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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15 광복절,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을 집권 후반기 국정 기조로 삼겠다고 말했다. 아마 대통령 스스로도 우리 사회가 그다지 공정치 못한 사회라는 걸 깨달은 것 같다.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여러 상황을 보면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 일이고, 정부에 정말 그런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8·8 개각 청문회 과정에서 밝혀진 위장전입과 부동산투기 등 각종 불법적인 행위들로 인해 신임총리 후보를 비롯해 2명의 장관 후보자가 낙마했다. 취임 초부터 이명박 정부와 함께 일해 왔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자신의 딸을 불공정한 방법으로 특채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재래시장을 찾아 떡볶이를 먹으며 친서민을 외쳤던 대통령, 장애인시설을 찾아가 그들의 합창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던 대통령.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서 복지 예산은 삭감의 위험 속에 노출돼 있다. 반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시절 청계천 공사를 밀어붙였던 기세로 전 국토에 콘크리트 바닥의 커다란 어항을 건설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 커다란 인공의 어항 속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고 친서민 경제정책을 외치며, 장애인시설에서 흘렸던 눈물이 악어의 눈물로 강바닥에 수장된 듯하다.

'서류 장애인' 잡으려는 칼날에 중증장애인들이 다치고 있다

5월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회원들이 북을 치며 '장애인 활동보조 살리기 신문고를 울려라' 행사를 벌이자, 경찰들이 북을 뺏으려 하고 있다.
 5월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회원들이 북을 치며 '장애인 활동보조 살리기 신문고를 울려라' 행사를 벌이자, 경찰들이 북을 뺏으려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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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외치는 '공정한 사회 만들기'에 장애인의 공정한 삶도 포함돼 있기는 한 걸까? 이 땅에는 200만 명이 넘는 장애인들이 있다. 국가는 장애인등록제를 만들어 장애인들을 등록하고 각 장애인에게 등급을 매겨 관리하고 있다. 장애인등록제는 사회 활동에 필요한 각종 복지서비스를 시행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등록된 장애인들에게는 지하철 무료승차, 고궁 등 무료입장, 공공임대주택에서의 우선추첨권 등 각종 혜택이 주어졌고 이런 혜택들이 장애인들에게 도움도 되었지만 허술한 관리로 '서류만 장애인'인 사람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것을 막자고 2010년 초부터 장애등록 재심사를 하겠다고 보건복지부가 칼을 빼들었다. 수정바텔지수라는 새로운 장애기준을 도입해 기준을 강화했다. 각종 혜택과 서비스를 받으려면 새로운 장애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정부는 '가짜장애인 색출'이 목적이라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애꿎게도 복지부가 휘두른 서슬퍼런 칼날에 맞아 죽는 중증장애인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희생자들은 바로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했던 '덜 중증인' 장애인들이다. 그들이 '덜 중증'이 된 이유는 장애인등록제의 1급 기준이 대폭 강화했기 때문이다. 활동보조서비스의 경우 현재 오직 장애1급을 통과해야만 이용이 가능하다. 전에는 걷지 못하고 앉아만 있어도 1급이기 때문에 이용할 자격 요건이 됐다. 그러나 지금의 1급 요건은 누워서 숨도 호흡기에 의존해야만 한다. 기준이 세분화 되어 각 장애 유형마다 그 유형에 맞는 검사표가 따로 존재하고 의료적 기준으로만 장애등급을 매기는 한국의 상황은 '사회적 장애요건'을 더욱 중시하는 요즘의 세계적 추세와는 많이 동떨어진 모습이다.

강화된 '장애등급심사기준' 누굴 위한 정책인가?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이 8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장애인부모 전국집중결의대회'에서 장애인 복지 예산 확보와 장애아동 및 발달장애인의 권리보장을 촉구하며 삭발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이 8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장애인부모 전국집중결의대회'에서 장애인 복지 예산 확보와 장애아동 및 발달장애인의 권리보장을 촉구하며 삭발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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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제도는 중증의 장애인들의 일상생활과 사회참여를 돕기 위해서 만든 장애인복지서비스 중 하나다. 한마디로 국가 및 지자체 예산으로 장애로 몸이 불편하거나 인지능력이 현저히 낮아 일상생활이나 사회활동이 어려운 사림들을 돕는 '인력 파견 서비스'다. 이것 역시 거저 얻어진 장애인복지서비스가 아니고 오랜 세월, 이것을 필요로 했던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의 치열한 투쟁에 의해 쟁취한 결과물이다.

