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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뱀은 박물관에서나 볼수 있습니다
▲ 오키나와월드 하브박물관 이제 뱀은 박물관에서나 볼수 있습니다
ⓒ 김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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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키나와에 간다고 했을 때, 더워서 여름에는 가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한 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겁이 덜컥 날 정도였습니다. 아니, 얼마나 덥기에! 그래도 사람 사는 동네잖아요? 내가 반문하면, 거기 뱀도 완전 많다고, 그건 몰랐지? 하면서 공격해오곤 했습니다. 일반 가정집에서도 뱀이 그냥 나온대~. 아, 그 말에 곧이곧대로 속은 내가 바보였습니다.

아, 뱀을 실제로 보긴 봤습니다. 오키나와 부속섬 중 하나인 이에지마라는 곳입니다. 제주의 우도라고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그런데 뭐, 독사 하브가 아니라, 손바닥만한 도마뱀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오키나와에는 독사가 엄청 많았다고 합니다. 개발이 덜 되고 더운 기후 때문이겠지요. 

그러다 고층건물이 세워지고,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독사는 사람들의 골칫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정부는 뱀을 잡아먹을 다른 동물을 외국에서 수입해 옵니다. 그렇게 뱀을 잡기 위한 노력이 계속됐고, 뱀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편견과 오해가 여행을 망친다

그러니까 미리 겁먹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오키나와를 돌아다니면서 제일 이해가 안 된 건 옷차림이었습니다. 그 강더위에 긴팔을 입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아줌마들이 밖에 나갈 때, 얼굴 탈까봐 꽁꽁 싸매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도 오키나와는 겨울이 없기 때문에 사계절 내내 더울 텐데도 햇볕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게, 불필요한 노력처럼 여겨졌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아무렇지 않다고 웃거나, 추운 게 너무 싫다고 말합니다. 이에지마 섬에 갔을 때는 그 더위가 사람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경험하고 올 정도였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뭐하면서 살까? 지금도 궁금합니다.

오키나와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리에게 뭐든 도움을 주고 싶어했습니다. 정기관광버스를 타야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운전면허증도 없는 우리 같은 BMW족(버스(bus, bicycle)와 지하철(metro), 도보(walking)로만 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고 주변에서 추천해 줬습니다. 사실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 더위에 대중교통으로 오키나와 관광지를 둘러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이었습니다.

그래서 남부정기관광버스를 탔습니다.

나하관광버스에서 포즈를 취해봤습니다
▲ 나하관광버스 나하관광버스에서 포즈를 취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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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버스는 신기하게도 여행사가 아니라 버스회사가 운영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돌아다니는데, 점심까지 줍니다. 패키지 관광버스인 셈인데, 가격은 1인당 4800엔으로 살짝 부담되는 가격이었습니다.

유쾌하지 못한 관광버스는 NO!

우리는 정기관광버스 북부, 중부, 남부코스 중 남부를 택했습니다. 전쟁평화 유적지가 몰려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남부 지역의 전쟁유적지에 가기 위해서는 렌트카를 이용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버스로 '평화기념공원'에 가려면 20분에 한 대 있는 버스를 타고 나하버스터미널에서 남부의 이토만시 버스터미널로 간 후, 거기서 1시간에 1대 있는 버스를 갈아 타고 평화기념공원으로 가야 했습니다. 이거 쉽지 않습니다. 요금도 편도에 1000엔으로, 이것저것 타산을 맞춰보면 어쩔 수 없이 관광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정기관광버스코스 한글판
 정기관광버스코스 한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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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탄 나하버스의 A-코스 정기관광버스는 매일 출발하는데, 슈리성을 거쳐 해군사령부호와 히메유리 기념탑, 평화기념공원, 마지막엔 천연석회암동굴이 있는 오키나와월드를 둘러보는 일정입니다.

