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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이 생기니 뭔가 내 계획이 물렁해지는 느낌이다. 그래서 가끔은 일행이 생기는 것이 조금 답답할 때도 있다. 어떤 결정이든 의견을 모아야 하고, 내 애초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덮을 가장 좋은 점은 바로,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동굴라라는 곳으로 가려던 애초의 내 계획은, 교통편으로 인해 또한 일행이 된 알리의 의견을 더해 카르툼으로 변경이 되었고, 우린 새벽 1시에 카르툼에 도착했다. 우린, 카르툼에서 그 시간에 숙소를 찾아야 하는 첫 난관에 부딪혔다. 그 시간에 내린 승객들은 단 10명도 안 되서 뿔뿔히 목적지를 향해 흩어졌고, 이방인이었던 알리와 나만 남았다.

왼쪽부터 이집션 나세르,터키쉬 알리,코리안 나,수다니즈 마이클과 제이.
▲ 수단에서 만나 다국적 친구들 왼쪽부터 이집션 나세르,터키쉬 알리,코리안 나,수다니즈 마이클과 제이.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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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지? 일단 숙소를 구해야 할 텐데…" 알리가 말했다.
"히치 하자! " 나는 조금 도발적인 방법을 제안했다.
"이 시간에 히치를 하자고? "
"괜찮을 거야. 내가 물어볼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로에 선 나는(사실 특별한 제스처를 취하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살짝 난처한 표정만을 짓고 있었을 뿐이다) 차 한 대와 마주하고 운전석의 사람과 얘기하고 있었다.

"아가씨 어디 가요?"
"음… 사실 카르툼에 지금 막 도착했는데요, 숙소를 찾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어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물 인심 좋은 나라. 곳곳에 이런 물동이를 놓아두었다.
목마른 자는 물 한잔 들이키고 가도록 배려한 인심.
▲ 물 인심 물 인심 좋은 나라. 곳곳에 이런 물동이를 놓아두었다. 목마른 자는 물 한잔 들이키고 가도록 배려한 인심.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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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알리와 나는 차 안에 타고 있었고, 그 사람은 자기가 관광청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외국인들을 도와주거나 하는 것은 본인의 전문이며 언제든 도움을 청하라며 전화번호를 챙겨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늦은 밤이었고 우린 둘이었지만 그래도 경계는 풀 수 없었다. 성격상 난 내가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도 나의 신중함이 들어가야 하는데, 계속 알리가 자꾸 유창하지 않은 아라빅으로 그사람과 대화를 하니, 점점 어찌되어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 있었다.

벌써 서너 군데의 숙소를 데려다 주고 있었다. 우린 소위, 우리가 말하는 '호텔'에 묵을 형편이 아니라고 전달을 했는데도, 처음부터 자꾸 그런 쪽만 데려가고 있었다. 더구나 그 사람은 알리가 자꾸 뒷자석을 확인하며 날 신경쓰는 것을 보자, 알리의 마음을 다 알아챘다는 듯이 실실 웃으며 우릴 보기를 '교복입고 데이트 하다 부모님께 들킨 십대' 취급을 하고 있었다.

"하하… 알리. 너, 지금 사랑에 빠진 것 같은데, 뒤 좀 그만 봐. 눈 돌아가겠어~."

거리에서 시원하게 이발을~.
▲ 거리의 이발사 거리에서 시원하게 이발을~.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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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 우린 열 군데가 넘는 숙소를 돌아다녔다. 서너 군데가 지났을 땐, 그 새벽에 그런 수고를 하는 그 사람에게 너무 미안했고, 다섯 군데를 지났을 땐 알리가 도대체 저 사람과 무슨 얘기를 하는지 그 상황이 답답해서 참을 수가 없이 화가 났다. 결국 한 아홉 번째 장소에 갔을까. 그 사람이 잠깐 내렸을 때 알리에게 급한 내 성격을 드러내고 말았다.

"알리, 도대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우리가 지금 이 새벽에 이 호텔투어를 왜 해야하는 건데? 그리고 너 왜 자꾸 아라빅으로 얘기하는 거야. 저 사람, 영어할 줄 알잖아."

빵과 밥과 고기로 이루어진 서민음식으로, 손을 이용하여 먹는것이 현지방식.
▲ 팟따 빵과 밥과 고기로 이루어진 서민음식으로, 손을 이용하여 먹는것이 현지방식.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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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몇 군데를 돌아다니다 우린 결국 유스호스텔에서 정착을 했고 그 사람은 내일 보자며 돌아갔다. 그 이후, 우리가 숙소를 옮기고 난 이후에도 그는 매일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외국인에게 느끼는 호기심과 우릴 데리고 다니며 팁이라도 챙기려는 마음이 반반이었 던 듯하다.

