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상지대 사태가 끝 모르게 이어지고 있다. 정상화는커녕 오히려 분란이 더 커질 전망이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지난 10일 회의를 열고 김문기 전 이사장만 제외하고 그의 아들인 김길남 상지문학원 이사장을 비롯해 그들이 추천한 4명과 학교 구성원 추천 인사 2명, 교육부 추천 2명 등 정이사 8명과 조정을 위해서 1명의 임시이사를 파견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학생과 교수 등 학교 구성원들은 '비리 재단의 학원 탈취, 구재단의 화려한 복귀'라면서 반대하고, 구 재단 측도 '설립자 김문기씨가 빠졌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김문기가 당장이라도 아들을 통해 학교에 개입하는 것뿐 아니라 곧 이사로 정식 복귀하는 것도 임박했다는 예측이다.

1993년 김문기 전 이사장이 입시부정 혐의로 구속되면서 시작된 상지대 사태가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가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음에도 설립자 아니냐"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도 이런 시각으로 상지대 사태를 보도하고 있다. 과연 "그는 상지대, 상지학원의 설립자"가 맞을까?

'김문기는 상지학원의 설립자가 아니다'는 대법원 판례

"김문기는, 교육부장관이 2000. 10. 16. 피고 학원 설립 당초의 임원을 원고 김문기 등 8명에서 원홍묵 등 8명으로 변경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피고 학원 정관변경을 인가하자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위 정관변경인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2001. 2. 16. 서울행정법원에서 피고 학원의 설립 당초의 임원은 원홍묵 등 8명이므로 피고의 처분은 적법하다는 이유로 위 청구를 기각하였고, 원고 김문기는 항소하였으나 2002. 10. 15.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기각 판결을 선고하였으며, 다시 상고하였으나 2004. 10. 28. 대법원에서 상고기각 판결을 선고하였다."

- 서울고법 2004나30776 판결, 대법원 2006다19054 확정

김문기 등 구재단이 자신의 복귀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근거로 드는 법원 판결문의 일부이다. 임시이사가 설립자 측 종전이사들과 협의 없이 정이사를 선임한 것을 위법이라는 결정을 한 그 법원 판결문에도 "상지학원의 설립자는 김문기가 아니라 원홍묵"이라고 적시되어 있다. 대법 판결 등을 근거로 상지대비상대책위원회는 "상지학원은 청암학원에서 이름만 바뀐 것이고, 상지대학은 원주대학이 이름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 김문기는 원주대학 임시이사로 와서는 스스로 정 이사와 이사장에 취임했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문기는 1973년 관선이사로 원홍묵씨가 설립한 청암학원에 와서 74년 자신을 설립자로 하도록 정관을 변경했다가 1993년 쫓겨났다. 이후 임시이사회에서 다시 설립자를 원홍묵씨로 변경하는 정관 개정을 하자 김문기씨 측에서 정관 개정이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대법원은 설립자를 원홍묵으로 하는 이 정관 개정이 합법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상지학원에 대한 설립자 논쟁은 끝났다.

상지대학 홈페이지 법인 소개란. 여기에는 상지학원이 원래 청암학원이었으며 관선이사로 온 김문기씨가 이후에 정관변경을 통하여 자신을 설립자로 변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원래의 청암학원 설립자인 원홍묵씨로 설립자를 변경한 것에 대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설립자가 원홍묵씨라는 주장에 최종적으로 손을 들어주었다.
 상지대학 홈페이지 법인 소개란. 여기에는 상지학원이 원래 청암학원이었으며 관선이사로 온 김문기씨가 이후에 정관변경을 통하여 자신을 설립자로 변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시 원래의 청암학원 설립자인 원홍묵씨로 설립자를 변경한 것에 대한 소송에서 대법원은 설립자가 원홍묵씨라는 주장에 최종적으로 손을 들어주었다.
ⓒ 홈페이지캡쳐(김행수)

관련사진보기


상지대 홈페이지의 연혁에도 이 과정이 잘 드러나고 있다. 김문기 측도 자신이 원주대학과 청암학원을 유상 인수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즉, 대법원 판례나 실제 역사를 보더라도 "상지학원은 청암학원이 이름만 바뀐 것이며, 청암학원의 설립자는 김문기가 아니라 원홍묵인 것이 명백"해 보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대외적으로는 김문기가 설립자라고 주장하고, 대부분의 언론이 이렇게 받아쓰고 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그런 줄 알고 있다.

설립자 변경에 의한 역사 왜곡은 상지여중고에도 있었다

김문기가 기존에 존재하는 사립학교를 인수해 자신을 설립자로 둔갑시킨 경우는 상지대학 외에도 또 있었다. 상지대가 소재한 원주에 상지학원 외에 상지문학원이라는 별도의 학교법인이 있는데 상지여중과 상지여고를 운영하고 있다.

