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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藝술

 

이 세상에는 제가 어머니라 호칭하는 세분이 계십니다.

 

한 분은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이고, 또 한분은 저의 처를 낳아주신 어머니이며, 또 다른 한분은 혈육으로 따지면 아무리 범위를 넓혀도 그 접점을 알 수 없지만 제게 혈육의 정으로 대해주시는 분입니다. 그 분이 바로 강매동의 산자락에 살고 계시는 전신영 어머니이십니다. 창릉천으로 서울과 금을 긋고 창릉천 하구에서 북동쪽으로 강고산, 봉대산, 봉태산, 온굴안산이 이어진 3km 남짓한 능선으로 서울과 울타리를 친 고양의 덕양구 강매동의 산 가두리 지역입니다.

 

원래 전신영 어머님은 여러해 전 저의 처가 전통 가양주 빚는 법을 배우면서 인연이 된 분으로 처 선생님과 함께 오랫동안 전통주를 함께 연구하며 문헌에만 남아있는 한국의 여러 명주를 되살리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빛나는 문화유산이 될 전통주는 각 고을마다, 혹은 각 명문가문마다 각기 다른 다양한 양주비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에는 주세를 징수하기 위해, 5.16 이후에는 쌀의 소비를 줄이는 양곡정책에 의해 전통적인 증류식 소주의 제조가 금지되고 희석식 소주로 바뀌었습니다. 쌀의 소비를 촉진해야 할 시점인 1991년 7월에 와서야 쌀로 술을 만들 수 있게 되었지요.

 

이렇듯 쌀의 소비를 막고 세수를 늘리기 위한 정책으로 1995년도에 다시 자가 양조가 허락되기까지 오랫동안 허가된 도가 외에는 술 빚는 것이 금지되어 그 방법이 전승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전신영 어머님은 뜻이 맞는 분들과 연구모임을 만들어 함께 술빚기를 실험하고 매년 그것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전시를 합니다.

 

어머님의 술 빚는 솜씨는 가히 일품입니다. 몇 번 KBS를 비롯한 공중파 방송에도 소개되었고, 한 유명 도가에서는 어머님의 독창적인 술을 상품화 하자고 제의도 하십니다. 또한 전국에 유기농산물을 공급하는 전문 업체에서 조차 어머님의 술을 상품화해 공급해줄 것을 청하곤 합니다. 물론 어머님은 그 상업적인 유혹에 미동도 않지만 어머님의 솜씨로 빚은 술맛이 하 예술藝術이라 저는 그 술을 '藝술'이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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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오직 남편만을 위해 노을 닮은 술을 빚다

 

어머님이 빚은 술이 다 익었을 때는 꼭 전화를 주셔서 술자리를 청합니다. 그 부름에 응할 때면 어머님께서 정성으로 장만하신 안주가 한 상입니다. 식을까 봐 옆에서 전기오븐을 놓고 고기를 한 점 한 점 구워주시곤 합니다. 아버님께서도 시큼한 맛이 나는 술은 홀로 드시고 제게는 가장 잘 숙성시켜 소줏고리로 내려 한 방울 한 방울 식혀 모은 술을 따라주시곤 합니다. 배불리 먹고 집을 나올 때면 꼭 두어 병 담아서 따로 챙겨주시지요. 어머님의 술 한 방울에 얼마나 많은 수고가 담겨있는지를 저의 처가 몇 번 술 담는 것을 보고 감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쌀을 여러 번 씻어 고두밥을 만들고, 잘 만든 누룩과 깨끗한 물을 섞어 이드거나 버무려주어야 합니다. 또한 잡균의 침투를 막기 위해 술독을 소독하고 담근 술은 온도를 잘 유지시켜 주어야 합니다. 술의 종류에 따라 빚은 술을 다시 빚는 이양주와 삼양주, 사양주 등 품이 계속 드는 작업의 연속입니다. 이렇게 공들인 술을 제게 아낌없이 퍼주십니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별난 것이 생기면 저의 몫으로 두셨다가 가져오곤 하십니다. 옥수수철에는 옥수수 두 자루를 시켜, 한 자루를 가져오시며, 감자가 나올 철에는 2박스를 주문해서 또다시 한 박스를 차에 싣고 오십니다. 텃밭의 돌봉숭아를 따도 제몫을 챙겨 들고 오시지요. 오실 때는 제가 청소로 바쁠 것을 헤아려 집 앞에 놓아두고 그냥가시기도 합니다.