물론 예전 기준으로도 활동보조서비스가 그다지 필요없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두 팔을 자유롭게 쓰는 사람에게 활동보조인은 가끔 필요성을 느낄 때도 있겠지만 오히려 거추장스러울지도 모른다. 반면 제 발로 걸을 수 있는 장애인도 팔이 절단되었거나 불편하면 절실하게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비롯한 모든 장애인복지 서비스들을 장애 몇급, 몇급으로 매겨서 해당이 되는 급수의 기준을 통과해야만 그 서비스를 이용할 자격을 준다는 발상 자체가 참으로 웃기는 것이다.

장애등급 기준 강화로 지금 기준으로 '덜 중증'이라는 이유로 활동서비스 지원에서 밀려날지 모를 나를 비롯한 많은 장애인들은 분노와 절망을 느끼고 있다. 장애인등급제는 누군가를 제도의 틀에 옭아 넣어 관리하기 편하게 하는 위한 장치일 뿐이다. 정부의 장애인등록제 등급 강화가 장애인복지 예산을 줄이려는 속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등급제의 폐해가 비단 활동보조서비스제도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지난 7월부터 실시하고 있는 장애인연금제도 역시 등급하락의 우려로 장애인들이 신청율이 저조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던 장애인들이 장애등급 재심사에서 속속 탈락되어 장애2급 판정을 받고 있기도 하다. 활동보조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활보(활동보조서비스) 이용 불가 판정은 바로 사회적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장애인 홀대하는 상황에서 '공정한 사회' 실현은 불가능 하다

나를 비롯한 장애인들은 올해(2010년) 아니면 내년(2011년) 초 안에는 장애등급제심사를 전부 받아야 한다. 이 재심사를 꼭 통과해야만 지금의 생활을 그나마 유지할 수 있다. 활보가 있어야만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고 세수하고 옷도 갈아입을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다. 그동안 활보가 있어 휠체어를 타고 직장에 가서 일하고 시장에서 장보고 문화생활도 간간이 즐길 수 있었는데 지금의 강화된 '장애1급 기준'은 우리의 장애에는 활보서비스가 사치라며 장애가 더 심한 사람들에게 양보 하라고 한다.

그럼 우리들의 삶은, 생활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장애1급이 안 되기 때문에 더 이상 활동보조서비스를 지급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분명 그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더러 장애2급이 되었다고 기뻐하라는 건가? '덜 심한 장애'로 인정받은 것을 축하하라는 의미인가? 어제까지 활보에 의존해 생활했던 사람이 이젠 장애2급이 되었으니 일어나 걸어다니는 성경 속에나 있을 법한 기적을 바라는 것일까?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장애인도 이 사회에서 공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누구를 위한 공정한 사회인가? 가장 불공정한 사회환경에서 가장 불공정하게 살아온 이 땅의 장애인들을 더 이상 최악의 불공정한 삶의 구덩이로 밀어넣는 일을 멈춰야 한다. 우리는 지금껏 그것을 요구해 왔다.

지난 2005년 장애인실태조사에서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이 전국적으로 약 50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보건복지부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그나마 있는 활동보조서비스제도조차 제구실을 못하게 한 상황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3만 명도 채 안되는 활보 이용대상자들의 숫자를 어떻게든 줄여보려는 그들의 안간힘을 차마 눈 뜨고 못 봐줄 정도이다. 이러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논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장애인에 대한 홀대를 거두지 않은 상황에서 '공정한 사회' 실현이란 불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장애인진보언론 비마이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공정한사회, #이명박, #장애인등록제, #장애등록재심사, #활동보조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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