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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한 선배가 갑자기 점심 식사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벌써 연락이 끊긴 지 1년이 넘은 터라 내심 반가워 다음날로 약속을 잡고 강남으로 갔다. 선배와 간단히 패스트푸드를 먹고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다며 나를 어느 건물 2층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의자가 세 개씩 딸린 수십 개의 테이블과 사람들로 붐볐다. 대부분이 20대인 것 같았다.

 

이윽고 한사람이 선배와 함께 나타났다. 자신의 소개와 동시에 나를 만나러 온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렇다. 그것은 속칭 피라미드 회사였다. 전문적 언어로 네트워크 마케팅이라고도 설명하는 20대 후반의 이는 그러나 피라미드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 열심히 일을 하면 자신처럼 20대 후반의 나이에 고급 승용차를 몰 수 있다는 귀띔을 해주었다.

 

옆에 있는 선배는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고객을 끄덕거렸다. 선배의 성화에 못 이겨 두어 번 그곳에 더 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전부 살가웠으며 나를 가족처럼 대해주었지만 그런 분위기가 부담스러웠다. 2중의 감정이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두 번을 나가는 동안 절대 하지 말고 선배를 데려와야겠다는 마음 뒤에는 '그래도..'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결국 혼자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2007년의 키워드 '88만 세대'는 우울한 20대의 사회경제적 여건에 대해 분석했다. 그중 20대가 가장 '막장'에 다다르는 공간이 바로 이 피라미드 회사라고 했다. 도무지 잘 찾아볼 수 없는 돌파구 속을 헤매는 20대에게 던지는 치명적 유혹에 우리는 절망하고 있다. 잔인한 이 사회에 대한 분노는 쌓여가지만 "잘 되는 놈은 다 잘된다"는 평범한 진리 앞에 확인하는 자화상은 초라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비정규직 직장을 잡아 한 달 평균 88만원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20대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아주 간결하다.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라는 것이다. 물론 비유적 표현이지만 저자 우석훈 교수가 던지는 이 메시지는 우리의 문제가 20대가 사회를 향한 '조직적인 저항'을 해야 풀어낼 수 있는 성질임을 말하고 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손석춘 원장도 진단한다. 사회적 일자리 확충은 정부정책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결코 시장만이 만능의 열쇠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공은 문제 해결의 당사자인 20대에 넘어왔다. 이러한 진단이 옳다면 20대가 취해야 할 행동은 20대들의 권리와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흩어져 있는 개인, 개인은 사막의 모래알과도 같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다보니 자의반 타의반 '스펙'의 올가미 속에 자신을 노출시킬 수밖에 없다. 나 역시도 20대가 가장 불행해 보이는 부분 중 하나가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해줄 강력한 조직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력한 조직을 구축하는 것이 20대의 사회적인 영향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것이 빨리 오면 올수록 88만원 세대는 일찍 끝날 것이다.

 

문득 연락이 안 되는 선배가 그리워진다.


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박권일 지음, 레디앙(2007)


태그:#88만원 세대, #우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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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생기면 항상 펜을 잡는 자유기고가. 시민단체 흥사단에서 이사로 활동했으며, 최근까지 국회 정무위원장 비서관으로 일했습니다. '근거있는' 소통의 공간을 열기 위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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