 

몇 해 전이었습니다. 어느 날 전신영 선생님의 부군이신 이기풍 선생님께서 사골로 몇 시간을 푹 고아 희고 짙은 곰국을 한 양푼 들고 나타나셨습니다. 이 선생님은 부인의 심부름이라며 그것을 제게 내밀었습니다. 이런 곰국이야말로 어머니에게 아니면 누구에게 얻어먹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곰국을 받고부터는 전신영 선생님을 어머님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전 선생님께서는 손사래를 치시지만 제가 막무가내로 몇 해를 그렇게 부르고 나니 입에 익어져서 자연스러워졌고, 전 선생님도 더 이상 어쩌지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부군이신 이 선생님도 순리대로 '아버님'이 바른 호칭이 된 것이지요.

 

아무튼 그 넋을 뺏는 황금빛 노을 같은 빛깔을 가진, 달고, 시고, 떫고, 쓴,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이 담긴 듯한 맛의 술로 인연이 되었지만 어머님은 단 한 방울의 술도 드시지 못하십니다.

 

어머님이 술을 빚기 시작하신 것은 아버님 때문입니다.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님이 매일 희석식 소주를 드시는 것을 만류하기 위해서지요. 주정에 물과 향료로 희석한 쓴 희석식 소주 대신 손수 빚고 소줏고리로 한 방울씩 직접 증류한 향기롭고 부드러운 술을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후로 아버지께서는 10년 넘게 저녁식사를 어머님이 빚은 술 한 잔과 어머님이 준비하신 안주로 대신합니다.

 

아름다움만을 탐하다

 

아버님은 은퇴 후 봉대산 산중턱에 손수 집을 지었습니다. 선씨의 집성촌인 강매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한강의 하류를 조망할 수 있으며 한강 너머의 행주산성이 눈높이로 다가옵니다. 새집을 지어면서 오염된 생활하수를 한 방울도 한강으로 흘리지 않게 하기 위해 갈대에 의해 자체 정화하는 시스템을 환경전문 연구가에게 자문을 구해 시설했습니다. 정화된 하수는 텃밭의 생명수로 재활용됩니다.

 

저는 그 집에서 내려 보는 시원스러운 전망과 아름다움에 반해 아버님과 상의해 탐무루耽懋樓라 이름 붙였습니다.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움과 더불어 아름다운 생각만 이루어지는 집이기를 소망한 이름입니다.

 

아버님은 어릴적 깨금발을 뛰던 추억을 얘기하곤 합니다. 동무들끼리 잘못한 게 있으면 깨금발로 3번 뛰면 그것을 용서받곤 했던 기억입니다.

 

아버님은 가장 향이 좋고 오래된 술을 비축하였다가 간혹 20여 명의 평생 친구들을 청해 어머님의 '예술'을 아낌없이 내놓곤 합니다. 어머님이 격조 있게 차린 그 술상에 함께 하기 위해서는 초대받은 사람은 아버님의 전제(前提)에 따라야 됩니다. 그것은 바로 탐무루의 정원에서 세 번씩 깨금발을 뛰는 것입니다.

 

잘 빚은 술을 중심으로 한 술상에 앉기 위해서는 세상의 근심과 욕심은 물론 직위와 허위를 깨금발 뛰기로 다 털어버려야 합니다. 3번 깨금발 뜀을 함으로 부정을 다 떨어내고 마침내 오직 인생의 아름다움만을 탐하는 '탐무루'에서 경계 없이 어울릴 수 있습니다. 동심어린 깨금발 의식을 통해 이곳에서 긍정과 칭찬, 섬김과 배려 같은 인생의 아름다운 얘기만을 하게 됩니다.

