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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베 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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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완전 애주가였어요. 그에 따라 어머니가 많이 힘들어했고 상상할 수 없는 불행한 시절을 보냈죠. 지금은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청소년기에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많았어요. 그 아픔을 드럼으로 풀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교회에서 드럼을 처음 접했던 게 계기가 되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와 담을 쌓고 무작정 상경했어요. 그리곤 드러머 최용주씨를 만났어요."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젬베 연주가 이강철씨
▲ 젬베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젬베 연주가 이강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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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악기가 된다.
▲ 드럼서클 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악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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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소개로 젬베 연주가 이강철(27)씨를 만났다. 기 수련에 열중인 오세민씨(54)가 서울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기차 여행 중에 이강철씨를 옆자리에서 만났는데, 대화를 해보니 젬베 연주가였고 요즘 보기 드문 '영혼이 맑은 청년'이라며 필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것.

대전의 한 웨딩홀 뜨락에서 지인과 함께 이강철씨를 만났다. 지인의 말대로 '영혼이 맑은 청년'이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아프리카 악기 젬베를 들고 환하게 웃는 첫인상부터 필자를 매료케 한다. 살면서 맑은 눈을 가진 예술가를 만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그의 음악 세계로 들어가 보자.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이후 아프리카 음악에 관심이 고조된 게 사실입니다. 매주 화요일 밤 홍대놀이터에서 드럼서클 문화행사가 진행되는데 반응이 아주 좋거든요. 우리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건전하게 놀 수 있는 문화가 없는 게 사실이잖아요. 이곳에서는 누구나 일상의 찌든 때를 벗고 춤을 추며 자기 악기를 연주합니다. 쉐이커, 탬버린, 기타, 우크렐레 등 세상의 소리나는 것이면 무엇이든 연주가 가능합니다. 그렇게 음악으로 하나가 되기란 쉽지 않아요."

경북 의성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아버지와 불화로 무작정 상경해, 드러머 최용주(37)씨를 만난 이씨는 최씨와 호형호제하며 드럼 연습에 몰두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교회에서 처음으로 드럼을 접했을 때 그 '쿵딱' 소리에 심장이 멎는 느낌을 받은 이씨는 인생 최고의 악기로 드럼을 선택하고 몰입하게 됐단다.

이씨는 서울에서 만난 드러머 최용주씨의 소개로 우리나라 드럼계의 일인자격인 안기승(56)씨를 만나게 된다. 이씨는 지금까지 4년여 동안 안기승씨를 스승 이상의 아버지로 섬기며 지도를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길을 만들 때 쉽게 빨리 만들지만 몇 년 안에 재공사를 하게 된다. 기초가 없이 드럼 연주를 하게 되면 시간이 지나 실력이 쉽게 무너진다. 기초를 제대로 연마하면 두려움이 없다. 그렇게 하게 되면 놀면서 즐기면서 드럼을 연주할 수 있다."

신나는 젬베 한마당
▲ 젬베 신나는 젬베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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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안기승씨의 가르침을 명심하며 드럼 연습에 몰두하던 이씨는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더욱 어렵고 힘들기만 한 드럼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돈이 없었다. 성공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열정에 대한 회의에 빠졌다. 이씨는 결국 드럼 연주를 포기하고 귀향을 결심했다.

"쿵, 딱 소리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이강철씨의 스승 최용주씨
▲ 드럼 "쿵, 딱 소리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이강철씨의 스승 최용주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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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철씨의 스승 안기승씨
▲ 드럼 이강철씨의 스승 안기승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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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 젬베 연주가와 운명적 만남

드럼 연주가의 꿈을 접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일까? 이씨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아프리카 이름 '나모리'로 통하는 당대 최고의 젬베 연주가 이영용(45)씨를 만났다.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이영용씨는 길거리에서 젬베를 15대 정도 풀어서 시민들에게 나누어주고 '드럼서클'이라는 것을 만들어 신나게 연주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북소리에 끌려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는 강철씨는 1시간 가량 구경하면서 젬베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젬베는 지금까지 자신이 추구했던 음악 세계와 전혀 다르면서도 '바로 이것이다'라는 전율감을 안겨 주었다. 이강철씨는 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멈추고 젬베와 속 깊은 인연을 만들어간다.

"젬베는 저에게 삶의 기쁨을 대변합니다. 저는 북을 치면 행복합니다. 행복한 제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외제차 몰고 부를 누린다고 하여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행복은 그냥 미소 짓는 거라고 생각해요. 젬베가 저를 그렇게 만들어 줍니다. 웃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잖아요."

