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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은 낙동강이 둘러싸고 있는 마을이다.
▲ 안내도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둘러싸고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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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하면 떠오르는 것이 뭘까. 안동김씨, 하회마을, 하회탈, 탈박물관, 안동소주, 간고등어, 찜닭, 안동 한우, 헛제사밥, 도산서원, 신세동 7층 석탑, 월영교, 안동댐, 마애선사 유적지, 이천동석불상, 안동군자마을, 한국국악진흥원, 경북산림생태과학원, 안동독립운동기념관, KBS드라마 촬영지, 학기산 온천, 안동교도소 등 수없이 많은 문화 유적지와 음식이 떠오른다.

지난 21일부터 22일까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불리우는 경북 안동으로, 절친한 후배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정처없이 안동을 가보고 싶은 이유도 있었지만 앞서 열거한 유적지를 관람하거나 안동 음식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21일 오전 10시 30분쯤 서울에서 승용차를 타고 출발한 지 거의 3시간 30분 만에 안동에 도착했다. 시내 진입의 첫 관문은 서울 광화문을 연상케 하는 고풍스러운 대문이었다. 현판에는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글귀가 써 있었다. 시내 곳곳은 '안동하회마을 세계문화유산 등재 환영'이란 플래카드가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승용차를 타고 대충 시내를 둘러봤다. 대체로 깔끔한 도시라는 것을 것을 직감했다. 교통안내판에 영덕, 예천, 단양, 문경, 영주 등 지명이름이 거론 된 것으로 보아 가까운 주변도시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또 도산서원, 봉정사, 우각사, 병산서원, 하회마을, KBS드라마 촬영지, 학기산 온천, 콘텐츠 박물관, 임청각 군자청, 월영교, 안동댐, 안동공예문예관, 안동한우마을, 마애선사유적지 등의 지명을 알린 갈색 유적지 표지판이 곳곳에 서 있었다. 먼저 가장 유명한 하회마을로 향했다.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로 가는 길 들판엔 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벌써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락도 보였다.

잡초에 우거진 벼이다.  농약을 치지 않은 자연농법이다.
▲ 잡초와 벼 잡초에 우거진 벼이다. 농약을 치지 않은 자연농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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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히 자라고 있는 벼, 농약을 쳐 잡초가 없다.
▲ 벼 깔끔히 자라고 있는 벼, 농약을 쳐 잡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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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수확을 알리는 듯했다. 들판을 보니 벼가 깔끔하게 자라는 논이 있는가 하면, 많은 잡초와 함께 벼가 자라는 논도 있었다. 과거 속담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깔끔하게 자라는 벼와 잡초가 어우러져 자라는 벼를 비교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어릴 적 시골에서 농사일을 거들면서 자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었다.

피를 뽑고 농약을 쳐 잡초를 제거해야 풍성한 벼를 수확해 올릴 수 있건만, 농부가 게으르지 않고서는 저렇게 잡초가 우거지도록 놓아둘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하도 답답해 운전을 하던 후배에게 물었다. 그는 안동 인근 영주에서 자라 안동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중․고등학교시절 디스크 수술을, 영주에 큰 병원이 없어 안동까지와 받았다면서 수술한 병원이 스쳐 지나가자 그곳을 가리키기도 했다.

후배가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깔끔하게 자라는 벼는 제초제 등 농약을 뿌려 자라는 벼이고, 잡초로 우거진 벼는 자연농법으로 그냥 수확하는 벼라는 것이었다. 잡초로 우거진 벼는 깔끔한 벼에 비해 수확은 훨씬 떨어지지만 훨씬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고도 했다. 듣고 보니 내가 어리석은 생각을 했다는 것을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환경파괴의 원인이 농약이었고, 농약을 쳐 자란 쌀을 먹은 사람들의 건강 문제가 화두로 되고 있는 이때 자연농법과 유기농법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던 것이었다.

조금 지나자 하회마을 입구에 '하회 한우 된장마을' 식당 간판이 나왔다. 된장국, 한우고기, 냉면 등 음식도 팔지만 직접 만든 된장도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이 식당은 익히 음식 맛이 좋은 곳으로 소문나 있었다. 이곳을 지나자 대부분의 식당은 안동한우, 안동찜닭, 간고등어, 막걸리 등 지역음식을 알리는 홍보 현수막을 내걸어 놓았었다. 또 하회탈, 장승 판매 전시장도 눈에 들어 왔다.