 

술친구로 묵은 친구들만 청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마을의 어른들을 청해 어머님의 술을 권하곤 합니다. 그런 연유로 혈육과도 소원해져서 홀로 사시던 이 마을의 노인이 세상을 버리기 전에 친아들대신 아버님을 먼저 찾았습니다. 세상을 떠난 그 노인이 거처하던 버려진 집의 세간을 정리하신 것도 아버지와 어머니였습니다. 빈집의 구석구석을 정리하여 쓸 만한 것은 따로 챙겨 어렵게 친아들을 찾아 전하고 못 쓸 것들은 아버님, 어머님이 손수 처리하였습니다. 남들은 무섭다고 얼씬도 안한 집이었고, 아버님도 선득 들어가길 꺼리던 그 노인의 방을 어머님이 먼저 들어가 방치된 고인의 세간을 정리해드린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다 존엄하다

 

아버지는 여행을 가시질 못합니다. 아침마다 아버지와 산책을 하지 않으면 배변조차 안하는 키우는 진돗개 한 마리의 습성 때문입니다. 몇 마리의 토종닭을 키우시면 서도 닭이 천수를 누릴 때까지 돌보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몇 년 전 조류독감이 유행할 때, 일찍이 닭들을 시골로 피신시키기도 했습니다. 혹 동네에 조류독감 증세가 나타나 모든 닭들을 살처분해야 하는 때가 올까 염려되어서였습니다. 앞집개가 아프면 주인의 자존을 상하지 않게 하는 범위 안에서 병원에 치료하게 하니 그 개는 원주인의 귀가시간에 맞추어 잠시 제집에 들려 주인을 맞이하고 곧바로 탐무로로 달려와 탐무루의 마당에서 숙식을 해결합니다.

 

딸의 성화로 생후 3개월 되던 때에 들여와 한식구가 된 시추 한 마리는 딸이 캐나다로 유학가고 그것을 돌보는 일은 온전히 부모님의 몫이 되었습니다. 13살의 이 몽실이는 난소암을 앓아서 용변을 가리지 못하고, 백내장으로 시력이 거의 소실되어 앞이 보이지 않는 데다 노환 증세로 걸음걸이조차 부자연스럽습니다. 동물병원에 갈 때 마다 의사는 안락사를 권하지만 움직이는 이 종합병원을 귀저기를 채워 어버님의 방 한 코너를 내주고 극진하게 돌보며 천수를 다하기를 기다립니다.

 

지난번 안상규 화백님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생명에 대해 말씀을 주고받다가 아버님께서 아직도 죄책감으로 가슴에 남아있는 한 가지 에피소드를 고백했습니다.

 

"제가 청년이었을 때, 먼저 시집을 간 누이가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왔습니다. 산후조리를 위한 보양식으로 좋다면 동네분이 가물치 한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조혈작용을 한다는 그 가물치의 약효를 높이기 위해 달군 가마솥에 기름을 두르고 산 놈을 넣고 뚜껑을 닫았습니다. 그 녀석은 제가 손으로 누르고 있는 그 솥뚜껑을 사력으로 치다가 잠잠해졌습니다. 저는 솥뚜껑을 통해 전해진 그 녀석의 발버둥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 살인의 추억이 잊힐 수 있으면 무엇이든 하고 싶어요."

 

아버님은 누이의 산후조리의 보양을 위해 가물치를 고왔던 일조차 여태 괴로워하는 여린 심성입니다.

 

식당주인의 인심이 후한 이유

 

젊은 시절 두 분이 열심히 산 결과로 서울에 건물 하나를 장만해서 그것을 세놓아 은퇴 후의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식당을 하는 그 건물의 임차인을 돕기 위해 친구들과 만날 약속은 그곳에서 하곤 합니다. 그때마다 아버님은 약속시간보다 30~40분 먼저 가서 친구들 몰래 넉넉하게 돈을 쥐어드리고 친구들에게 푸짐하게 덤을 내놓도록 조치합니다. 친구들은 그 식당에 갈 때마다 식당주인의 아낌없는 인심을 칭찬합니다.

