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동부지법은 재산 문제로 갈등을 겪던 남편을 정신병원에 감금한 피고인 2명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고 6월 5일 밝혔다.
▲ 서울동부지방법원 서울동부지법은 재산 문제로 갈등을 겪던 남편을 정신병원에 감금한 피고인 2명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고 6월 5일 밝혔다.
ⓒ 이은희

관련사진보기


가족갈등 해결을 위해 정신병원을 또 다시 감금장소로 악용한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4단독(장찬 판사)은 재산 문제로 갈등을 겪던 남편을 정신병원에 감금한 혐의(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공동감금)로 피고인 윤아무개씨와 아들 정아무개씨에 대해 각각 징역 8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씩을 선고했다고 5일 밝혔다. 

이혼을 결심한 윤씨는 남편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미리 정신병원을 찾아 강제입원 절차를 문의한 뒤 아들을 설득하여 동의서를 작성케 했다. 응급환자이송단에 전화를 걸어 "남편이 술을 마시고 폭력도 행사한다"며 정신병원 강제 입원요청을 하여 손쉽게 입원시킬 수 있었다.

병원에 감금된 피해자 정아무개씨는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는 경우가 어디 있냐"며 강력히 항의했지만 퇴원할 수는 없었다. 결국 자해를 해 외과병원으로 옮겨진 피해자 정씨가 이 사실을 동생과 딸에게 알려 입원된 지 13일 만에 풀려날 수 있었다. 

멀쩡한 피해자 정씨가 가족에 의해 정신병원에 감금될 수 있었던 것은 정신보건법 제24조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의 허술한 법조항 때문이다. 현 정신보건법 24조는 '정신의료기관등의 장은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가 있고 정신과 전문의가 입원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 한하여 당해 정신질환자를 입원 등을 시킬 수 있으며, 입원 등을 할 때 당해 보호의무자로부터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입원 등의 동의서 및 보호의무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고인 윤씨가 아들을 설득, 동의서를 작성케 했던 것도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서가 있어야 입원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족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신병원을 범죄 장소로 악용하려는 사람이 뜻을 같이 할 가족 1명만 설득하면 이번 사건과 같이 정신병원 강제 입원이 가능하다. 2008년 3월 21일 정신보건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제24조의 경우 보호의무자 1인에서 2인의 동의로 바뀌었지만 개정 당시부터 개정된 법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인권단체의 지적이 있어왔다. 또 허술한 법조항이 치료 외 목적의 정신병원 감금범죄를 가능케 한다고 주장해 왔다.

정신보건법 제24조 개정을 둘러 싼 각계 관련단체들의 상반된 입장과 동향

지난 4월 6일 임동규 국회의원은 '정신질환자가 제24조에 따른 보호의무자 또는 제25조에 따른 시장·군수·구청장에 의하여 입원하는 경우 해당 정신의료기관등의 장은 환자 본인으로부터 입원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제25조의 2(보호의무자 등에 의한 입원의 동의 등)를 신설하는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정신질환자가 보호의무자에 의해 입원되는 경우 자신의 의사를 반영할 수 없고, 치료목적보다는 부양의무자가 부양책임을 회피하거나 가족갈등 해결 수단으로 악용돼 정신질환자의 인권침해가 상당하여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하여 정신의료기관등의 장이 환자 본인의 입원 동의를 받지 못하거나 동의를 받을 수 없는 경우에는 기초정신보건심의위원회에 통보해 입원이 적합한지 여부에 대한 심사를 받도록 하겠다는 것.

그러나 정신보건시설단체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한 인터넷 언론을 통해 대한정신병원협의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한국정신요양협회,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가 불만을 드러냈다. 환자 본인의 입원 동의를 받게 하는 것은 제23조(자의입원)와 다르지 않으며, 심사를 맡길 기초정신보건심의위원회도 상시기구가 아니고 또 환자의 병식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정신과 전문의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6월 초 정신보건법 ‘전면개정법률안’을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했다.
▲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는 6월 초 정신보건법 ‘전면개정법률안’을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했다.
ⓒ 이은희

