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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에서 산낙지와 보리새우를 맛봤다. 세발낙지는 마리당 2500~ 3000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보리새우는 마리당 약 2500원선.
 벌교에서 산낙지와 보리새우를 맛봤다. 세발낙지는 마리당 2500~ 3000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보리새우는 마리당 약 2500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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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은 쾌락이다. 때문에 미식의 세계가 깊고 넓어질수록 더욱 더 자극적인 맛을 추구한다. 미식의 종극에 숨 쉬고 있는 원숭이골을 푸딩처럼 떠먹는 식의 엽기적 미각을 행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때문에 인간과 자연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지 않는 미식은 자칫 쾌락만 좇는 탐식으로 치우칠 염려가 있다. 일본의 예술가이자 미식가였던 기타오오지 로산진도 미식을 행함에 있어 도를 추구했지만 '미미락락'에 불과하였다고 토로한 적 있다. 미식을 즐기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말이다.

그가 말한 도(道)가 인간과 자연에 대한 통찰력으로 봐도 무방한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혀의 유희가 미식의 본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엽기적 미각을 향해서 비판을 날리는 것도 그리 현명해보이진 않는다. 둘러보면 우리 일상의 별미도 충분히 엽기적 미각인 게 많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경악한다는 산낙지만 해도 그렇잖은가. 칼로 자른 산낙지가 과격한 몸부림을 통해서 접시 밖 탈출을 감행하고 있는 광경이란. 만약 내가 산낙지를 입에 넣는 나라의 국민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외국인들의 시선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래서일까

며칠 전 벌교의 한 초장집에서 산낙지와 보리새우를 먹는 내내 '야만'이란 화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급기야는 야만을 통해서 쾌락을 느끼는 아주 원시적 본능을 미식으로 가장하는 게 인간이란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다. 나는 지금 산낙지를 먹고 있는 게 아니라 '야만'을 먹고 있는 중이다. 이 순간만큼은 도덕적 양심도 잠시 잊는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그게 좋다.

보리새우는 산채로 먹어야 맛이다. 전북에서 주로 양식한다. 일본명인 '오도리'로도 불리우고 있다
 보리새우는 산채로 먹어야 맛이다. 전북에서 주로 양식한다. 일본명인 '오도리'로도 불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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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새우는 4마리에 만 원씩 한다. 8마리를 담아왔다. 녀석을 먹을 때 사람들은 대가리부터 절단한 후 껍데기를 벗긴다. 하지만 난 껍데기부터 벗긴다. 최대한 생명이 붙어 있게 말이다. 그래야 이로 씹었을 때 미세한 근육경련과 떨림이 이에 전해진다. 보리새우의 쫄깃함과 단맛도 좋지만 난 이에 전해지는 그 느낌이 보리새우의 미각 1번지라고 느낀다. 초장이 강렬해서 보리새우 맛을 죽인다. 와사비와 간장을 달라고 하였다. 두 번째 보리새우부터는 한 결 본질의 맛에 접근해졌다.

세발낙지는 통째 물고 꼭꼭 씹어야 제맛이다. 산채로 먹기에 나무젓가락에 감아서 천천히 먹는 게 안전하다
 세발낙지는 통째 물고 꼭꼭 씹어야 제맛이다. 산채로 먹기에 나무젓가락에 감아서 천천히 먹는 게 안전하다
ⓒ 맛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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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예감한 듯 공처럼 몸을 움츠리고 있는 낙지 한 마리를 집어 올렸다. 세발낙지이다. 아직은 어린감이 없잖아 있다. 약 열흘 후면 가격도 내리고 맛도 깊어진다. 낙지는 다리가 늘어질지언정 그릇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발악도 잠시, 한손으론 몸통을 잡고 또 한손으론 대갈통부터 쭈욱 훑어 내렸다. 축 늘어진 틈을 이용해 재빨리 나무젓가락을 몸통으로 집어넣고. 다리들은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았다. 이제 낙지는 포박상태나 다름없다.

산낙지를 먹으면서 야만을 떠올렸다. 이 야만의 맛이란...
 산낙지를 먹으면서 야만을 떠올렸다. 이 야만의 맛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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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에 따라 잔인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약자는 강자에게 먹히는 자연의 섭리에 충실하고 있을 뿐이다. 몸통을 기름장에 찍어 입속에 넣었다. 잘근 잘근 씹으면서 천천히 다리들도 밀어 넣었다. 낙지의 빨판이 입속에 달라붙는다. 빨판의 힘이 셀수록 쾌감도 커진다. 얼마나 씹었을까 낙지의 움직임도 멈추고 육즙이 혀에 전해진다. 짠맛부터 느껴지기 시작하지만 마지막엔 단맛이 흐른다.

전장에서 승리한 병사들에겐 승리의 기쁨과 함께 전리품도 건진다. 나에게 전리품이란 소주 한잔이다. 승자의 여유와 함께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었다. 야만과 쾌감을 감추면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맛객은 최근 지난 5년여 동안 추억과 이야기가 담긴 음식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유랑한 여정을 담은<맛객의 맛있는 인생>을 펴냈다. (청림출판 刊)



태그:#세발낙지, #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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