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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수 아닌 밀수(?)였던 '보따리장사'

인천 산곡동에서 수입용품점을 운영하는 심경섭(69)씨는 스물일곱이 되던 1968년 보따리장사로 시작해 가게를 일궜다. 부평미군기지에서 나왔던 초콜릿과 껌은 이제 추억으로 남았지만, 그는 여전히 그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이 있어 오늘도 가게 문을 연다.

결혼을 했지만, 남편 월급이 1만 2000원 할 때라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서 심씨도 일을 해야 했다. 그가 택했던 일이 바로 미군기지에서 나온 물건을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내다 파는 미국산 상품 도매상이었다.

산곡동에서 수입용품점 ‘대지종합상품’을 운영하고 있는 심경섭씨. 40년이 넘은 그의 가게는 이제 추억을 흥정하는 사랑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도 머지 않아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사라지게 된다.
▲ 30년 부평지킴이 산곡동에서 수입용품점 ‘대지종합상품’을 운영하고 있는 심경섭씨. 40년이 넘은 그의 가게는 이제 추억을 흥정하는 사랑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도 머지 않아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사라지게 된다.
ⓒ 김갑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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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규모가 크진 않지만 지금도 미국산을 비롯한 수입 비스킷과 초콜릿, 사탕, 화장품, 커피 등이 가게를 채우고 있다. 현재 심씨는 수입물건을 남대문시장이나 동대문시장에서 떼오지만 15년 전만 해도 미군기지에서 물건을 가져와 팔았다.

심씨는 "70년대에 들어서도 먹고 살 만한 게 별로 없었다. 공장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됐다. 그중에서도 형편이 나은 사람들은 미국산을 꽤 좋아했다. 미군기지에서 나오는 과자, 음료수, 그릇 등 각종 생활용품을 사다가 시장 상인들에게 팔았다"고 당시를 전했다.

미군기지에서 나오는 물건은 사실상 면세에 해당했기 때문에 단속을 피해야 했다. 국내에서 면세거래를 했기 때문에 사실상 밀수 아닌 밀수를 한 셈이다.

이를 두고 심씨는 "지금은 몇 안 남았다. 내가 아는 보따리장사꾼들이 십여 명은 됐는데 돌아가신 분도 많고, 연락이 두절되기도 해 지금은 서너 명 남았다. 하지만 그 때는 산곡동뿐만 아니라 부평 곳곳에 나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어려웠던 시절 자식 키우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이야 버젓이 간판을 내걸고 장사하지만 그 때는 단속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나도 단속에 걸려 벌금 냈던 게 두 번 정도 된다"라고 한 뒤 "단속을 피하기 위해 물건을 모두 집안에 감춰뒀다. 그런 뒤 새벽에 동인천이나 신포시장에 가서 팔곤 했다. 우리가 가면 재래시장 상인들이 무척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그때는 5원에서 10원이면 괜찮은 마진"

당시 미국산이라면 물건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엄청 좋았다고 한다. 면세였기 때문에 오히려 물건 값이 저렴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흔하지 않았지만 형편이 좀 나아 돈을 어느 정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미제를 선호했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생필품은 부족했던 시절이라 심씨의 보따리장사는 오랫동안 지속됐다. 오히려 걱정은 물건 값과 마진이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분주했다.

미군기지가 물건을 공급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곳 사람들이 부르는 게 값이었다. 그래도 어느 곳이나 장이 형성되면 흥정이 있기 마련. 오히려 심씨는 물건 회전을 늘려 박리다매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그에게 일하는 재미를 더해줬다.

심씨는 "미군기지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시장이 형성되는 게 아니라 미군과 결혼한 여성들과 교류했다. '양색시'라고 불렀는데 그들을 만나 흥정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인천여상을 다니게 해줘 말문은 통했다. 오히려 한글도 모르는 이들이 있어 내가 글도 가르쳐주고 영어로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물건을 주문할 때도 내가 직접 영어로 작성해서 그들에게 전해주면 그들이 미군기지에서 물건을 가져다줬다"고 말했다.

미군기지와 거래는 보통 일 주일에 한 번 정도였다. 당시 한국베어링에 다니던 남편 월급이 1만 2000원 할 때 심씨는 일주일에 5만~6만 원어치의 물건을 떼와 시장에 팔았다. 그만큼 순환이 됐다는 얘기다.

