찍는데 아마도 20분도 더 걸렸나보다. 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 라면상자를 옮기는데 아무래도 상자가 너무 가벼웠다. 뜯어보니 상자 안에는 라면이 반씩만 들어 있다. 복지관의 여직원 두 분은 털썩 주저앉아 울고 우리는 어이가 없어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웃고 서 있었다.

 

라면 한 상자를 두 상자로 만들어 생색을 두 배로 내려했던 사람 같지 않은 사람, 아무개 국회의원 당신 말입니다. 그렇게 천박하게 사는 거 아니라오. 차라리 어린애 엉덩이에 묻은 밥알을 떼어먹고 말지, 그렇게 천박하게 사는 것 아니올시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도 없다오. 우리는 말입니다 그들의 자존심도 귀하게 여겨가며 그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려고 무진 애를 쓴다오.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나 매달 얼마씩을 기부하면서도 우리는 그들을 동정하거나 도와준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보다 조금 더 가지고 있는 것 조금씩 나눈다고 생각할 뿐이지요.

 

암튼 그 잘난 라면상자 때문에 당신은 다음 선거에서 떨어졌지만 나는 당신 같은,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국회의원에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구조적으로 잘못된 시스템이라 생각을 합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개과천선해서 그렇게 천박하게 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늘 제가 속이 많이 상해서 옛날 얘기까지 끄집어내며 속을 다스렸습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당신이 다음에 또 국회의원에 출마한다면 내 목숨 걸고 당신을 홍보하고 다닐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하늘은 지랄맞게도 푸르고 높건만 이 글을 쓰면서 왜 이리도 분하고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 이 놈 자식들 아침밥은 먹었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 동네 복지관 행사를 다녀왔다. 소년소녀가장모임인데 오랜만의 참석이라 모르는 얼굴이 많이 보였다. 그래도 기분이 좋은 것이 아저씨 오셨다고 양팔을 붙잡고 늘어지며 이 녀석 저 녀석 초콜릿을 입에 넣어주고 그런다. 아직도 입안이 달달하다. 각설하고 우리 아이들 얘기나 해볼까한다.

 

계절 따라 아이들을 위한 야유회와 잔치가 있는데 이 아이들에게는 특징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음식이 아무리 많아도 끊임없는 식탐이요, 또 하나는 아무리 흥겹고 즐거운 잔치라도 웃는 얼굴 속에 남모를 그늘이 있다는 것이다. 식탐은 어떻게든 해결을 할 수 있겠으나 웃음 속에 숨겨진 그늘은 가슴을 쓸어내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기가 막힐 일이다.

 

몇 해 전 모 복지시설에 영정사진을 600여개를 무료로 찍어서 드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사회복지관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영정사진 찍어주는 파트로 3년여에 걸쳐서 1000여분을 무료로 찍어드린 적이 있었다. 당시 복지관에서 행사장 주변에 모모사진관 협찬이라 쓰인 현수막을 내걸었다. 부랴부랴 복지관 관계자를 찾아가 현수막에 저희 사진관 이름을 지워 주십사 하고 부탁을 드렸다. 이 순간 나는 바보가 되었다.

 

행사 당일 다른 봉사자들로부터 역시 왕따를 당했다. 그들은 현수막에 자기들의 업체 이름이 걸린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봉사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여 주최 측에서 액자로 넣어 홍보용으로 나누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복지관 측에서는 그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다.


나는 나의 영정사진 찍는 모습이 복지관에 걸리거나 현수막에 모모 사진관 협찬이라는 글귀가 들어가면 사진을 안 찍겠노라 한터이니 그저 할머니들의 주름진 손의 온기로 데워진 따듯한 박카스 한 병이면 족했다. 그런데 함께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왕따는 무엇이던가? 내가 뭘 그리 잘못을 해서 그들에게 미움을 받았는지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내가 세상을 바로 보지를 못하는 가보다. 내가 세상을 사는 방법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저 그렇게 어울리고 살아야할 것을 맑은 물에만 사는 물고기는 커다란 물고기가 없다는 것을 왜 몰랐던가? 그렇다고 내가 맑은 물에서만 노는 물고기라는 뜻은 아니다. 어찌 되었든 내가 세상사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나의 잘못된 세상사는 법을 내 자식들에게도 가르치고 있으니 이것이 문제라면 큰 문제이다. 요즘은 영악해야 잘 산다고 하던데 말이다.


태그:#복지관, #연말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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