물론, 카르툼을 떠나기 전에 마주쳤을 땐, '그 밤에 태워줘서 고마웠다'며 큰 금액은 아니지만 받아달라고 손에 돈을 쥐어주었지만 그 밤엔 너무 피곤하고 화가 나서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어느 장소든,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겠지만, 수단은 그 무엇보다 사람(Sudanese)이 기억에 남는 나라이다. 떠나올 때, 새벽 차를 타야해서 5시에 숙소에서 나오느라 인사를 못하고 온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메로위호텔 사장님. 인자한 할아버지 같았던 그 분은, 여러가지로 편하지 않았던 수단에서 많은 도움을 준 분이다.

베지라위아 지역에 위치한 수단 피라미드.
▲ 수단 피라미드 베지라위아 지역에 위치한 수단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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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피라미드를 보려고 베지라위아라는 곳으로 혼자 가보고자, 버스정류장을 찾아 길을 물으러 리셉션으로 갔을 때였다. 정류장 위치를 알려주다 안 되겠는지 당신 차에 타라고 하신다.

"아니요, 괜찮아요!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하는 것을 굳이 타라신다. 결국 그날, 함께 정류장에 가서 교통편을 알아봤지만 그날 출발하기엔 무리였다. 나의 그 날 일정이 어그러진 것이 못내 맘에 걸리셨는지 그 분은 나와 숙소에 있던 알리까지 태우고 카르툼 시내구경을 시켜주셨다. 결국엔 생각도 못한 편리함을 누렸다.

피라미드로 유명한 이집트엔 약 90여개가 넘는 피라미드가 발견되었지만, 수단에는 대략 천 여개의 크고 작은 피라미드가 존재한다. 위용면에서 이집트 피라미드를 따라가진 못하나 수단의 피라미드를 보면 그들의 피라미드는 그들의 생활속에 꽤 깊숙이 침투해있음을 알 수 있다. 도처에 작은 피라미드가 널려있으며 그래서 그런지 문화재를 보존하는 면에서 본다면 상당히 방치된 것이 아쉬운 마음을 갖게 한다.

마이클 덕분에 현지의 여러 모습을 알 수 있었다.
▲ 수단에서 만난 친구 마이클 덕분에 현지의 여러 모습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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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하면, Sudanese!(수다니즈: 수단 사람이라는 뜻)라는 그 생각에 큰 영향을 차지한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어두운 한밤에 웃지 않고 있는 이 친구를 본다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할 '마이클'이라는 친구이다. 의미인 즉슨, 그만큼 까맣다는 뜻이다. 정말 너무나도 다양한 피부색깔이 존재해서 제일 놀랐던 나라인데, 어쩌면 피부색깔로 그 사람을 정의해버린다면 친해지기 어려웠을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이클은 인간이 가진 매력 중 가장 괜찮은, 유머러스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마이클은 아스완에서 만났던 일본인 여행객 K를 카르툼 어느 한 거리에서 내가 발견하고, 우리가 소리 지르고 있을 때 그 옆에 있었다. 마이클은 여유를 갖고 삶을 즐기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특별한 사람이었다.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곳. 라마단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곳을 경험할 수 있었다.
▲ 까페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곳. 라마단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곳을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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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음 만난 그 다음 날, 나는 수단에서의 최고의 날을 보냈다. 특별히 무엇을 했다, 어디를 갔다라고 할 건 없지만 신실한 무슬림 영향력의 카르툼에서 라마단인 그때에, 한 낮에 밥을 먹고 차도 마셨다. 그 의미는 나에게 꽤 컸다. 내 삶에서의 여행도 일탈인데 그 안의 로컬 사람들 속의 삶에서도 일탈을 했던 것이다.

이집션인 나세르, 터키쉬인 알리, 그리고 코리안 나, 재패니즈 K, 그리고 수다니즈 마이클 등 우린 함께 다니며 로컬 사람들의 일상을 즐겼다. 크리스찬인 마이클을 따라다니며 라마단이지만, 무슬림이 아닌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한낮에 느긋하게 티 타임을 갖기도 했고, 함께 손으로 한 그릇에 있는 밥을 먹기도 했다. 이집트에서 이미 라마단 문화에 취해있던 터라, 한 낮의 그 일탈이 나에겐 너무나도 특이한 경험이었다.

"마이클, 저 사람은 모자를 쓴 거 보니 무슬림인 것 같은데 여기 오면 안 되는 것 아냐?"
"하하, 사라~ 어디든 예외는 존재하는 거야."

삶에 여유있는 태도를 가진 마이클 덕분에 갖게 된 귀한 경험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지금도 난, 많은 사람들이 흡사 중세시대에 종교박해를 피해 지하장소에서 예배를 보듯, 그렇게 조용조용히 모여 티타임을 즐겼던 한낮의 Hibiscus 차 맛을 잊지 못한다.

라마단에, 낮에 맛봐서 더욱 특별했던 차.
▲ hibiscus tea. 라마단에, 낮에 맛봐서 더욱 특별했던 차.
ⓒ 박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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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이 여행기는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 영문의 경우, 발음하는 대로 표기했습니다.



태그:#아프리카, #아프리카 종단 , #배낭 여행,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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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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