 

앵두꽃이 피는 때에 부모님 댁에 갔을 때, 어머님은 새끼손가락만 하게 자란 상추를 몇 움큼 뽑아 담은 봉지를 막무가내로 제게 쥐어주었습니다. 정원에 심어두었다가 여름에 쌈으로 먹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습니다. 그리고 몇 주 뒤 모티프원으로 퇴비를 두포 가지고 오셨습니다. 저는 어머님 덕분에 올 여름 상추를 사기 위해 시장에 갈일은 없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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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저희 부부뿐만 아니라 인연 닿는 모든 분께 최선을 다합니다. 택시를 타시고 집까지 오는 동안 나눈 대화를 인연으로 화가였던 그 택시기사의 개인전에 초대받기도 하고, 또한 그런 인연들을 집으로 청해서 격려하고 후원하기도 합니다.

 

미리 가슴 설레는 아버님의 '내보임', '이기풍의 볕뉘전'

 

아버님께서 세계의 평화와 나라의 안녕을 얘기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실천 가능한 것들만을 얘기하고 또한 실행합니다. 술자리의 안줏거리로만 끝나는 큰 담론 대신 작은 것에서 사랑을 뽑아내는 아버님의 세상에 대한 시선이 마치 '볕뉘'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인 그 볕뉘는 모든 것이 충분치 못한 팍팍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명 같은 빛입니다.

 

아버님의 그 볕뉘의 감성을 좀 더 시각적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행복을 전파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전에 아버님께 사진찍기를 권했습니다. 봄이면 만발하는 정원의 앵두꽃과 배꽃도 찍고, 그 꽃을 찾는 벌과 나비뿐만 아니라 상추잎 뒤에 숨은 두꺼비와 청개구리도 찍어서 삶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그 미시적인 관찰에서 또 다른 세상사의 이치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갖길 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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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아버님은 저의 제의에 동의하셨고 저는 카메라의 하드웨어에 해박한 이해를 가진 타우에게 아버님께서 쉽게 다룰 수 있는 바디와 렌즈를 사드리도록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진기를 아버님께 전해드리는 날, 저는 아버님께 또 다른 숙제를 내드렸습니다.

 

"아버님, 지금부터 어머님께서 술을 빚는 모습들을 찍으세요. 쌀이 누룩을 만나 향기 짙은 술로 바뀌는 그 과정에서 술 담은 단지의 온도가 올라가고 그 온도를 올리는 효소균의 부지런함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그 뜸팡이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럼 누가 사람만이 이 지구의 최고라고 젠체하며 주제 넘는 태도를 보일 수 있겠습니까. 또한 아버님의 소우주인 탐무루의 정원을 찍으세요. 사계절의 그 놀라운 변화를 카메라에 담는 것이지요. 그리고 돌배나무와 개복숭아 그리고 앵두꽃이 만발한 봄에 20여장을 선별하여 정원에 이젤을 세우고 '정원전시회'를 여는 겁니다. 이기풍의 첫 개인전이 되는 것이지요. 매년 그맘때 이 정원에 초대되었던 아버님의 친구들은 아버님의 새로운 변화와 관찰에 모두 감염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들도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할 또 다른 소재를 찾을 수 있겠지요."

 

'전시회'라는 말에 양손으로 손사래를 치시던 아버님도 소박한 정원에서의 친구들을 위한 파티로 바꾸어 말씀드리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실 저녁 술 한 잔 후 피리를 불곤 해요.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간혹 그 가락을 내보이곤 했습니다."

"한자 '전시회'의 우리말이 '내보임'입니다. 피리를 불 듯 그렇게 내보이는 거지요."

 

저는 내년 봄 탐무루의 정원에서 펼쳐질 아버님의 첫 개인전에 벌써부터 마음 설렘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저는 아버님의 그 첫 '내보임'을 '이기풍의 볕뉘전'으로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어릴 적 '이기풍'이라는 본인의 이름에 자주 놀림을 당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아들, 딸도 그 이름이 세련 되지못하다고 여겼답니다. 그래서 학교의 생활기록표 가족표기란에 아버님의 이름을 빼고 적곤 했던 모양입니다. 어머님께서 딸의 학교를 방문했을 적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잊을 수 없습니다.

