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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운길산을 찾았다. 전철 중앙선 운길산역에서 내려 산으로 향하는 길가의 논엔 요즘 모내기를 마친 작은 벼가 자라는 모습이 싱그러웠다. 진중리 마을을 지나자 곧 산길이다, 우선 수종사 쪽으로 오르기로 했다.

 

수종사로 오르는 길은 제법 넓은 도로여서 햇살이 너무 따가웠다. 골짜기를 내려다 보니 등산객들이 골짜기 길로 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들도 다른 등산객들처럼 골짜기를 따라 오르기로 했다. 그런데 한참을 올라가노라니 길은 왼편 능선으로 이어진다.

 

"아니, 겨우 600미터급 산이 왜 이리 높아진 거야?"

 

일행이 투덜거린다. 햇볕은 따갑고 기온이 높아 땀에 젖은 채 힘든 산행을 하노라니 산이 더없이 높아진 느낌이다. 능선을 따라 몇 번인가 쉬어가며 정상에 오르니 전망이 시원하게 툭 트인다. 정상에는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능선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수종사는 어느새 오른편 저 아래에 있었다. 길이 어긋나 지나쳐 오른 것이다.

 

정상에서는 멀리 북한강 건너 용문산이며 팔당 댐 건너 검단산, 그 앞의 예봉산과 멀리 도봉산 북한산이 아스라하다. 산 아래 북쪽 골짜기를 타고 구불구불 흐르는 길이 작은 개울물처럼 새하얗게 보이는 것도 아름답다.

 

정상 부근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새재고개 쪽으로 향했다. 급경사를 내려오면 오르락내리락 능선길이다. 그런데 능선 길에 이르자 길가 이곳저곳에 파헤친 지 오래지 않아 보이는 구덩이들이 보인다.

 

"이게 웬 구덩이들이지? 또 방공호를 파는 건가?"

"아닌 것 같은데. 방공호로는 너무 작고 낮아. 나무를 파낸 건가?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일행들은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작은 봉우리를 두 개쯤 넘었을 때였다.

 

"쿵! 쿵! 파팍~~파팍~!"

 

근처에서 땅을 파헤치는 소리가 들린다. 살펴보니 길가 숲속이었다. 그런데 땅을 파고 있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군인들이었다. 무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땅을 파느라 윗옷을 벗었지만 군인들이 분명했다.

 

"수고가 많네요, 그런데 지금 왜 땅을 파헤치는 겁니까? 혹시 방공호 만드는 거요?"

 

궁금증을 참지 못한 일행이 군인들에게 묻는다.

 

"아니요? 6·25전쟁 때 희생당한 우리 국군 전사자 유해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아하! 그랬었구나. 능선을 타고 걸으면서 수없이 많은 구덩이들을 바라보며 품었던 궁금증이 일시에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유해 발굴 작업을 하는 군인들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수십 명의 군인들이 두세 명씩 한 조를 이루어 능선 길 좌우 곳곳에서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혹시 유해를 몇 구나 발견하셨나요?"

"네, 그럼요. 발견했습니다."

 

능선 길을 걷다가 파놓은 구덩이 옆에 앉아 쉬고 있는 군인들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묻자 몇 구라고 구체적인 숫자는 말하지 않고 그냥 발견했다고만 말한다. 하긴 일반 사병이 구체적으로 몇 구나 발견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 구덩이들 저렇게 방치하면 여름철 폭우나 집중호우 때 산사태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괜찮을까?"

 

능선 길을 걸으며 일행은 은근히 올 여름이 걱정 되는 눈치다. 유해 발굴 작업은 좋지만 파헤쳐 놓은 구덩이는 잘 메워 놓아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이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군인들이 유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는 지역을 지난 후에도 구덩이의 흔적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대부분 낙엽 같은 것으로 대충 덮어 놓은 구덩이들이 수없이 많았다.

 

근대 우리 민족사의 가장 비극적인 동족상잔의 전쟁이었던 6·25가 일어난 지 60주년이 되는 6월, 남양주시 운길산 능선 길에서는 그 비극의 주인공들이었던 희생자들, 유해도 수습하지 못하고 60여 년 동안 버려져 있던 국군 희생자들을 찾기 위한 유해 발굴 작업이 후배 군인들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새재고개에서 적갑산, 철문봉, 예봉산으로 이어지는 왼편 길로 오르지 않고 도곡리 쪽으로 내려가는 오른편 길을 택했다. 햇볕은 여전히 쨍쨍했다. 더위에 지쳐 당도한 도곡리와 어룡리 마을에도 모내기 끝난 논들과 감자밭, 마늘밭이 6월의 태양 아래 곡식과 채소를 키우고 있었다.


태그:#운길산, #유해발굴, #6,25, #이승철,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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