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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C노조가 점거농성 중인 1공장의 모습. 경찰병력이 공장 주변을 지키고 있다.
 KEC노조가 점거농성 중인 1공장의 모습. 경찰병력이 공장 주변을 지키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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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제발 제대로 좀 써주세요."

1일 경북 구미 KEC 공장에서 만난 노조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파업이 언론에 타임오프(유급근로시간 면제 한도) 때문이라고 보도되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공장점거와 금속노조 구미지부장의 분신 사건이 주요하게 보도됐지만, 분쟁 원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조는 현 사태의 가장 큰 문제는 타임오프가 아니라, '이유 없이 교섭에 나서지 않는' 사측이라고 주장했다. 드럼통에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선 민주노총 조합원들 역시, KEC 노사 문제가 사회적 논란으로 번질 만한 사안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이들은 지난달 22일 공장 점거 농성에 들어가고, 노조 지부장이 분신까지 한 것일까.

"20년 동안 분쟁 없었다. 타임오프 빌미로 구조조정 하려는 것"

지난 28일 저공비행하는 경찰헬기 바람에 무너진 KEC노조 가족대책회의 천막. 이날 3명의 임산부가 부상을 입었다.
 지난 28일 저공비행하는 경찰헬기 바람에 무너진 KEC노조 가족대책회의 천막. 이날 3명의 임산부가 부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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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방문한 공장정문 앞에는 농성 중인 노동자들의 천막 십여 동이 쳐져 있고 컨테이너 박스로 막힌 안쪽에는 수십 대의 경찰 차량이 진을 치고 있었다. 곳곳에 설치된 천막에는 '제2의 용산참사는 없어야 한다', 'KEC 사태 평화적 해결 촉구한다'는 문구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넓은 공장 부지를 둘러싼 철제 펜스를 따라 용역요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됐다. 어느 곳으로도 공장에 쉽게 들어갈 수 없어 보였다. 발화 위험 물질이 많은 반도체 공장을 점거한 KEC의 상황은 지난해 여름, 경찰과 노조원들간의 대치가 치열했던 쌍용자동차와 흡사했다.

쌍용자동차는 구조조정에 따른 정리해고 문제로 노사간 첨예한 의견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KEC 현장은 어떠한 주요쟁점도 없이, 그저 협상에 나오지 않으려는 사측과 나오라고 주장하는 노조의 줄다리기만 지루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사실 KEC는 노조가 120일 넘게 파업을 하고, 사측은 직장폐쇄를 하며, 수십 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단식을 하고, 200여 명의 조합원들이 공장을 점거할, 특히 노조 지부장이 분신까지 할 만큼 노사관계에 큰 문제가 있는 회사는 아니었다.

김성훈 KEC노조 부지회장은 "20년 동안 큰 분쟁이 없었을 만큼 노사관계가 괜찮았다"면서 "그러나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임단협에서 직원복지 문제에 전혀 돈을 쓰려고 하지 않는 등 사측의 태도가 이상했다"고 전했다. 김 부지회장에 따르면 KEC노사는 타임오프제가 발효되는 7월 1일 전까지 총 11차례 교섭을 벌였으나 합의하지 못했고, 노조는 6월 9일 경고파업을 시작으로 파업투쟁에 들어갔다.

이에 사측은 6월 30일 직장폐쇄로 맞섰다. 노조의 파업이 임단협이 아닌 타임오프 실시를 빌미로 한 불법파업이라는 것이다. 그 후로 양측은 전혀 만나지 않았다. 수차례 걸친 노조의 교섭요구에도 사측이 나서지 않았던 것.

김 부지회장은 "우리가 타임오프에 따른 전임자 수를 조절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임단협에 나설 것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며 "공장을 점거한 노조원들의 요구는 '임금단체 협상 교섭에서 대화로 문제를 풀자'는 것 하나뿐"이라고 밝혔다.