지난 2010년 5월 27일 문을 연 ‘하회동 탈박물관’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의 탈들이 다 모여 잇는 곳이다.
▲ 하회동 탈 박물관 지난 2010년 5월 27일 문을 연 ‘하회동 탈박물관’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의 탈들이 다 모여 잇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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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이다.
▲ 탈박물관 탈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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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교문화축전, 국내최초 실경수상뮤지컬 '부용지애' 등의 축제를 알리는 깃발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하회마을 입구 주차장에 승용차를 주차하고, 인근 음식점과 선물가게를 둘러봤다. 특히 이목을 집중시킨 곳은 지난 2010년 5월 27일 문을 연 '하회동 탈박물관'이었다. 말로만 듣던 하회탈, 하회별신굿 탈놀이 등에 쓴 탈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회마을 입구에 우뚝 서 있는 박물관은 유료입장(일반 2000원, 청소년 1000원)이었다.

선조들이 잡귀를 쫓거나 장례의식에 많이 사용했던 탈, 그렇지만 주로 탈놀이에 많이 사용한 것이 탈이었다. 탈놀이는 흥겨운 춤, 장단, 노래가 어우러진 가운데 놀이꾼과 구경꾼이 함께 흥과 신명을 풀어내는 신명풀이 장이었다. 특히 조선 중기 이후 신분질서가 엄격했던 사회구조 속에서 탈놀이는 양반들의 묵인 하에 하층민들의 억눌린 감정과 불만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탈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어 박물관 내부를 둘러봤다. 우리나라는 물론 희한하게 생긴 전 세계 탈 가면들이 전시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인도의 쵸우가면, 태국의 콘가면, 티베트의 참가면, 일본의 노우가면, 중국의 나희가면 등 수많은 나라의 탈이 전시됐다. 특히 풍농을 기원하거나 악령 퇴치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주술가면, 죽은 이의 넋을 기리는 조상가면, 죽은 이를 악령으로부터 보호하는 장례가면, 무용과 연극 등에 사용하는 예능가면 등 용도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는 탈들이 즐비했었다.

박물관은 한국관, 아시아관, 세계관, 시청각실로 구성돼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관에서는 하회탈을 비롯해 황해도 봉산탈, 강령탈, 은율탈과 서울경기의 산대놀이 탈, 부산지방의 아류탈, 영광농악 잡색탈, 강릉관 노가면극 탈, 경남의 오광대 탈, 북청사자놀이 탈, 예천청단놀이 탈 등이 참 신비스럽게 다가왔다.

박물관을 나와 하회마을로 향했다. 박물관 입구에서 하회마을입구까지 시내버스가 유료(700원)로 운행했다. 버스를 타고 4~5분쯤이 흘렀을까 곧바로 도착 한곳이 하회마을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사)하회마을보존회에서 걸어놓은 '안동하회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확정' 현수막이 일행을 반기는 듯했다. 인근 습지에는 많은 연꽃(백련)나무가 자라고 있었고, 연꽃 두렁에는 코스모스가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선시대로 돌아가 시골길을 걷는 느낌으로 천천히 관람을 시작했다.

풍산류씨 대종택 양진당의 모습이다.
▲ 양진당 풍산류씨 대종택 양진당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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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은 '낙동강 물이 마을을 감싸 돌아 흐른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었다. 풍산 류씨의 집성촌으로 서애 류성룡 선생 같은 대학자를 배출한 곳이었다. 대표적으로 풍산 류씨의 대종택인 양진당과 서애 류성룡의 대종택인 충효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화경당, 염행당, 번남고택, 하동고택 등도 위엄을 자랑했다.

특히 보물 306호로 지정된 풍산류씨 대종택 양진당(養眞堂)은 이 마을에서 최초로 지은 집이기 때문에 유서가 깊었다. 풍산에서 살던 류종혜 선생이 이곳에 들어와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14세기 무렵 지은 집으로 임진왜란 때 화재가 나기도 했었다. 웅장한 규모로 문중의 모임은 사랑채에서 했었다. 양진당(養眞堂)은 풍산류씨의 족보를 최초로 완성한 류영(1687~1761) 선생의 호라고 알려져 있다. 사랑채에 걸려 있는 현판 '입암고택(立巖古宅)'은 겸암 류운룡 선생의 부친인 류중영 선생의 호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류성룡 선생 종택에 들어 서기 전에 심어 있는 구상나무는 1999년 4월 21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기념식수를 한 나무다. 구상나무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한국 고유의 수종으로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수였다. 구상나무와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고택이 류성룡 선생의 종택 충효당(忠孝堂)이었다. 충효당은 17세기에 지어진 집으로 서애 류성룡 선생이 벼슬을 마치고 귀향 후 풍산현에 있던 작은 초가집에서 죽음을 맞이했었다.

