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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기억에 매여 살고, 누구는 기억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고등학생 시절, 유신헌법 관련 유인물 제작 사건으로 구치소에 함께 수감됐던 친구 7명, 그들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그 일을 그냥 지나간 한 때의 일로 입에 올릴 수 있을지 몰라도, 누구는 그 일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고만다.  

 

연극 <7인의 기억>은 정독고등학교 홈커밍데이를 맞아 오래 전 자신들이 저지르고 겪었던 일을 연극으로 만들어보자며 6명의 친구가 모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나이를 짐작해 보니 대략 56세부터 58세 사이다. 젊다고 하기도 어렵고, 노인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전형적인 '낀 세대'다.

 

각자 하는 일은 다르고 생각도 차이가 나지만 그 때 그 시절을 이야기하니 금방 옛날로 돌아간다. 살벌한 시대,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던 시절이지만 혈기 왕성한 고등학생들은 유신헌법을 손 놓고 그대로 볼 수 만은 없다며 의기투합한다.

 

학교 근처 중국집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한 장면씩 극을 만들어 가지만, 중국집 이름이 세모였는지 네모였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고 각자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 다 다르다.

 

어찌 중국집 이름 뿐이랴. 사건의 시작과 진행 과정의 세부는 서로의 기억이 얽히고 설켜 조각 그림처럼 하나씩 맞춰나가지 않고는 이야기를 만들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데 7명 아닌 6명이 모여 연습을 하게 된 이유가 있는데, 그건 바로 그 일 이후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는 '종태'가 빠졌기 때문이다. 그 일 이후 종태는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한다. '더러운 놈들'이라며 아무에게나 침을 뱉는가 하면, '잘못했다'며 손을 비비고 머리를 조아리기도 한다. 그러니 가정생활인들 온전했을까.

 

6명의 친구들은 그 당시의 이야기를 극으로 만들어 공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혹시라도 종태가 나타나지 않을까 기대를 한다. 그러면서 종태의 딸에게 연락을 하지만 돌아오는 건 날선 대답 뿐이다. 가정이고 자식이고 안중에 없이 떠돌며 살았을 종태의 모습이 저절로 그려지면서 친구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그러던 중 종태의 딸이 낯선 사람의 보이지 않는 영향으로 뮤지컬 배우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결국 그 낯선 사람은 7명의 선배임이 밝혀진다. 물론 그 사이에 오해도 있고, 그 오해가 풀리는 과정도 있다. 오래 전 그 일의 선후와 인과관계도 함께 밝혀진다.

 

그럼 과연 종태는 친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까, 끝내 드러내지 않을까...글쎄, 비록 내일 막을 내리는 연극이지만 비밀이다.

 

종태의 딸이 아빠를 향해 외치는 소리만이 가슴에 그대로 날아와 박혔다. "아파도 기억해. 아파도 살아야 해!" '제발 잊어버리라'는 말과는 정반대이면서도 양쪽 모두가 진실일 지도 모른다. 잊으려 하면서도 한 쪽으로는 기억하려 애쓰고, 아픈 줄 알면서도 상처를 헤집어 맨살을 드러내는 것은 어쩜 아픔을 통해 존재를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연극은 흔히 말하는 '쌍팔년도' 풍의 중년 남자들의 추억담과 종태 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뮤지컬이 어우러져 나름 세대간의 다른 색깔과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 편으로는 기억과 현실이라는 두 가지를 상징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함께 연극을 본 30대 후반의 청년은 실제 겪진 않았어도 알고 있는 역사이고 사건이어서 나름 흥미있게 봤다고 했고, 50대 여성은 그렇고 그런 이야기가 너무 빤히 들여다보인다고 했다. 또한 칠십이 내일 모레라던 60대 여성은 약간 지루했다며 혹시 나만 그랬는지도 모르겠다고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럼, 나는? 주위 사람들 중 저 나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꼽아봤다. 음, 오빠나 형부 정도 되겠군. 그런데 오빠나 형부가 이런 연극을 과연 보러 올까? 혹시 보러 왔다면 자기네 세대 이야기라고 반가워하면서 한 편으로는 가슴 아파하면서 마구 마구 공감을 하게 될까?

 

대답은 내 몫이 아닌 것 같다. 다만 연극이 지나치게 설명을 해 주려고 하면 보는 사람이 답답해 진다는 것은 이야기할 수 있겠다. 꼭 오빠나 형부가 아니더라도, 나와도 그리 멀지 않은 이야기임에는 분명한데 푹 빠져들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 지나친 설명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쉽다. 

 

덧붙이는 글 | <7인의 기억>(장우재 작, 연출 / 출연 : 권혁풍, 김기천, 김병순, 고동업, 박혜나 등) - 4. 18 까지, 세종 M씨어터 


태그:#7인의 기억, #기억, #서울+기억, #친구, #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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