손이 빚어내는 소리의 미학
▲ 젬베 손이 빚어내는 소리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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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악기 젬베가 대중들에게 알려지기까지 일부 가수들이 공중파에 출연해 역할을 했다지만, 그때만 해도 제대로 된 연주법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우리 국악을 함부로 논하면 안 되는 것처럼 젬베 또한 제대로 배워 보급해야 한다는 것이 이씨의 원칙이다.

"오일이 없으면 엔진이 안 돌아간다. 오일이 젬베라면 엔진은 드럼이다. 손으로 치거나 스틱을 두드려서 소리가 난다면 그것이 바로 악기다."

이강철씨는 단단하게 다진 드럼 실력을 바탕으로 이후 젬베에 푹 빠져 여기저기에서 젬베를 가르치고 연주하며 생활하고 있다. 홍대 앞에서 연주를 할 때면, 시민들이 손이나 스틱으로 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고 나와 신명 나는 시간을 보내는데 그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모두가 장단에 맞춰 신나게!
▲ 젬베 모두가 장단에 맞춰 신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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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신나게 웃어 봐요~"
▲ 젬베 "다함께 신나게 웃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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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경우 드럼서클이 활성화되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하고 교감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데, 이씨도 일부 단체에 강사로 출연하여 아주 짧은 시간에 그 참맛을 경험했다. 사람들이 드럼서클을 통해 충분히 변하고 소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것.

'드럼서클'이란 연주자와 관객이 분리되지 않고 연주자와 관객이 일체가 되어 신명나게 즐기는 것을 말한다. 아프리카가 프랑스 식민지였을 때, 아프리카 사람들이 낮에는 노예로서 노동을 하고 저녁에는 다 같이 북을 치고 춤을 추면서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형식이나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모여 북 치고 격의없이 노는 모습을 유럽인들이 바라보고 만들기 시작한 것이 드럼서클이다. 이후 유럽인들이 사람들의 심리 치료나 단합을 도모하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켜 다양한 커뮤니티 드럼서클이 탄생했다고 한다.

"젬베가 있어서 행복합니다."
▲ 젬베 "젬베가 있어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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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소통의 눈빛 부족... 안타까워

이씨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청소년들에게서 소통의 눈빛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컴퓨터나 휴대폰에 길들여져 모니터나 액정으로 소통은 잘 하지만 눈빛으로 교감하며 소통할 수 있는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씨는 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드럼서클을 거쳐 더 많이 미소 짓고 소통하고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그러면서 이씨는 대한민국 교육에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 문제는 우리 청소년들이 서로 어울리는 것을 모른다는 것. 자폐아나 장애우들과 연주를 하다보면 그들이 비장애인들보다 훨씬 마음이 열려 있고 생의 의지가 강해서 뭉클한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그들이 북소리에 이끌려 마음 안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분출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젬베 연주가로서 자신 또한 행복하다고.

꿈이 뭐냐고 묻자 대답이 아주 간단하다. '하루하루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이씨는 자신의 삶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꿈을 이룬 것이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의 불화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 그 결핍을 드럼과 젬베로 보상받고 있다고 느낀다는 이씨는 그 누구보다 행복의 전도사가 되어 젬베 연주가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투병 중에도 늘 웃고 계신 어머니. 생명 연장의 명약은 미소랍니다.
▲ 젬베 투병 중에도 늘 웃고 계신 어머니. 생명 연장의 명약은 미소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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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뇌종양으로 투병중인 어머니와 함께
▲ 젬베 말기 뇌종양으로 투병중인 어머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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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투병 중 어머니 찾아가는 효자

이강철씨는 매주 월요일마다 경북 안동의 한 요양원에서 말기 뇌종양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를 찾아 자식의 도리를 다하고 있는 효심 깊은 청년이기도 하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피켓을 만들고 싶어요. 그 피켓에 '만약 당신에게 웃을 일이 없다면 나의 웃음을 나누어 드리겠어요'라고 쓴 후에 길거리 어디서든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젬베와 함께 제 미소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살겠습니다."

이강철씨는 어머니의 고운 미소를 닮아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주 자연적으로 어머니의 미소를 떠올리며 자신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지독한 병마 가운데서도 어머니의 밝고 아름다운 미소를 보면 자식으로서 어머니를 존경할 수밖에 없다는 것.

몇 개월 살지 못할 것이라는 판정을 받고도 3년이 넘게 기적처럼 살아계신 어머니는 언제나 미소를 지으며 병마를 이기고 계신다. 미소가 곧 명약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이씨는 영원히 미소와 함께 젬베를 연주할 것이라고 말한다. 애초에 그를 소개한 지인의 말대로 이강철씨는 영혼이 아름다운 청년이다. 인터뷰 내내 필자도 미소에 빠졌다. 젬베와 함께 그 미소 영원하길 바란다.


태그:#젬베, #이강철, #드럼서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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