이 학원의 이사장은 이번에 상지학원의 이사로 추천된 김길남이고, 이사는 김문기다. 1994년 상지대학 이사였다가 쫓겨난 조규문, 김준기 등도 이 상지문학원의 이사인데 이들이 모두 이번에 상지대학 이사로 다시 추천됐다. 특히 이들은 지난 7월 상지대 사태와 관련해 교사들을 근무 시간에 집회에 동원해 강원도교육청으로부터 '기관주의' 처분을 받았을 정도로 김문기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학교의 홈페이지 법인소개란을 보면 역시 재미있는 기록이 나온다. 이 상지문학원 역시 애초 이름이 성화학원이었으며, 학교 이름도 상지여중, 상지여고가 아니라 성화여중, 성화여고였다. 설립 당시에는 김문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는데 1974년 설립자를 김문기로 변경하고 그가 이사장으로 취임한다. 그리고 상지학원과 똑같은 수법으로 법인 이름을 상지문학원으로, 학교 이름을 상지여고, 상지여중으로 바꾸고 아내인 김옥희씨에 이어 2002년에 아들인 김길남 현 이사장이 취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상지여고의 홈페이지에 최초의 학원 이름은 성화학원, 학교이름은 성화여중, 여고로 나오며, 김문기측은 최초의 설립자가 아니라 나중에 들어와서 설립자를 자신으로 변경하고, 아내에 이어 아들이 이사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상지여고의 홈페이지에 최초의 학원 이름은 성화학원, 학교이름은 성화여중, 여고로 나오며, 김문기측은 최초의 설립자가 아니라 나중에 들어와서 설립자를 자신으로 변경하고, 아내에 이어 아들이 이사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 홈페이지캡쳐(김행수)

관련사진보기



학교측이 올려놓은 이 자료에 따르더라도 상지여고와 상지여중 역시 설립자가 김문기가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성화여고와 성화여중이 이름만 바꾼 것임이 명백하다. 역사적 진실이 이러함에도 김문기는 상지여고의 홈페이지에 자신을 "상지학원, 상지대학교, 상지영서대학, 상지대관령고등학교, 상지문학원, 상지여자중학교, 상지여자고등학교의 설립자"로 소개하고 있다.

김문기가 과거 상지학원의 이사장이었던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상지학원의 최초 모태는 청암학원이고, 그 설립자 역시 원홍묵씨라는 것 역시 명백하다. 설립자는 둘일 수 없다. 이는 마치 DJ정부에서 제2의 건국운동을 펼쳤다고 해서 DJ가 대한민국의 건국자가 될 수 없는 것과 똑같다. 설립자를 변경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이는 아버지를 할아버지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이치와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김문기 전 이사장은 누구인가?

사립학교 재단의 운영 주체가 바뀌는 경우는 많이 있다. 최근에 있었던 중앙대를 비롯하여 이전의 고려대 등도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사학법인의 운영주체, 즉 이사회 구성이 바뀌었다고 해서 설립자가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데 상지대의 김문기는 정관을 바꿔 자신을 설립자로 둔갑시켰다.

설립자가 바뀐 것도 이례적인 일이지만 상지학원의 역사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공립학교였던 대관령축산고등학교가 사립학교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상지학원의 역사를 보면 1987년 강원도 평창군 소재 공립 대관령축산고등학교를 국가로부터 인수해 학교법인 상지학원의 경영학교로 귀속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현재의 대관령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울의 금옥여고와 같이 설립될 당시에는 사립이었지만 설립자가 국가나 사회에 헌납하여 공립학교로 바뀌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공립학교가 사립학교로 바뀌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절대로 바뀔 수 없는 역사인 설립자를 변경하고, 공립학교를 사립학교로 바꾸는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김문기는 가구점을 운영하면서 부를 쌓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홈페이지 등에 공개한 이력에 의하면, 그의 이름이 정치계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은 1972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되면서부터였다.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들면서 설치한 기구로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국회의원 정수의 1/3 선출, 헌법개정안의 최종 확정 등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그는 '박정희 친위대'라는 비판을 받은 이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초대와 2대 대의원이었다.

그러다 박정희 사후 전두환을 필두로 하는 신군부가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하자 곧바로 말을 바꾸어 타고 1980년 민주정의당(이하 민정당) 창당발기인으로 참가한다. 학교 이사장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지 직접 민정당의 중앙당 운영실장이 됐다. 이후 12대 국회의 민정당 국회의원이 됐고, 13대에도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한 후에는 민자당 강원도지부 위원장을 지내고 1992년에 14대 국회의원으로 3선에 성공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1993년 YS 정부에서 공직자 재산공개를 시행하면서부터였다. 취임 직후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실시하였던 YS 정권 초기 대통령 자신을 필두로 공직자들과 국회의원의 재산을 공개하도록 했다. 국회의원의 재산이 공개되면서 국민들은 깜짝 놀랐다. 1993년 당시 민자당에만 재산이 100억 넘는 국회의원이 8명이나 되었고 그 중에 김문기가 단연 최고였다. 이렇게 수백억의 재산을 가진 국회의원들은 도마에 올랐고 부정 축재 혐의에 휩싸인 일부 국회의원들은 옷을 벗어야 했다.

