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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카탈로니아 지방이 시작되는 지점에서는 첩첩이 겹쳐진 바위산들을 만날 수 있다. 산들은 마치 자신의 구역을 철통같이 지키는 신들을 연상시킬 정도로 웅장하며 모양들도 가지각색이다.

 

울데몰린스(Ulldemolins) 지역의 에르미타 산 바르토메우 데 프라구에라우(sant bartomeu de fraguerau)를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들은 둥실둥실 살이 찌고 실낱같이 가는 눈을 한 중국인 신들, 또 어떤 것들은 작은 수염과 두꺼운 터번을 머리 위에 얹은 아라비아 마술사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했다.

 

그 속으로 들어서지 않고 거리와 험난함을 가늠할 수 없다

 

"저 산속 어딘가에 에르미타가 숨어 있어. 정보 상으로는 30분 정도의 산책 후 도달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

 

세바스티안이 대형 삼발이와 핀홀 카메라, 그리고 물통을 챙기며 말했다. 오후 3시가 넘은 시각, 가장 이상적인 빛을 만나려면 오후 4시까지는 그곳에 도달해야 한다. 하늘은 곧 비가 쏟아질 듯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바위산 밑은 키 작은 나무들에 의해 가려져 있었다.

 

그 속으로 들어서지 않고서 거리와 험난함을 가늠할 수는 없었다. 입구는 향기로운 로즈메리와 타임 나무가 가득한 오솔길로 시작되고 있었다.

 

 

저 산골짜기의 어딘가를 향해 우리는 첫발을 내디뎠다. 길은 계속해서 많은 갈래의 다른 길들을 우리 앞에 턱턱 내려놓았다. 겨우내 폭설로 쓰러진 나무들과 바위 더미가 좁은 길들을 더욱 조여왔다. 나무들로 덮여 있던 평화로워 보이던 오솔길들, 막상 그 안에는 수많은 가시나무 가지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거리감이란 늘 사물과 현상, 느낌을 달리 보이게 만든다.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불과 10분 전만 해도 몰랐으니 말이다.

 

멀리서 바라보는 세상은 평화롭고 고요하다. 그러나 그 안에서 삶을 지탱해야 하는 작은 생명체가 되는 순간, 나와 세상과의 거리감이 좁아지는 순간, 그리고 나와 사람들과의 거리감이 좁아지는 그 순간, 모든 것에 연결 고리를 가지고 매 순간에 참여하는 순간, 삶은 만만치 않은 존재로 다가서는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던 둥글둥글한 바위산들의 모습을 그늘에서 더욱 가까이 올려다 보자니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가 나를 끊임없이 주시하는 것 같아 섬뜩했다.

 

한 시간가량 험한 산속 오솔길을 걸었을까? 아직도 에르미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세바스티안은 우리가 걸어온 길이 올바른 길이었는지를 찬찬히 따져보기 시작했다. 하늘에 떠 있는 해의 위치와 바위 산의 모습을 계산하며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이 만약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면 오늘 하루 에르미타의 촬영은 물거품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리고 날이 새기 전에 서둘러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했던 이들의 에르미타

 

 

팔과 다리, 가시나무에 긁힌 자리가 가려워 오기 시작했다. 좁은 바위틈과 개울 다리를 넘고 또 다시 험한 오솔길의 쓰러진 나무 사이를 넘자 작은 이정표가 하나 나왔다.

 

깊고 깊은 산 속,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해가며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했던 사람들, 그들은 세상을 어떤 거리감으로 바라보았을까? 함께 삶을 영위했을 이웃과 가족들은 또 어떤 거리감을 서로 유지했을 것인가?

 

바위 더미를 넘고 길이 아닌 길을 지나 사이프러스 나무와 올리브나무를 헤치자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에르미타 산 바르토메우 데 프라구에라우(sant bartomeu de fraguerau)의 모습이 드러났다.

 

웅장한 바위 신들로 둘러싸인 작고 소박한 기와지붕 에르미타. 세바스티안은 우선 위도와 경도를 수첩에 기록하고 에르미타의 번호를 매겼다. 이후 카메라를 설치하고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나는 가시덤불에 싸여있는 사진사 세바스티안과 에르미타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10세기 이상의 시간이라는 거리감을 두고 있는 저들, 그 감정의 거리감엔 어느 정도의 공간이 자리하고 있을 것인가?

 

문득 거리감의 조율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어쩌면 삶을 지탱하는 줄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바이올린 줄처럼 말이다. 너무 느슨해서도, 또 너무 조여서도 알맞은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처럼 모든 것엔 알맞음의 조율이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 위에서 우리는 매 순간 균형을 유지하며 고개를 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모든 것과의 거리감,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거리감. 그것을 이해할 때 어쩌면 삶에 대해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지은경 기자는 지난 2000~2005년 프랑스 파리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최근 경상남도 외도 전시 기획을 마치고 유럽을 여행 중입니다. 현재 스페인에 머물고 있으며, 미술, 건축, 여행 등 유럽 문화와 관련된 기사를 쓸 계획입니다. 

사진작가 세바스티안 슈티제가 핀홀 카메라로 찍은 에르미타(ermita) 등 다양한 사진을 만나보시려면 세바스티안의 홈페이지(www.sebastianschutyser.com)를 찾아와 보시기 바랍니다.


태그:#에르미타, #에르미타 익스프레스, #산 바르토메우 데 프라구에라우, #스페인, #세바스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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