자, 여기서 '막걸리'군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처음 도착한 역사문화유적인 슈리성. 따지고 보면 이 슈리성 코스 때문에 나하버스 정기관광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정기관광버스의 남부코스에는 슈리성이 포함돼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망하는 데까지는 1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국어로 된 버스관광 코스 설명서를 유심히 보다보니 슈리성은 두 개의 영역이 있었는데, 완전 개방된 곳과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하는 영역으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관광상품에는 슈리성 외곽지역, 즉, 무료로 개방된 곳만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들어가서 보고 싶으면, 별도의 요금을 각자 지불해야 했습니다. 어처구니 없어 우린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속은 느낌이었죠. 덕분에 우리는 설명서를 아주 꼼꼼히 읽었습니다. 가관이었습니다.

오키나와 월드에서 100분이 주어지다니
▲ 오키나와 월드 오키나와 월드에서 100분이 주어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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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별 관람 시간을 봤습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었습니다. 해군사령부호, 히메유리, 평화기념공원은 각 30분씩 주어졌습니다. 반면 각종 관광상품을 판매하는 오키나와 월드는 무려 100분이 주어졌습니다. 게다가 제일 마지막 코스였습니다.

류큐문화의 우수성을 전해준다는 오키나와 월드는 허브약초 술공장에 가면 술을 팔았고, 유리와 도자기 공방에 가면 유리와 도자기 상품을 판매했습니다. 더 경악했던 건, 약 5km나 되는 교쿠센도 동굴 위에 그 많은 시설들이 들어서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오키나와 월드에 가기 위해 히메유리와 평화기념관을 거쳐서 가는 꼴인 거죠.

덕분에 '막걸리'와 나는 촉박한 시간 안에, 원하는 걸 다 둘러보기 위해, 발에 땀나도록 뛰어야 했습니다.

평화기념공원 한국인 각명비
▲ 평화기념공원 각명비 평화기념공원 한국인 각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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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여 명의 희생자가 각명되어 있는 '평화의 초석'에는 조선반도에서 끌려온  2000여 명의 명단이 있습니다. 한국인 위령탑공원도, 한국에서 끌려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각명비도 있습니다. 꼭 봐야할 것들입니다. 주어진 30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더군다나 둘러볼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조건에서, 평화기념공원안의 자료관은 들어가 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자료관의 입장료 300엔은 버스관광 요금에 포함돼 있지 않았습니다. 히메유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함께 관광버스를 탔던 미국인 두 명이 히메유리 자료관에 들어가다 안내원에게 제재를 받았습니다. 돈을 내야 한다고 말이죠.

평화기념공원 한 편에 한국인위령탑공원이 있었는데,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보지도 못했네요
▲ 평화기념공원 한국인위령탑공원 평화기념공원 한 편에 한국인위령탑공원이 있었는데, 시간이 부족해 제대로 보지도 못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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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여행사와 관광 업계의 공공연한 수수료 관행은 왜곡된 관광상품을 재생산해내곤 합니다. 그래도~ 사설관광지라면 이해가 됐을 텐데, 전쟁유적지까지 이렇게 관리되고 있는 점은 안타까웠습니다.

오키나와는 2차대전 중 일본 본토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아픈 역사를 가진 곳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전쟁 평화 유적지를 보기 위해 남부관광버스 코스를 선택합니다. '막걸리'였다면 히메유리에서 오전 시간을, 평화기념관에서는 하루 죙일 둘러보고 또 둘러봤을 것입니다.

미군기지야? 관광지야?

쇼이치상의 도움으로 카데나쵸의 4/5를 차지고 하고 있는 카데나 기지에 갔을 때는 더욱 혼란스러웠습니다. 미군의 공군기지인데, 이 곳은 규모가 엄청 크기 때문에 전망대까지 마련해 놓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리니, 엄청난 굉음이 먼저 신고를 해왔습니다. 오키나와의 하늘을 거리낌없이, 마치 제 것인양 구는, 무례한 느낌이었습니다.