 

"홀로 따님을 이렇게 잘 키우시느라 참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아버지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담임선생은 당연히 편모가정이라고 여겼던 것이지요. 저는 선비처럼 기상과 풍채를 품은 호방한 아버님의 이름 '기풍琪豊'이 참 좋습니다. 또한 아버님의 볕뉘 같은 생각과 실천이 꼭 귀한 '옥구슬 한 상자' 이상으로 값지므로 아버님의 이름과도 조화롭다, 여겨집니다.

 

70대의 어른이 60대의 이웃을 '아버님'으로 부르는 까닭

 

저는 어머님의 귀한 술을 저희 부부만 즐긴다면 죄악이다, 싶어 술을 좋아하는 헤이리의 이웃들을 모시고 탐무루를 방문하곤 했습니다. 그 중에는 저의 벗님인 안상규화백님도 계십니다. 안선생님은 탐무루의 아버님보다도 연세가 많은 분이지요. 안선생님은 저와는 친구사이니, 제게 아버님인 이기풍아버님께 당연히 저를 따라 아버님으로 호칭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탐무루라는 당호를 쓰서 선물하신 서예가 소엽선생님은 특별하게 '아바마마', '어바마마'라고 높여서 호칭하십니다. 그래서 저를 따라 아버님과 인연을 맺은 분들은 이처럼 이기풍선생님을 모두 아버님으로 호칭하게 되었습니다. 물리적인 나이를 뛰어넘는 이 '아버지'라는 호칭은 이제는 부자의 관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인 '이기풍'을 지칭하는 낭만적인 고유명사가 된 것입니다.

 

어제(6월 28일)는 카메라를 골라주느라 고생한 타우부부를 청해 탐무루 인근 한정식집 '목향'에서 저녁을 나누었습니다. 그 자리에 저희 부부와 공영석선생님부부도 함께했습니다. 공선생님이 고백했습니다.

 

"저의 처와 함께하는 나들이는 헤이리에 이사 온 후 처음입니다."

 

늘 라임트리의 좁은 주방을 지키던 공선생님의 사모님의 7년만의 외출에 동행한 우리가 더욱 특별한 날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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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그 자리가 파한 뒤에는 탐무로 자리를 옮겨 또다시 작은 술자리를 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을 나서는 우리들에게 아버님은 어김없이 어머님의 '예술'을 들려주셨고 작년에 직접 농사지으신 조선배추로 담근 묵은 김치를 처음으로 개봉하여 한 봉지씩 손에 들려주었습니다.

 

어버님은 이즘 모두가 먹고 있는 둥글게 결구를 이루는 개량종 배추대신 예전에 배추꼬랑지를 깎아먹곤했던 반결구종의 조선배추를 그리워했습니다. 속이 차는 대신 키만 크는 이 조선배추를 키 큰 미녀 같다, 해서 어머님은 미녀배추로 호칭합니다. 김치를 담가도 질겨서 개량종배추보다는 맛이 덜하지만 아버님은 옛 추억이 그리웠던 것이지요. 그러든 중 계룡산의 지인이 보내준 배추뿌리를 작년에 텃밭에 심어 씨를 받고 나머지는 모두 김치로 담가서 1년 동안 밀봉해두었습니다. 어제 그것을 개봉한 것입니다. 공선생님의 사모님은 조선배추의 씨앗까지 한 봉지 선물 받아서 흐뭇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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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어머님의 생활예술

 

아버님은 누군가가 장가를 못 들어 애태우는 사람이 있으면 옥상에서 별보고 빌도록 방법을 일러줍니다. 아버님도 30세가 넘도록 장가를 들지 못해 속 태우다가 매일 밤 옥상에 올라 별과 달에게 색시를 점지해주도록 빌었답니다. 그 후 오래지않아 어머님을 만났고 일사천리로 혼사가 진행되어 평생의 반려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버님은 어머님을 만난 것이 별과 달의 덕분으로 알고 계십니다.

