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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른다. 은행 털기보다 은행 까기가 더 신난다는 것을. 하기야 나도 이번 일을 하기 전에는 몰랐으니.

 

며칠 동안 마당에 수북이 쌓여 있는 은행봉투들이 눈에 밟혔다. 일을 시작하자니 엄두가 안 나고, 안 하자니 언젠가는 해야 될 거 같고. 드디어 오늘(16일) 아내가 직장을 쉬는 날에야 결단을 내렸다.

 

"여보, 어차피 할 거 내가 먼저 시작하지."

 

아내가 잠시 어안이 벙벙하다. 며칠 전 '은행줍기 대작전'으로 집에 쌓아둔 은행자루에 아내보다 내가 먼저 일에 손을 댔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일은 아내가 먼저 시작하고, 나는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따라서 시작하는 게 그동안의 관례였다.

 

"아들하고 추억도 쌓을 겸 둘이서 먼저 할 테니 당신은 좀 이따 하지 뭐."

 

뭔 큰 선심 쓰듯 내가 은행봉투를 뜯어 다라에 담았다. 하나둘 쏟아 부으니 어찌나 많던지. 사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릴 줄 미리 알았더라면 먼저 시작도 안 했으리라. 원래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안 해봤으니 겁도 없이 먼저 시작했다.

 

아들과 나는 마당 수돗가에 의자를 두 개 갖다 놓고 편안히 앉아 시작했다. 수돗물을 받아서 통에 은행을 담아 주물럭거렸다. 은행 겉이 터지고 속 알만 튕겨져 나오게 한다. 씻어서 담는다. 며칠 전 은행을 무작정 쓸어 담았기에 은행보다 은행잎이 더 많아 작업이 순조롭지 않았다.

 

"아빠. 이제 100개 깠으니 9만 9천 9백 개만 까면 되죠."

 

아들 녀석이 농담을 해온다. 이때 까지만 해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여유로움이 있었다. 좀 이따 아내가 마당으로 나왔다. 아들과 내가 몇 개씩 주물러서 까는 걸 보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아마도 아내의 눈엔 장난치는 걸로 보였을 게다.

 

"아니, 그래가지고 언제 다해요. 나 참. 어째 당신이 먼저 시작한다 했다."

 

분위기가 역전되었다. 아들과 나의 평화로운(?) 분위기는 아내가 투입되면서 전쟁의 분위기로 바뀌었다. 흡사 북한의 '천 삽 뜨고 허리 펴기' 운동처럼.

 

"당신은 물 받아서 은행잎을 다 골라 내줘요. 골라 낸 은행을 소쿠리에 퍼 주면 내가 다 주물럭거려서 알을 빼낼 테니."

 

아내의 작업 감독에 졸지에 실직자(?)가 된 것은 아들 녀석이었다. 아들이 봐도 만만찮은 작업 같으니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아내도 아들이 가서 쉬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분위기였다. 이제 아내의 통치하에 들어간 나는 꼼짝 없이 '마님의 돌쇠'가 되었다.

 

물을 받아 조그만 소쿠리로 은행잎을 거둬냈다. 거둬 낸 그 은행잎을 바로 옆에다 버렸다. 다른 집 같으면 어림도 없겠지만, 우리 마당은 마당 수돗가 옆이 정원 아닌 정원이라 모두 거름이 되게 버렸다. 아내는 내가 건네 준 은행을 뽀드득 씻어서 깠다. 그 작업은 한 번에 되는 게 아니었다. 수차례 거듭해야 겨우 깨끗한 은행을 얻어냈다.

 

"여보, 이 일 신나지 않아?"

 

아내가 자신의 기분을 나로부터 동의를 구한다. 굳이 그러고 싶은가 보다.

 

"어, 머…. 그래. 한 번 시작하는 걸 싫어하지. 막상 시작하면 내가 언제 일 재미없게 하는 거 봤남."