관련사진보기


보건복지부도 6월 초 정신보건법 '전면개정법률안'을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했다. '기능저하 정신질환자' 개념을 도입해 정신질환자의 면허·자격취득을 통한 재활 및 사회복귀 기회를 확대하고, 입원 등을 할 때 정신질환자와 보호의무자에게 정신보건법에 의한 권리를 알릴 것과 정신보건시설 내에 서류를 비치할 것, 알코올 중독자에 대한 상담·재활 서비스 강화를 위한 알코올상담센터 설치 등의 내용을 개정법률 안에 담았다. 그러나 제24조는 현재의 법률안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관계자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필요악이다. 병식이 없는 환자들이 병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를 위해 24조는 필요하다"며 "법이 악용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관련 이해 당사자(대한정신병원협의회, 대한정신보건가족협회 등)와의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기초정신보건심의위원회 등 적법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바람직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시범적으로는 운영해 봐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에 동의하고 앞으로는 그렇게 가야 할 것이라고 보지만 당장에는 어렵다고 본다. 관련 단체를 설득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개정안을 반대하는 정신보건시설단체들의 주장에 대해 윤상원 비서관(임동규 의원)은 "기초정신보건심의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해 적법한 절차를 밟게 해서 강제입원의 불합리함을 없애야 한다"며 "없는 위원회를 새롭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단지 현존하는 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면 된다. 또 개정안에 기초정신보건심의위원회가 심의할 사항을 추가해서 넣었기 때문에 운영하면서 상설화문제나 비용 등 제기되는 사항은 수정, 보완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정신병원피해자인권찾기모임(이하 정피모) 정백향 대표는 "우리나라가 해외보다 비자의 입원율이 높은 것은 법과 정책의 미비로 굳이 정신보건시설에 격리되지 않아도 될 만한 정도의 환자들까지 마구잡이로 강제 입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정신보건 관련단체들을 설득하고 합의해 정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보건복지부가 개혁의 의지가 없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전 국민의 정신건강증진을 위해 보다 낳은 정신보건환경과 정책을 마련하는 것보다 더 큰 대의는 없다. 단체 간 힘겨루기에 밀리지 말고 정부가 적극 나서서 정책변화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며 "보건복지부는 국제적 기준에 걸 맞는 정책과 소신 있는 장·단기 계획을 세우고 힘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 24조를 폐지하고 입·퇴원을 심사할 기관을 운영해 국제적으로 부끄러운 한국의 정신보건 실태를 조속히 개선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의 정신보건법 제24조의 문제와 대안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지난 해 11월에 발행한 '정신장애인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보고서'(이하 국가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1991년 UN이 채택한 '정신장애인 보호와 정신보건의료 향상을 위한 원칙'(Principles for the Protection of Persons with Mental Illness and the Improvement of Mental Health Care, 이하 'MI 원칙')이 발표된 이후, 격리와 시설보호 위주의 정신보건 정책에서 탈피하여 이용자와 가족중심의 치료, 예방과 재활, 회복과 사회복귀 중심의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정신보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자국의 '정신보건법'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개선했다.

서방 선진국의 경우 정신질환자의 가족이라 할지라도 보호의무자의 동의만으로 즉시 입원시킬 수는 없도록 법과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다.

미국 뉴욕 주의 경우 가족 및 동거인 등이 정신질환자의 입원치료를 신청하면 사법부가 입원 심사 등 기타 조치 등을 명령, 결정하고 있다. 의사는 비자의 입원을 뒷받침할 의료적 진단의 근거를 진술해야 하며, 법원은 입원신청서를 받은 날로부터 3일 이내에 심사를 한다. 일리노이 주, 아이오와 주도 법원의 심사를 거쳐 입원치료를 명령하고 있다. 이미 1960년대 지역사회정신보건법을 제정해 정신질환자의 탈원화 정책을 펼친 결과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정신병원의 병상수가 50~70% 감소되는 성과도 이뤄냈다.

