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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의 황대권씨 옥중수기
▲ 야생초 편지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의 황대권씨 옥중수기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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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안에서 발견하는 생명에 대한 경외"

내친김이다. 지난 번 신영복 선생의 이야기에 이어 한국 사회에서 독재에 저항하다 어김없이 교도소를 들락날락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본다. 책장을 살펴보니 적어도 그런 교도소 출신들의 책이 십여 권은 되는 것 같아 할 얘기는 적지 않음이 다행 중 불행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정치적 투쟁 속에서 느낀 고뇌와 방황, 감옥 안에서 한 사색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고 그것은 그것대로의 소중함이 있기 때문에 몇 차례에 걸쳐 더 소개 되겠지만 지금은 조금 특별한 사람에 대해 소개해보고 싶다.

한 남자가 있었다. 1980년대에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랬듯 한국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건강한 의식이 있었다. 지금은 철지난 듯한 논쟁이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NL-PD 논쟁, 깃발-반 깃발, 무림-학림 등의 운동이론은 그 시대에는 매우 진중하게 이뤄졌으며 그 안에는 순수한 열정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모든 종류의 운동이론이 신군부 세력에겐 위협이 되었음은 당연하다. 이 때문에 그 시대에 일어났던, 정부가 발표한 모든 조직사건에 대해 우선 의심을 해본다. 그 시대 속에 있었던 한 남자는 제3세계의 정치이론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1985년 정부는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사회를 공포 분위기로 몰고, 모든 반독재운동을 차단하기 위해 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간첩' 아닌가. 대부분의 간첩은 '간첩'도 모르게 숱한 고문과 위증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임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그렇게 간첩이 된 남자 황대권씨는 1998년까지 13년 2개월 동안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다. 간첩죄는 전두환 신군부가 물러난 1987년 이후에도 힘을 발휘했다.

저항하고 또 저항했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인간으로서 나약해지지 않기 위해 벌인 저항은 난동이 되었고, 온몸의 자유를 박탈당한 징벌방 생활은 그를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다. 바우(Bau)라는 이름으로 종교 활동을 시작한 그는 교도소 안에서 '생명의 가치'에 주목하게 된다.

이름 없이 콘크리트 사이에서 피어나는 잡초를 보며 생에 대한 경외를 느끼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한 마리의 벌레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존재가 아니었으며 한 포기, 한 포기의 풀이 제각각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생명이자 옥중 동지였다.

저자가 직접그린 야생초의 모습
▲ 야생초 편지 저자가 직접그린 야생초의 모습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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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교도소에서 쓴 이 책 <야생초 편지>, 참으로 재밌다. 저자는 직접 그림을 그려 일반인에게는 의미 없어 보이는 풀들을 설명하고 그것을 키울 때의 감동과 꽃이 필 때의 환희를 전달한다. 그리고 생명체들이 인간사에 내보내는 메시지들을 전달하고자 한다. 안동교도소에서 대구교도소로, 다시 대전교도소로 이감되는 과정 속에서 돌담 밑의 생명, 운동장의 생명들은 그에게 끊임없는 교감을 원했다. 달개비, 제비꽃, 스타펠리아, 딱지꽃모기, 청개구리 등으로 인해 그는 마냥 외롭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1998년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이 신군부에서 조작된 것이라는 결론으로 다시 세상과 교감하게 된 그는 국제엠네스티의 초청으로 2년간 유럽의 대안공동체, 생태운동을 공부하고 돌아와 현재는 물질만능주의를 탈피한 생태평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다수의 교도소 출신들이 세상에 나와 새로운 실험을 하는 것을 보면 역시 교도소는 또 다른 학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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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오따스』(황대권, 말, 2005)
저자가 주목하는 대안공동체의 룰 모델이다.


야생초 편지 - 출간10주년 개정판

황대권 글.그림, 도솔(2012)


태그:#황대권, #야생초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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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생기면 항상 펜을 잡는 자유기고가. 시민단체 흥사단에서 이사로 활동했으며, 최근까지 국회 정무위원장 비서관으로 일했습니다. '근거있는' 소통의 공간을 열기 위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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