김문기 역시 당시 부정입학과 관련해 학부모에게 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되어 결국 대법원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이후 민자당에서 팽 당했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 말을 바꾸어 타고 1996년 김종필 등 구 공화당 3공세력을 중심으로 창당한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해 강릉 지역당 위원장을 맡으면서 정치적 재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후 DJ정부,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아직 성공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가 신군부 등 권력과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확인해 주는 또 다른 자료는 그가 1981년 사학육성공로 서훈 봉황장을 받고, 1982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대통령 전두환'에게서 받았음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주목해서 봐야할 2010 대법원 판결

지난 10일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회의를 통하여 상지대학 구 재단 측이 추천한 4명을 이사로 임명하는 등 사실상 구재단에게 학교 경영권을 넘겨주는 결정을 했다. 이런 가운데 대법원은 사학분쟁조정위원회와 상지대 구재단 측이 금과옥조처럼 인용하고 있는 2007년 상지대 정이사 선임 무효 소송 결정과 전혀 다른 결정을 내렸다.

"정○(종전 이사장, 설립자의 아들)은 신성학원의 운영을 전횡하면서 기본재산을 횡령하고 이를 보전하기 위하여 경영권까지 참가인에게 양도하여 이를 포기하였고, 원고와 공동소송참가인들(종전 이사들)은 이사로서의 권한 행사와 의무 이행을 전혀 하지 아니함으로써 정○의 전횡을 방치해 온 점 등 판시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신성학원의 정상화 방안을 심의, 의결함에 있어서 원고와 정○ 등 종전이사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하여 무슨 잘못이 있다고 볼 수 없는 등 이 사건 처분은 적법하다."(대법원 2010두6069, 서울고등법원 2009누23350)

지난 6월 24일 대법원은 비리로 물러난 경기도 신성학원의 전임 이사장 아들과 종전이사 등이 경기도 교육감을 대상으로 '경기도교육청이 정이사를 선임함에 있어 자신들(설립자와 종전이사들)에게 이사선임권을 주지 않은 것은 위법하다'고 제기한 소송에 대한 판결에서 2007년 상지대 판결에서 임시 이사측의 일방적 정이사 선임은 무효라는 결정과 달리 "구재단(종전이사)의 정이사 선임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결정했다.

대법원에서 5:7로 아슬아슬하게 결정된 상지대와 달리 신성학원 판결에서는 전원일치로 정이사를 선임함에 있어서 비리로 물러난 종전이사의 의견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했다. 교과부와 사학분쟁조정위는 어떤 결정을 따라야 하는 것인가?
 대법원에서 5:7로 아슬아슬하게 결정된 상지대와 달리 신성학원 판결에서는 전원일치로 정이사를 선임함에 있어서 비리로 물러난 종전이사의 의견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했다. 교과부와 사학분쟁조정위는 어떤 결정을 따라야 하는 것인가?
ⓒ 김행수

관련사진보기


신성학원의 정○ 전 이사장이 학교운영에서 전횡을 일삼다가 쫓겨난 점은 상지학원의 전 이사장인 김문기가 입시 부정 등 전횡을 일삼다가 쫓겨난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정 전 이사장의 아들인 정○○씨와 종전이사들이 학교에 정이사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소송을 제기한 것 역시 상지대와 별로 다르지 않다. 학교에 비리가 발생하던 당시 이사였던 소송 당사자들이 이사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전횡을 방치하였다는 점 역시 상지학원과 신성학원의 공통점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신성학원에 대한 판결은 상지대 사태에도 적용될 만하며, 상지대 사태 해결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2007년 대법원의 상지대 판결에서 대법관 12명 중 정이사 선임이 무효라는 주장이 7명이었고 무효가 아니라는 입장이 5명이어서 1명의 입장만 달랐어도 대법원의 결정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경기도 신성학원의 결정에서는 참가 대법관 4인 전원일치의 의견으로 사립학교법 상 정이사 선임에 있어서 종전 이사측의 입장은 '의견을 듣는 절차상의 문제일뿐 반드시 그 의견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다.

교과부 재심 요청과 사분위 재결정이 정상화의 유일한 해법

사실 상지대학교에 대한 대법 결정에서도 '건학이념 실현을 위하여 종전이사에게 정이사 선임권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소수 의견에 그쳤다. 하지만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이 대법 판결을 왜곡해 상지대 정이사 선임 과정에서 잘못된 결정을 한 것이라는 비판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번 신성학원 재판을 통하여 이런 점은 더욱 명확해졌다.

상지학원의 설립자가 김문기가 아니라는 기존의 대법원 판례, 그리고 정이사를 선임함에 있어 반드시 종전 이사의 의견을 따를 필요는 없다는 새로운 대법 판례에 따라 이제 교과부의 선택도 자명해졌다. 새로운 대법 판례에 따라서 교과부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고,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역시 이를 받아들여 합리적인 새 결정을 하면 된다. 현재 상태에서는 이것만이 상지대를 정상화시키는 유일한 길로 보인다.


태그:#상지대, #김문기, #대법원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8,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