영국의 경우 비자의 입원의 종류를 '평가를 위한 입원, 치료를 위한 입원, 긴급입원'으로 나눠 정신건강심판위원회가 입원을 결정한다. 가족 및 친척이 '평가를 위한 입원'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병원에 속한 의사 2명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입원 기간은 28일로 연장될 수 없으며, 담당의사가 퇴원을 막기 위해서는 정신보건심판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해야 한다. 정신건강심판위원회는 독립적인 사법기관으로서 법률전문가와 의료전문가, 일반 시민위원으로 구성해 타의로 입원한 환자를 심사하는데 심사의 전 과정 동안 환자가 참석한다.

한국의 현행 정신보건법 24조는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가 있고 정신과 전문의가 입원 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정신질환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입원시킬 수 있다. 진단기준도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지침이 없어 사실상 정신과 전문의의 재량에 입원결정이 고스란히 맡겨져 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보호자 및 정신과 전문의의 입원결정이 타당한지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검증단계가 없다. 수월한 입원절차로 인해 한국은 해외에 비해 비자의 입원율이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3~30%에 지나지 않는 해외에 비해 한국의 비자의 입원율은 90%를 넘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출처 : ‘정신장애인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보고서’ 3~30%에 지나지 않는 해외에 비해 한국의 비자의 입원율은 90%를 넘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국가인권위원회

관련사진보기


비자의 입원에 해당하는 법령은 제24조(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25조(시장·군수·구청장에 의한 입원), 26조(응급입원)가 있다. 그 중 24조에 의한 입원율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국가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현재 정신보건시설에 입원한 총 환자 수는 6만8110명이며, 그 중 '자의입원' 환자는 9387명으로 13.8%에 불과하다. 반면 '비자의 입원' 환자는 5만8723명으로 86.2%에 이르고 있는데, 그 가운데 정신보건법 제24조로 입원되는 환자는 5만425명으로 무려 74%에 이른다. 인권위는 정신질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부정하거나 판단에 장애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다른 선진국가의 3~30%에 비하여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인권위는 국가보고서를 통해 인신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므로 자신의 의사에 반한 입원은 법에 의하여 엄격한 요건과 적법절차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법원에 의해 입원 및 입소의 적부가 결정될 수 있는 심사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장기적 목표를 갖고, 우선 단기적으로 정신보건심판위원회를 강화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정피모도 비자의 입원에 대해서 사법권이 입·퇴원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호자 1인에서 2인의 동의로 바꾸는 개정을 하였지만 24조 개정이 애초 유명무실했다는 지적이다. 개정을 하기 이전부터 멀쩡한 사람들이 재산, 가정폭력, 불륜, 이혼, 종교, 학업, 성격 등 가족갈등에 따른 강제입원을 당하는 경우 거의 대부분 2인 이상의 가족들이 동조해왔다는 것. 따라서 현재의 법으로는 계속 같은 범죄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임동규 국회의원도 심사기관(기초정신보건심의위원회)을 두고 입원 절차를 투명화 한다는 점은 앞선 인권위 및 인권단체와 같은 기조를 보이고 있다. 김우남 국회의원도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한 사람의 결정만으로 정신질환자의 인신을 구속하여 강제입원을 결정하는 것은 신중치 못하다는 판단아래 입원진단 시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에 속한 2인 이상의 정신과전문의의 진단을 받도록 하겠다'는 제24조 일부개정법률안을 2009년 12월 8일 대표 발의한 상태다.

UN이 채택한 'MI 원칙'에는 "정신보건시설 내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경우, 비자발적인 입원을 피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원칙 15 - 입원원칙)"고 되어있다. 한국의 정신보건법 제2조(기본이념) ⑤항에도 "입원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에 대하여는 항상 자발적 입원이 권장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제적 기준 및 정신보건법의 기본이념에 크게 못 미치는 한국의 강제입원 문제와 인권상황은 인권위나 인권단체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사회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지나치게 높은 제24조(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에 의한 입원율을 낮추고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정신병원 감금범죄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강제입원에 대한 심사절차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신보건시설단체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 UN의 'MI 원칙'에 입각해 한국의 강제입원 및 격리치료 중심의 정신보건정책을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정신보건 서비스로 전환하기위해 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태그:#정신보건법, #정신병원, #국가인권위원회, #국가보고서, #정피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수 년 사이 인권이 후퇴하는 사회현실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한국의 인권발전이 멈추지 않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