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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프랑스어로서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계급사회의 역사가 오랜 유럽에서 귀족으로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예(노블레스)만큼 의무(오블리주)를 다해야 한다는 것인데 오늘날에도 면면하게 이어져 유럽 사회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을 지탱하는 한 축이다.

 

아직도 왕실과 귀족제가 유지되는 영국의 경우,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에 2천 명이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다. 미국의 경우에도 미군 현역장성의 아들 140여 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해 그중 35명이 사망 또는 부상했다.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으며,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의 아들도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했다. 마오가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라고 지시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철강왕 카네기와 석유재벌 록펠러부터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갑부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에 이르기까지 사업을 통해 축적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미국 부자들의 기부문화도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물려받은 것이다. 이들이 있기에 부자가 존경받는 사회, 성숙한 자본주의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6형제 중 5형제는 중국에서 사망... 이시영만 살아 돌아와 초대 부통령

 

자본주의 역사가 짧은 한국 사회에도 드물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완벽하게 실천한 가문이 있다.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1867~1932)과 그 형제들이다.

 

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이유승에게는 6명의 아들이 있었다. 첫째 건영, 둘째 석영, 셋째 철영, 넷째 회영, 다섯째 시영, 여섯째 호영이 이들이다. 1910년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이들 6형제는 전 재산을 처분해 식솔들을 이끌고 조국의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해 서간도 망명길에 올랐다. 넷째인 우당이 형제들의 동의를 얻어 내린 결단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0년 12월 31일의 일이다.

 

백사 이항복의 11세 후손으로 명문세도가의 대부호인 6형제가 전 재산을 처분해 마련한 현금은 40만원. 요즘 화폐로 환산하면 600억원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고 한다. 국내에 거주할 때부터 헤이그 특사 사건의 배후였고, 전국적 비밀조직체인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는 데 관여한 우당은 이 돈으로 만주에 최초의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를 세운다.

 

중국 지린성[吉林省] 류허현[柳河縣]에 세운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는 폐교될 때까지 2100여 명의 독립군을 배출해 나중에 광복군 태동의 기초가 되었다. 김좌진 장군이 지도한 청산리 전투, 홍범도 장군이 지휘한 봉오동 전투에서 몸을 불사른 독립군 대부분이 신흥무관학교 출신이었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흘러서 조국이 해방되기까지 독립운동에 뛰어든 6형제 가운데 5형제가 모두 중국에서 죽었다. 우당도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조선 독립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채 이국땅에서 죽어갔다. 다섯째 시영만 살아 돌아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냈다. 나라의 독립과 자존을 위해 전 재산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초개처럼 바친 이들 6형제를 빼놓고 어찌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논할 수 있으랴.

 

'우당과 그 형제들'전(展), 박재동 화백 등 작품 기증

 

서울 종로구 창성동 갤러리 자인제노(02-737-5751)에서는 우당의 작품과 함께 박재동 화백 등 22명의 작가로부터 작품을 기증받은 작품 40여 점을 전시 판매하는 '우당과 그 형제들'전(展)이 8월 11일부터 20일까지 열리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판화 작품을 내놓은 박재동 화백은 '국민 사회자' 최광기씨가 사회를 본 11일 개막식에서 직접 얼후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우당의 친손자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인사말에서 "우당이라는 100년 전 무대에서 활동했던 분도 이제는 우리 시대의 공개된 공간에서 다시 조명되기를 희망한다. 아마 이것이 역사의 올바른 해석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우당 망명 100주년과 국치일(國恥日)을 앞두고 우당의 생애와 사상을 기리는 행사가 열려 후손으로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축사를 한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구청장으로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종로구에서 이런 행사가 열린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참석했다"면서 "우당 선생의 일생과 뜻을 기리기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작품 판매 수익의 일부는 우당기념사업회(이사장 이종찬)에 전달된다. 오로지 우당의 삶에 감동해 '우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우사모)을 만든 최원일씨(전 참여정부 청와대 행정관)가 기획했다.

 

대통령이 앞장서 위장전입과 병역기피 그리고 부동산투기를 이 정부의 고관대작이 되기 위한 '3대 필수과목'으로 만들어 놓고서도 '공정한 사회'를 외친 광복절인 오늘, 100년 전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완전무결하게 실천한 우당이 남긴 말이 귓전을 때린다.

 

"이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 위기에 처했는데 비굴하게 일신의 안위만을 위해 가문의 전통을 배반할 수 있겠는가?"


태그:#우당, #이회영, #이시영, #이종찬, #자인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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