오키나와 하늘에 전투기가
▲ 오키나와 하늘 오키나와 하늘에 전투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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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했습니다. 관광지처럼 사람이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군사시설에 누가 관광을 갈 것이며, 누가 허락이라도 하겠냐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도 눈에 들어왔는데, 학교에서 평화교육을 위해 견학을 자주 온다고 합니다. 평화교육을 위해 미군기지를 보러간다? 음, 좋은 교육여건인지 슬픈 현실인지 복잡했습니다.

학생들뿐만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많았습니다. 활주로를 나는 전투기를 향해 사진을 찍는 사진가도 있었습니다. 망원렌즈를 동원해 촬영하는 '밀리터리 마니아'들이라고 '막걸리'는 해석했습니다. 이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미군기지도 관광지가 될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전망대에 사람들이 활주로를 향해 서서 전투기가 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니. 돌고래 쇼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리고 그 짜증나는 소음까지 견뎌가면서 말입니다.

카데나기지 전투기
 카데나기지 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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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는 그 크기만큼 시끄러웠고,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며 위협적으로 하늘을 날았습니다. 한미훈련이 한국에서 있으면 카데나기지에서 미군의 전투기가 온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이번 한미훈련에 카데나기지에서 전투기가 날아왔습니다. 우리나라를 지켜주고 있는 건지, 우리나라의 국방 긴장감을 부축이고 있는 건지, 카데나쵸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소음에 시달리고 있을지, 심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키나와에서 관광은 여러 가지로 심란하게 했습니다. 여행상품에 끼어 그저 들러리로 전락한 전쟁평화유적지도 그랬고, 미군기지를 관광자원화하면서 군복 따위의 상품을 팔고 있는 카데나 기지도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제주국제공항이 제주4·3 학살터였다는 것도, 제주의 아름다운 해수욕장에서도 학살이 자행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구나 심란해질테지요.

'여행 유감'입니다.

<3편에 계속>

너무 몰랐다, 오키나와
일본으로 복귀된 지 40년도 안됐다고?
독립된 국가, 류큐왕국 ▷ 일본 본토 합병(1879) ▷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 전투로 현민 희생 ▷ 2차세계대전후 미군 통치(1945-1972) ▷ 일본 복귀(1972)

미군기지가 전체 면적의 20%나? 아니, 왜?
오키나와는 전체 면적의 약 20%를 미군기지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상이 가시나요? 오키나와의 면적은 일본 전체의 0.6%에 불과한데, 전체 주일 미군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밀집해 있습니다. 일본 중앙정부는 미군 기지가 있다는 것을 배려해, 막대한 예산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키나와의 경제수준은 광역단체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하는군요.

오키나와전투에서 20만명이나 죽었다고?
1945년 3월 말. 역사상 보기드문 격렬한 전쟁의 불꽃이 오키나와 섬을 뒤덮었습니다. 90일간 계속된 철의 폭풍은 섬의 모습을 바꿨고, 문화유산은 파괴됐습니다. 무려 20여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오키나와전은 일본에서는 유일하게 현민을 총동원한 지상전이었는데,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 최대 규모의 전투였습니다. 안타까운 건, 일반주민의 전사자가 군인을 훨씬 상회한다는 것입니다.

제주하고 닮은 점이 많다고?
오키나와와 제주는 섬이라는 자연환경부터, 국가 경제의 1%정도를 차지하면서 관광으로 먹고 산다는 경제적인 구조까지 닮았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2차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엄청난 고통을 강요받은 것도 비슷하지요.

다만 오키나와는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받은 반면, 제주도는 2차 세계대전이 몇 달 일찍 종료돼 전쟁의 참화는 없었습니다. 아니,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전개된 냉전의 와중에 엄청난 비극을 겪고 말지요. 다른 점이라면 대규모 군사기지가 있냐 없냐일 겁니다. 이마저도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선다면, 빼닮게 됩니다. 안타깝습니다. 굳이 닮지 않았으면 하는 아픈 역사에 군사기지의 불편함까지 더해지질 않길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7월 7일부터 17일까지 '막걸리군'과 함께 오키나와로 떠난 여행을 정리한 글입니다.



태그:#오키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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