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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스캔들>의 주인공 4인방. 왼쪽부터 유아인(문재신 역), 믹키유천(이선준 역), 박민영(김윤희 역), 송중기(구용하 역).
 <성균관 스캔들>의 주인공 4인방. 왼쪽부터 유아인(문재신 역), 믹키유천(이선준 역), 박민영(김윤희 역), 송중기(구용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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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 있어 원작이 따로 있다는 것은 일종의 양날의 칼로 작용한다. 특히 그 원작이 수십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라면 그 칼의 날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잘 만든다면 원작에 버금가는 호평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일반 시청자는 물론이고 원작의 재미와 감동을 기대했던 팬들에게 엄청난 질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KBS 새 월화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은 2007년 출판된 정은궐의 장편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원작으로 한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은 출판 이후 지금까지 50만부 가까이 팔렸을 정도로 인기 있는 소설. 때문에 소설의 드라마화가 발표된 이후 인터넷에서는 원작소설 팬들이 등장인물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연예인들을 거론하며 가상 캐스팅에 열을 올리기도 했었다.

특히 이 작품에서 남장여자로 등장하며 극의 중심에 서게 되는 여자 주인공의 캐스팅에 팬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물망에 오른 연예인의 사진과 정보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놓고 "어울린다", "아니다"라며 갑론을박 하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박민영이 여자 주인공 김윤희에 낙점됐을 때, 대부분은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일부에선 "지나치게 선이 고와 남장여자가 아니라 여자처럼 보일 것"이라며 우려했다.

팬들의 관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동영상 편집에 일가견이 있는 팬은 드라마의 가상 오프닝을 만들어 배포하는가 하면, 주연배우들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오면 헤어스타일과 의상을 체크해 원작의 이미지와 비교하기도 한다. 이들의 관심사는 제작진에게까지 향해 감독과 작가, 제작사의 이력을 거론하며 작품 성공의 가능성을 점친다. 촬영장에 팬들이 운집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런 팬들의 관심은 드라마의 제작진 입장에선 좋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작품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곧 자연스러운 작품 홍보로 이어지기 때문에 따로 돈과 시간을 들여 홍보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고조된 팬들의 기대와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애초에 일반 시청자들과는 작품에 거는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에, 제작진은 그들의 존재가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럽다.

원작의 설정과 캐릭터 비튼 <성균관 스캔들>

극 초반 티격태격하게 되는 이선준과 김윤희.
 극 초반 티격태격하게 되는 이선준과 김윤희.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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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첫 선을 뵌 <성균관 스캔들>은 이런 팬들의 마음에 들었을까? <성균관 스캔들>은 첫 회부터 원작과는 다르게 시작하며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원작에서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여자 주인공 김윤희(박민영 분)의 마음을 단박에 빼앗았던 남자 주인공 이선준(믹키유천 분)이 까칠하고 냉정한 이 도령으로 변한 것.

사실 원작에서의 이선준 캐릭터는 트렌디 드라마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라 하기엔 어딘가 아쉬운 면이 있었다. 언제나 다정하고 따뜻하게 여자 주인공을 위해주는 성격은 남자 주인공보다는 키다리 아저씨로 등장하는 서브 캐릭터에 어울리는 것이었으니, 요즘의 트렌드에 맞춰 조금은 까칠하고 냉랭한 성격으로 변모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또 원작에선 다소 밋밋하게 그려졌던 선준과 윤희의 첫 만남과 성균관 입성기가 드라마에선 좀 더 드라마틱하게 그려졌다. 전혀 사랑에 빠질 것 같지도, 서로에게 관심도 없는 두 남녀가 자꾸 부딪히다 어느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는 트렌디 드라마의 공식에 비춰봤을 때, 우연히 과거시험장에서 만나 호감을 갖게 되고 이내 사랑에 빠지는 원작의 스토리라인은 다소 느슨한 감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드라마에선 타인의 대리시험을 치러 과거장에 간 윤희가 자리를 잘못 알아 선준에게 들키고, 까칠한 선준이 그 사실을 관원에게 고별하려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틀었다. 이 과정에서 윤희의 딱한 사정과 그녀의 실력을 알게 된 선준은 윤희가 시험장에서 실력을 보일 수 있도록 윤희를 '거벽'으로 고용한다. 이렇게 악연으로 시작된 둘의 만남은 이후 성균관에 들어갈 때까지도 티격태격하게 그려졌다. 다소 민숭민숭하고 약간은 달달하기만 해 로맨스소설의 도입부로는 어울리나 트렌디 드라마의 출발로는 합격점에 아슬아슬했던 내용을 바꾼 것이다.

트렌디 드라마 공식에 안주하면 성공 못한다

홀어머니와 병에 걸린 남동생을 건사해야 하는 윤희는 남동생의 호패를 착용하고 남장을 하고 다니며 세책방(오늘날의 책 대여점)에서 책을 필사해 돈을 번다. 풍족하진 않지만 근근이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었던 윤희네는, 그러나 병판 대감 댁에서 빌린 돈 100냥을 갚아야 할 날이 다가오면서 사정이 180도 변하고 만다. 빚을 갚지 못하면 윤희 자신이 팔려가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 온 것.

결국 윤희는 걸리면 중벌을 면치 못하지만 목돈을 만질 수 있는 거벽일(남의 과거시험을 대신 치르는 것)을 하기로 마음먹고, 과거장에 들어선다. 그러나 자리를 잘못 찾아 선준에게 들키게 되고, 윤희의 글 솜씨를 아깝게 여긴 선준은 그녀가 여자인 것도 모른 채 그녀를 속여 과거시험을 치르게 한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왕 앞에서 시험을 치르고 어명으로 성균관에 입학하게 된 윤희. 선준과 윤희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극중 남장여자로 등장하는 박민영.
 극중 남장여자로 등장하는 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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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여자' 캐릭터의 등장은 언제나 흥미를 유발한다. 극중 인물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 과연 그, 아니 그녀는 언제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주변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시청자를 잡아 앉히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같은 소재의 전작들과는 다르게 아예 남자들과 한 방에서 같이 생활해야 하는, 좀 더 가혹한 처지가 됐으니 더욱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설정이 제아무리 흥미 있다 한들 그것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다면 지속적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긴 어렵다. 원작의 팬들이 존재하지만 그들만으로는 작품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건 주방장의 솜씨다. 베스트셀러 원작과 흥미로운 설정이라는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내느냐, 그저 그런 요리를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은 철저하게 제작진의 역량에 달린 셈이다.

적어도 지금까진 대체로 무난한 편이다. 원작의 전개와 캐릭터를 조금씩 비틀어 트렌디 드라마의 공식에 꿰맞춘 것은 어찌 보면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만큼 익숙한 패턴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별 무리 없이 빠르게 극에 몰입할 수 있었다. 초반 2회 만에 무대를 성균관으로 옮긴 빠른 전개와 편집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익숙하다는 것은 식상하다는 것과 종이 한 장 차이고, 무난하다는 것은 진부하다는 것과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 또한 제작진은 알아야 한다. 그 익숙함과 무난함 속에서 전작들과 다른 뭔가를 찾아내지 않고 그저 트렌디 드라마의 공식에 맞춘 채 안주한다면, <성균관 스캔들>은 그저 그런 평범한 드라마로 막을 내릴 것이다. <성균관 스캔들>이 지금 상대하고 있는 경쟁작이 <동이>와 <자이언트>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태그:#성균관 스캔들, #믹키유천, #박민영, #송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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