김 부지회장은 사측이 이유 없이 교섭에 나서지 않는 것에 대해 "타임오프를 빌미로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구조조정을 통해 아웃소싱(외주용역)을 도입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 긴급구제 조사 나서

1일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이 점거 농성 중인 KEC공장을 방문에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1일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이 점거 농성 중인 KEC공장을 방문에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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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점거 11일째인 1일, 내부 상황이 궁금했지만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철저히 차단됐다. 노조가 점거하고 있는 제1공장은 공단 남문 바로 안쪽에 있었지만 건물 주변을 경찰병력이 빈틈없이 깔려 있었다.

식량이 부족하다는 소식은 들렸지만 정확한 실상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농성장을 먼저 빠져나온 일부 조합원들의 증언으로 내부 상황을 짐작해 볼 따름이었다. 처음 200여 명이 참여한 농성인원은 여성조합원들과 건강상 문제가 있는 조합원들이 빠져 나와 100여 명으로 줄었다.

농성 4일째인 지난달 25일 건강상의 이유로 농성장을 나온 장대진씨는 "수도관이 연결된 정수기를 통해 물은 공급되지만 식량은 다 떨어진 상태일 것"이라며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농성을 하는 줄 모르고 들어갔기 때문에 준비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장씨 또한 노조간부였음에도 농성 여부를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장씨는 "공장 내부는 폭 2m가 안 되는 좁은 복도 이외에 앉거나 누울 곳이 없어 대부분의 농성자들은 비좁은 복도에서 생활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공장 안 환경에 대해 대구인권연대는 지난달 2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 요청을 했다. 노조가 준비해 간 식량이 다 떨어져 농성자 대부분이 굶고 있고, 열악한 환경 때문에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서창호 대구인권연대 상임 활동가는 "현재 공장 내부에 조합원들은 하루 한 끼를 선식으로 해결하고 있고 이도 곧 다 떨어질 것"이라며 "농성 11일 동안 생리대와 약간의 의약품만 들어갔을 뿐 생존을 위한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1일 조사관을 파견해 노조와 경찰관계자를 만나고 공장 내부를 조사했다.

이날 조사를 마친 인권위 조사관은 <오마이뉴스>와 만난 자리에서 "내부의 상황은 확인했으나 충분한 조사를 위해 하루 더 현장을 돌아 볼 것"이라며 "현재 국회의원들의 중재로 협상이 진행 중이라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야당 의원들 중재 협상 실패... 농성자 대부분 철수

1일 KEC 노사 사이에서 중재 협상을 벌인 야당 의원들이 협상이 결렬된 후 공장 정문에서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1일 KEC 노사 사이에서 중재 협상을 벌인 야당 의원들이 협상이 결렬된 후 공장 정문에서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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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한때 KEC공장 주변에는 노사간의 협상타결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돌기도 했다. 오전에 현장을 찾은 야당 의원들의 협상 중재가 상당부분 진척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오후 3시경 공장 점거 조합원 가운데 56명이 공장 밖으로 나왔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가 공장 안으로 들어가 사측과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다수의 농성자들이 철수한 것이다. 이로써 공장 안에는 약 30여 명의 조합원만 남게 됐다.

협상은 홍영표 의원이 공장 안에서 사측과 만나 조율한 내용을 야당 대표들과 김영훈 위원장이 논의하고 노조 쪽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협상은 오후 6시경 타결을 보지 못하고 끝났다. 야당과 민주노총 대표단은 회사 측에 손해배상·가압류 해제, 징계 최소화, 형사처벌 문제의 전향적 해결 촉구 등을 집중적으로 요청했지만 사측이 "최소한으로 하겠다"며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협상 후 기자들과 만나 "야5당은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철야 농성에 들어 갈 것"이라며 "김준일 지부장의 분신처럼 공권력 남용은 절대 허용 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노조활동이 보장되고 문제를 원활히 해결하기 위해 야당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협상이 타결되지 못하면서 KEC의 분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야당은 김준일 지부장 체포시도에 강력히 항의하며 책임자 처벌과 조현오 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2일에도 손학규 민주당 대표 등이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1일 경북 구미 KEC 정문 앞에서 열린 'KEC 투쟁승리 및 김준일 지부장 쾌유 기원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1일 경북 구미 KEC 정문 앞에서 열린 'KEC 투쟁승리 및 김준일 지부장 쾌유 기원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노동과 세계 이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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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KEC, #KEC파업, #민주노총, #타임오프, #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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