 

나의 어색한 변명이 이어졌다. 아내는 은행 줍는 것보다 은행을 까고, 이 은행을 이웃과 나누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사람들을 모를 거라고 확실히 못을 박는다.

 

나로선 솔직히 이런 일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아내의 그런 마음이 좋고, 그런 마음을 쓰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좋다. 아내가 좋아하니까, 나도 좋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일을 먼저 시작하지는 않지만, 일단 아내가 시작하면 기꺼이 동참하는 편이다. 이런 나를 잘 아는 아내는 나를 믿고(?) 일을 벌이고, 결국 같이 일을 끝내곤 한다.  

 

한참을 이러고 있으니 놀러온 처형도 나섰다. 처형이라 함은 아내의 언니이고, 언니는 아내보다 연장자이니 또 새로운 감독의 부임이 있은 셈이다. 아내보다 더 일 잘하는 처형의 투입은 바로 돌쇠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3단계로 분업이 이어졌다. 나는 예전 그대로 하면 되었다. 아내는 투박한 은행을 주물러서 터뜨리고 씻어내는 작업이었다. 처형은 최후로 그 은행들을 받아 여러 번 씻어 내어 깨끗한 은행 알을 일구어냈다. 한 사람이 은행을 까대다가 두 사람이 하니 바빠진 것은 나였다. 부지런히 은행잎을 거두어 내고, 그 은행을 소쿠리로 퍼서 담아주고. 사실 허리 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일을 신나게 만들었던 것은 우리의 대화였다. 일을 하면서 우리는 시종일관 웃었다.

 

"은행이 이렇게 많으니 우린 재벌이네."

"우리 보다 부자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아무나 은행을 이렇게 쥐락펴락 못 할 거여. 우리니까 가능하지."

"지구별 모든 은행이 바로 우리 손 안에 있소이다."

 

일을 하다 보니 아들과 내가 얼마나 겁없이 덤벼들었는지 실감이 갔다. 쉬운 일이 아니다. 베테랑 세 사람이 다부지게 덤벼들어 일을 하는 데도 시간과 힘이 꽤나 들어간다. 두 시 쯤에 시작해서 오후 6시가 넘어갔다. 드디어 마당에 바깥 전기불이 켜졌다. 말로만 듣던 야간작업이 시작되었다. 벌려 놓은 것만이라도 마무리 지으려는 마음이 작용했다.

 

"일은 가속도가 붙었을 때 바짝 해야 더 잘해내는 겨."

"혼자 하는 것보다 이렇게 셋이서 하면 수십 배로 능률이 오르지."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하는데, 오늘 이일도 손발이 맞으니 진짜 재밌네."

"사람들은 모를 거여. 이런 수고를 해서 나누는 재미를."

"아이들도 옆에서 지켜봤으니 은행 한 알 먹어도 쉽게 생각 안 하겠지."

 

마무리 지어가는, 그래서 조금은 지친 우리 세 사람. 하지만 서로를 위로하는, 아니 자신을 위로하는 설교(?)들을 내뿜는다. 6시가 넘어서야 일이 끝났다. 그나마도 다 마무리 짓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은행을 주워 왔는지 말해주는 대목이다. 같이 놀러온 조카가 집 뒷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은행 알을 쌓아 놓았다.

 

"얼마나 많이 했는지 보러 가야지."

 

모두들 자신이 오늘 해 놓은 일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자신에게 위로할 거리를 찾아 은행에게로 갔다.

 

"우와. 많이도 했다. 했어."

 

그 다음 날, 대형마트에 가서 보니 은행 한 주먹에 거의 5천 원했다. 그럼 우리가 그날 저녁에 해낸 은행은 돈으로 환산하면 도대체 얼마일까. 모르긴 몰라도 100만원은 훨씬 넘지 않을까 싶다. 하기야 돈으로 환산해도 사지 못할 귀한 가치가 듬뿍 담긴 은행이긴 하지만.


태그:#더아모의집, #은행,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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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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