 

어머님은 술 빚는 솜씨뿐만 아니라 예술적 감수성이 빼어나신 분입니다. 집안 어른들의 사진을 액자대신 네모진 작은 함지에 넣어 걸고, 시어른들의 오래된 사진부터 아들딸의 최근까지의 사진을 긴 유리액자에 시대별로 세로로 배치해 몇세대를 한 화면에 아우르는 작품 같은 액자를 만들어 거실에 세워두었습니다. 아버님의 60년이 훨씬 지난 돌복을 벽에 걸어 어느 유명화가의 작품을 걸어놓는 것보다도 더 의미 있는 장식을 합니다. 그 아래에는 고재古材 수납장을 이용해 칸막이가 많은 선반을 만들어 창호지를 바른 문을 달아 자질구레한 것들을 깔끔하게 수납할 수 있도록 꾸몄습니다. 구석구석에 툭툭 던져놓은 오래된 물건들도 용도가 있고 인테리어소품으로도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도록 했습니다. 한 번도 별도로 집꾸밈을 공부하지 않으셨지만 그 천부적인 재능이 이렇게 발현된 것입니다. 탐무루를 방문할 때마다 저는 '이것이 생활예술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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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집안의 막내이지만 크리스천인 형님을 대신해 제사를 모시는 등 종갓집의 역할을 떠맡은 아버님의 효심도 유별납니다. 이집의 가훈은 '문욱형진文郁亨振'입니다. '집안에 문학이 성하고 온갖 일이 형통하도록 하며 그것을 높이 떨친다'라고 풀 수도 있지만 이 가훈을 정한 아버님의 뜻은 '효심'입니다. '문욱'은 할아버지 그리고 '형진'은 증조할아버지의 함자입니다. 아버님은 선대 어른 두 분의 성함을 나란히 쓰서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머리맡에 걸었습니다. 자녀들도 아버님의 이런 효심을 보면 절로 수신修身과 제가齊家가 될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부모님집 거실의 가지런히 정리된 CD위에는 제 초상을 그린 안선생님의 그림을 프린터해서 CD케이스 액자에 담아두었습니다. 그 초상이 아버님이 저에게 가진 이미지 즉 대상을 관찰하는 예리함과 그 대상의 일부가 되어 고뇌하는 모습을 잘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린트된 그 모습으로 저를 되새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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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저의 처가 출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밤마다 눈물로 지새웠다는 소리를 소엽선생님을 통해들었습니다. 아버님도 아이디를 바꾸어 제게 글을 보내고 주위사람들을 동원해 그 의사를 번복하도록 앞장서서 종용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아버님은 간혹 제 글에 덧글을 다는 방법으로 제게 깨우침을 주십니다. 일전에는 이런 글을 남기셨습니다.

 

'지불생 무명지초地不生 無名之草(땅은 이름 없는 풀을 나게 하지 않는다)

한때 공부의 핵심은 잘살고 또한 남에게 속지 않고 폼 잡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이렇게 하는 것이 잘 배운 것일까? 답은 한가지만은 아닐 것이다. 추하지 않고 악하지 않게 살아가는 그러한 분들에게 답을 찾고 싶다.'

 

저는 이렇게 답글을 달았습니다.

 

'땅도 이름 없는 풀을 내는 법이 없는데,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 것 하나,

이유 없는 것이 있겠습니까. 단지 그 쓰임새가 다를 뿐이겠지요. 아버님께서는 이웃의 외로운 노인뿐만 아니라 풀 한포기, 닭 한 마리, 개 한 마리, 가물치 한 마리 모두 애달파하시고 감싸 안으니 아버님의 생각과 행함이 제 눈에는 모두 정답입니다.'

 

술과 곰국으로 맺어진 강매의 새로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지켜보노라면 '삶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늘 제 가슴속에서 맴돕니다. 두 분과의 8년간의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이 글을 통해 오랜 세월에도 풍화되지 않게 골이 깊은 음각으로 제 가슴속 깊이 새기고 싶습니다.

 

"부모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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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향보다 향기로운 술 이야기 | http://blog.naver.com/motif_1/30037567891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부모님, #전신영, #이기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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