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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국화로 둘러싸인 영정 사진 속 종이모(어머니의 사촌 여동생)는 여전히 얌전하고 조용해 보이셨다. 이모는 평생 고된 노동으로 2남 2녀를 길러내셨고, 말년에는 뇌졸중으로 오래도록 요양원 생활을 하셨다. 

 

위독하시다는 이야기에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빈소에서 뵙는다.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다. 이모 영전에 하얀 국화 한 송이를 바치고, 무릎 꿇고 앉아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혼을 받아주시고 이 세상의 노고를 위로해 주시기만을 간절히 빌었다.

 

'장례식장과 꽃'하면 제단 장식과 근조 화환을 떠올리게 마련인데, 한 장례식장 로비에서 국화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시장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국화 향기가 가득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례용 꽃인 국화를 다른 곳도 아닌 장례식장에서 전시함으로써 장례의 의미와 장례문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장례식장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전시회로 여겨졌다.

 

다양한 품종의 국화를 이용해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과 죽음의 의미를 담은 크고 작은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사랑하는 가족의 영원한 동행을 형상화한 '동행', 소국들을 모아 만든 '우정'을 비롯해, 돌고래의 모습을 통해 '삶과 자유'를 노래하기도 하고, 사슴의 모습에 '평화'의 이미지를 실어놓았다. 그 밖에도 '광야, '자연과의 대화', '내 영혼의 그림자'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국화를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내가 진행하는 '죽음준비학교' 수업 시간에 한 어르신이 낭독한 유언장에 '내 장례식장은 꽃으로 예쁘고 화사하게 꾸며달라'는 구절이 들어있었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가 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데에는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는 서로 아름다움을 다투지 않고, 시기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으며 그저 각기 묵묵히 제 할 바를 다하는 점에도 그 까닭이 있지 않을까.
 
살면서 서로가 보이게 보이지 않게 겨루며 다퉈야 했던 무수한 것들이 죽는 순간 아무 것도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떠나는 자든 남는 자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꽃에서 배울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
 
다른 곳의 국화 전시회에서 아름다운 꽃을 실컷 더 많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장례식장의 국화 전시회를 둘러본다면 조금은 특별할 것이다. 장례식장에 들어선다는 보통 때와는 다른 감정에다가,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검은 옷차림의 상주와 조문객들을 보면서 잠시 잊고 살았던 죽음과 이별에 대해 각별한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의 국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생각의 매개체이며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작지만 소중한 실마리이다. 말로 설명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례식장 안내판 사이 사이 피어있는 꽃을 보며 가슴에 다가오는 대로 느끼고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우리들 일상에 엄연히 존재하는 죽음에 대해 또 다른 방식으로 실감하게 될 것이다. 
 
국화 사이로 커피 가게가 보이고, 거기서는 또 커피 향기가 흘러나온다. 살아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떠나는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례식장에 와 커피를 마시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꽃을 구경한다. 삶은 이렇게 죽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오늘 여기의 시간을 채우며 흘러간다. 
 
이모는 오늘(10/30) 오전 화장을 마치고 산골(散骨)공원에 모셔졌다. 흩을 산(散), 뼈 골(骨), 말 그대로 산산이 흩어지셨다. 산골공원을 내려오는 길가에 작은 국화꽃이 무리 지어 피어 바람에 가늘게 흔들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천국 가는 길에 국화 꽃밭전(展)> 2010. 10. 25 - 11. 12 / 연세대학교 연세장례식장 1층 아트홀, 로비 


태그:#국화전, #국화, #장례식, #장례문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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