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 종로구 안국동 선학원을 보면서 만해와 만공 대선사를 기린다.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에서 고 윤보선 전대통령 생가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생가와 안국역 사이 중간 쯤 좌측에 우뚝 서 있는 절이 하나 있다. 바로 일제시대 불교 개혁의 원산지 선학원이다. 선학원(禪學院, 서울 종로구 안국동 40번지)에서 조금 더 가면 안동교회가 나오고 고서를 많이 출판했던 명문당(明文當)이 나온다.

 

명문당 인근에 윤보선 생가, 그곳 지근거리에 있는 조선어학원 터와 '담 갤러리'의 담쟁이덩굴이 눈에 띈다. 이곳 주변은 유서 깊은 곳이 많다. 특히 선학원은 일제시대 친일파들이 어용 스님을 내세워 우리 불교를 일본식민지화 하는데 반대해 지키려고 노력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재단법인 선학원은 1921년 11얼 30일 당시 남전·도봉·석두·만공·만해·성월·용성 등 조사 스님들에 의해 설립됐다. 이후 민족불교를 수호하고 한국불교의 전통선맥(傳統禪脈)을 계승해 오고 있는 불교성지다.

 

특히 광복이후 왜색화된 한국불교의 청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정화운동의 산실이다. 1922년 선우공제회를 조직해 청정비구의 수행요건을 조성했고, 1931년 호법(護法)과 항일을 위해 조선불교선종 首座(수좌)대회를 개최했다.

 

선(禪)의 대중화를 위해 재가자를 중심으로 1931년 남녀선우회를 조직했고, 1935년 여성불자를 위한 수행공간인 부인선원을 개설했다. 그리고 기관지 <선원(禪苑)>을 창간하기도 했다.

1934년 12월 스님과 불자들이 재산을 출연해 재단법인을 설립했다. 이후 1935년 이곳에서 제3차 수좌대회를 개최해 선종(禪宗)을 창종시켰으며, 1941년 유교법회를 개최하고 법행단(法行團)을 조직해 선학과 계율(戒律)의 종지(宗止)를 선양했다.

 

광복이후 선학원을 중심으로 청정비구승들이 불교정화운동을 전개해 현재 불교 조계종이 탄생했다. 선학원은 현재 재단 산하에 중앙선원을 비롯해 전국 570개 분원과 포교원을 두고 있으며, 선의 수행과 보급을 위해 시민선방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선학원 설립해 참여한 인물 중 만해와 만공 스님은 교분이 두터운 스님이었다. 이들은 근대불교 개혁, 민족운동, 한국 전통 불교고수, 자존심의 몸부림을 위한 일제하의 고난의 가시밭길을 함께 걸었다.
 
당시 만해 한용운 대선사는 일제 식민지 통제를 전면 부정하면서 민족불교를 개천한 반면, 만공 대선사는 식민지 현실을 일부 인정하면서 선불교 전통의 고수를 통한 민족불교를 개척한 스님이었다.

 

하지만 만해와 만공 스님은 친분이 두터웠고, 이들의 거침없는 대화, 법거량, 차별성 속의 동질성 등은 두 사람의 고매함, 담박스런 패기를 엿볼 수 있다.

 


태그:#선학원, #중앙선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