심씨는 "물건 값을 막론하고 무조건 개당 5원에서 10원정도의 마진을 붙여 팔았다. 100원에 가져오면 110원, 500원에 가져오면 505원이나 510원에 팔았다. 그러면 다시 재래시장 상인들이 거기에 자신들의 마진을 얹어 팔았다"고 한 뒤 "사실 내겐 지금보다 그 때가 더 장사가 잘되고 재미났던 시절"이라고 했다.

물건을 동인천역 재래시장이나 신포시장으로 가져갈 때 심씨는 택시를 이용했다. 산곡동에서 동인천으로 가는 교통편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집안에 감춰둔 물건을 싣고 가야 하는 부담이 있어서였다. 그래서 그는 택시기사들이 좋아하는 아낙이었다.

그는 "마진이 5원에서 10원밖에 안 되니 사실 별로 남는 게 없다. 그래서 물건을 많이 가져와 싸게 내다팔고, 그 순환을 빨리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며 "미군기지에서 나오는 물건은 늘 감시 대상이었다. 그러니 택시기사한테도 일반요금에 웃돈을 더 얹어줬다. 보통 새벽아침에 물건을 싣고 시장으로 갔는데, 택시기사들도 웃돈 얹어주면 눈감아주곤 했다"고 말했다.

이젠 전 보다 잘 안팔리는 게 사실이지만, 여러 수입물품들이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다. 추억에 젖은 사람들이 가끔씩 가게를 들러 물건도 물건이지만 그 보다는 옛 추억을 사가지고 간다고 봐야 할 것 같다.
▲ 산곡동 대지수입코너 이젠 전 보다 잘 안팔리는 게 사실이지만, 여러 수입물품들이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다. 추억에 젖은 사람들이 가끔씩 가게를 들러 물건도 물건이지만 그 보다는 옛 추억을 사가지고 간다고 봐야 할 것 같다.
ⓒ 김갑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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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추억을 흥정하는 산곡동 '사랑방'

심씨는 40년 넘도록 이곳 가게를 지키고 있지만, 세월은 흐르기 마련이고 사람도 변하기 마련이다. 아울러 그의 보따리장사도 어엿한 가게로 변모했지만, 이제 이곳은 가게라기 보단 추억을 흥정하는 사랑방에 가깝다.

부평미군기지에 있던 인력들이 빠져나가고, 끝으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빵공장이 사라지면서 심씨의 보따리장사도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나마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단골들이 들러 물건을 팔아주고 있어 반찬값은 번다고 했다.

심씨는 "95년 무렵 정식으로 '수입코너'라는 간판을 달고 장사를 펼쳤다. 하지만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던 터라 간판이 그다지 중요하진 않았다"며 "다만 미군기지와 거래는 끊겼다. 공급처가 사라지니 나도 그 때부턴 서울에서 물건을 가져와 팔고 있다. 품목도 여전히 비슷비슷한 생활용품이나 비스킷, 초콜릿, 커피 등인데 젊은 사람들보다는 추억을 간직한 이들이 물건을 사간다"고 말했다.

심씨는 이제 보따리장사를 통해 일군 가게 건물의 주인이 돼있다. 그래서 가게는 물건을 파는 상점이면서도 동네 사랑방이 됐다. 그나마 이곳도 얼마 후면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사라지게 된다. 남아 있는 동안 추억을 잇기 위해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는 것.

그는 "장사꾼이니 장사가 잘 되는 게 제일 좋다. 하지만 요즘은 정말 장사 안 된다. 그래도 난 추억을 안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어 괜찮다. 엊그제도 단골들이 순무김치며 떡이며, 순대, 돼지껍데기, 냉면 등의 먹을거리를 들고 가게를 찾아왔다"며 "음식을 같이 먹으며 추억도 같이 나누는 이곳은 사랑방이다. 심지어 여기 살다가 미국으로 간 사람들도 나를 찾아와 안부를 묻곤 한다"고 했다.

건물이 사라지기 전까지 장사를 계속하겠다고 하는 심씨는 "사람은 절대 신용을 잃으면 안 된다. 안 좋은 물건을 좋다고 속여 팔면 안 된다. 사람한테 한 번 신용을 잃게 되면 장사고 사람관계고 모두 끝"이라며 "장사가 비록 안 돼 스스로 정한 원칙을 잃으면 안 된다. 사람이 붙어야 장사도 되고 일도 되는 법이다. 비록 장사 안 되도 사람 모이는 사랑방은 충분히 되고 있으니 그 사람들과 늘 함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30년 부평지킴이, #캠프마켓, #부평미군기지, #산곡동, #보따리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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