충효당은 서애 선생이 생전 “나라에 충성하고 부도에게 효도하라”는 말을 강조한데서 비롯됐다고. 12칸의 긴 행랑채는 서애 선생의 8세손인 류상조 선생이 병조판서에 제수 받고 부하 군사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은 집이었다.
▲ 서애 류성룡의 종택 충효당은 서애 선생이 생전 “나라에 충성하고 부도에게 효도하라”는 말을 강조한데서 비롯됐다고. 12칸의 긴 행랑채는 서애 선생의 8세손인 류상조 선생이 병조판서에 제수 받고 부하 군사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은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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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은 사대부들이 사용한 기와집과 서민들이 사용한  초가집이 어우러져 있다.
▲ 하회마을 초가집 하회마을은 사대부들이 사용한 기와집과 서민들이 사용한 초가집이 어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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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의 손자와 제자들이 생전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집이 충효당이었다. 충효당은 서애 선생이 생전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말을 강조한데서 비롯됐다고. 12칸의 긴 행랑채는 서애 선생의 8세손인 류상조 선생이 병조판서에 제수 받고 부하 군사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은 집이었다. 충효당에는 류성룡 선생의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이 있다.

특히 하회마을은 조선전기 이후 전통적 가옥구조와 전통 민속놀이인 하회별신굿놀이와 줄불놀이 등이 잘 보존된 마을이었다. 지난 99년 엘리자베스 여왕 방문을 기념해 2001년부터 매년 4월 '물돌이축제'가 열리고 있는 곳이었다.

지난 1984년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대대로 살아온 전형적인 동성마을이었다. 낙동강 물줄기 끼고 푸른 산과 들판 등 화려한 경관을 자랑한 곳이었다. 사대부집으로부터 서민 가랍집(서민집)까지 고건축물들이 잘 보존돼 있었다. 이곳에 가서 조선시대 퇴계 이황의 제자였던 대유학자 겸암 류운룡(1539~1601) 선생, 임진왜란 때 여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이 태어난 유서 깊은 곳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99년 4월 방문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기념식수한 나무이다.
▲ 구상나무 99년 4월 방문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기념식수한 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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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학적으로 하회는 태극형, 연화분수형, 다리미형 등 길지로 알려져 있었다. 낙동강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S자형을 이루면서 마을을 감싸 돌고 있어 지명이 하회(河回)가 됐다. 동쪽으로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花山)이 있고, 그 줄기의 끝이 강에 싸인 마을까지 뻗어 아주 낮은 구릉을 이루고 있었다. 집들은 구릉을 중심으로 낮은 곳을 향해 배치돼 있어 집의 좌향(座向)이 일정하지 않고 동서남북을 향한 각 방향의 집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집들의 배치는 마을 중심부에 큰 기와집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가랍집은 그 주위를 둘러싸고 배치돼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서북쪽 높게 서 있는 부용대에 오르면 이 마을의 독특한 지형과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경치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고 주민들이 귀띔했다. 일부 고택 처마 밑에는 제비들이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 지저귀고 있었다.

하회별신굿놀이, 줄불놀이 등이 전승돼, 이때 사용했던 하회탈이 국보로 지정돼 있었고 대종택인 양진당과 서애 종택인 충효당이 보물로 지정돼 있었다. 중요민속자료도 10여점이 보관돼 있었다. 구석구석에 탈과 장승을 파는 집도 선보였다. 이곳에서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전통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회마을 막걸리와 안동고등어는 일품이다.
▲ 고등어와 막걸리 하회마을 막걸리와 안동고등어는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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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사이사이 고택을 돌아보고 마지막 허름한 초가집 식당에 들러 간고등어 안주에 걸쭉한 막걸리로 회포를 풀었다. 1시간 30분간 동안 쉴 새 없이 하회마을을 돌았기 때문이었다. 하회마을 식당 할머니가 직접 기른 고추에 직접 만든 된장 맛, 거기에 허기를 달래는 통통한 간 고등어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과거 뱃길이 닿지 않았던 내륙지역 안동은 좀처럼 생선 맛을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바다가 있는 지역에서 고등어를 사와 고등어에 왕소금을 뿌려 절여 오래 보관했다. 바로 이렇게 '안동고등어'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안동고등어가 유명해진 것은 안동지역 주민들이 바다생선을 내륙화시켰기 때문이었다.

안동고등어에 막걸리를 다 마시고 숙취해소를 위해 하회마을 나루터가 있는 낙동강 둑을 따라 강바람을 쐬면서 걸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가다 어둠에 묻칠 듯한 낙동강 노을을 바라 보았다.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듯했다. 이 광경을 마지막으로 하회마을을 빠져 나왔다.

하회마을을 감싸고 있는 낙동강 나루터이다.
▲ 낙동강 나루터 하회마을을 감싸고 있는 낙동강 나루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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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마을 인근 동산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저녁 풍경
▲ 낙동강 저녁 풍경 하회마을 인근 동산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저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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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서 승용차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안동 한우 골목' 식당으로 향했다. 안동 한우를 직접 맛보기 위해서였다. 안동시 운흥동에 있는 한우골목 '대마숯불갈비'집에서 먹은 안동소주와 안동 한우 생갈비는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없애주는 피로회복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태그:#안동 하화마을, #안동 하회동 탈박물관, #안동고등어, #안동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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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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