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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으로 본 지드래곤의 콘서트는 과연 듣던 대로였다. 살갗으로 느껴지는 강렬한 비트와 사운드, 눈이 부실 정도의 현란한 영상, 그리고 예의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퍼포먼스까지도….

 

지난 15일 가수 지드래곤의 단독 콘서트 <1st G-Dragon Concert - Shine a light>(12세 관람가) 영상이 극장 개봉했다. 지난해 12월 치러진 지드래곤의 단독 콘서트 영상이 그대로 담긴 이번 작품은 4월 20일 DVD 발매를 앞두고 멀티플렉스 체인인 CGV에서 독점 개봉해 상영에 들어갔다.

 

영화(라고 불러야 할지 콘서트라고 불러야 할지 헷갈리지만 극장에서 개봉했음으로 영화라고 해두자) 관람을 위해 극장을 찾은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상영관을 빼곡히 채운 여성 관객들이었다. 교복을 입은 10대 소녀들부터 20, 30대까지 관객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거의 유일한 남성 관객 중 한 명이었던 내가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에 앉으려니 괜히 뒤통수가 화끈거렸다.

 

"6시 넘었는데 왜 시작 안 하는 거야? 지용 오빠 빨리 보고 싶다."

"난 작년에 콘서트에 갔다 왔는데 여길 또 왔잖아. DVD도 나오면 바로 사야지."

"나도, 나도."

 

일반적인 영화가 아닌 콘서트 영상을 상영하고, 관객의 상당수가 지드래곤의 팬이어서 그런지 상영관의 분위기 역시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평소의 극장같이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아니라 약간은 들뜬 듯한, 좋아하는 가수의 모습을 빨리 보고 싶은 팬들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는 분위기였다.

 

여기가 대체... 콘서트장이야 영화관이야?

 

본격적인 상영이 시작되고 지드래곤의 모습이 스크린에 비쳐지자 객석 여기저기서 환호가 쏟아졌다(정말 콘서트장에 온 줄 알았다). 그리고 지드래곤의 솔로 데뷔곡이자 콘서트 오프닝곡인 '하트브레이커'(Heartbreaker)가 울려 퍼지는 순간, 극장 안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하트브레이커'에 이어 '디스 러브'(This love), '헬로'(HELLO), '가십맨'(Gossip man), '소년이여' 등 지드래곤의 히트곡들이 차례로 스크린에 흘렀고, 이윽고 '브리드'(Breathe)의 차례가 왔다. '브리드'는 소위 '침대 퍼포먼스'로 지드래곤의 콘서트에 '음란성'이라는 딱지를 붙이게 만든 곡. 그 일로 검찰에까지 소환되어야 했던 지드래곤과 그의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가 과연 침대 퍼포먼스 분량을 어찌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삭제를 하거나 손을 봤을 거라는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침대 퍼포먼스는 그대로 나왔다. 몇몇 관객들은 지드래곤이 여성 댄서와 침대 위에 올라가는 장면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과도한 폭력성이 문제가 됐던 '쉬즈 곤'(She's Gone)의 영상도 여과 없이 그대로 상영됐다. 자신을 피해 도망치는 여성을 뒤따라가 칼로 살해하는 내용을 암시해 논란을 빚었던 이 영상은 칼만 모자이크 돼 나왔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지드래곤이 손과 얼굴에 피를 묻히고 쓰러진 여성 옆에 주저앉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여성이 칼에 찔렸다는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드래곤은 무혐의 받았지만, 연소자에겐 유해한 공연

 

지난해 12월 지드래곤의 콘서트 이후 이런 선정적, 폭력적 장면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와 화제가 됐고,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가 검찰에 해당 공연이 형법상 공연음란죄에 해당하는지, 청소년보호법을 위반한 것이 아닌지에 대해 수사해 줄 것을 의뢰하면서 이 문제는 공론화됐다.

 

검찰은 지드래곤을 직접 소환하는 등의 조사를 한 후 지난 3월 15일 지드래곤의 공연음란죄 및 청소년보호법위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논란이 된 침대 퍼포먼스는 노래 '브리드'를 무대 위에서 연출하는 과정에서 극화한 것에 불과해 공연음란죄에 해당하지 않고, 복지부로부터 '청소년 유해 매체물' 지정을 받은 것은 지드래곤의 몇몇 음악파일과 음반이지 공연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공연법 위반에 대해서는 YG와 연출가를 벌금 300만 원에 약식 기소하고, 지드래곤에게는 입건 유예 처분을 내렸다. 공연법에 따르면 "누구나 청소년보호법의 기준에 의한 연소자(공연법상 18세 미만의 자) 유해 공연물을 연소자에게 관람시킬 수 없다"고 규정돼 있는데 콘서트를 기획한 YG와 연출가는 이 공연을 연소자에게 관람시켰기 때문에, 혐의가 있다고 여겨져 약식 기소된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복지부는 공연의 연소자 유해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 해당 공연에 대한 확인 요청을 했고,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공연추천소위원회는 지드래곤의 콘서트가 연소자에게 유해하다는 의견을 내렸다. 이 의견을 토대로 검찰은 YG와 연출가를 약식 기소했다.

 

다만 지드래곤에 대해서는 공연을 관람시킨 주체가 아니라 공연을 실연한 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입건유예, 즉 형사사건으로 입건하지도, 법원에 기소하지도 않은 처분을 받았다. 입건유예는 불기소처분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지드래곤이 공연음란죄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는 하나 그의 콘서트는 연소자에게 관람시키기에는 유해하다는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그 유해성이란 결국 침대 퍼포먼스와 살해 퍼포먼스가 주된 내용일 것이다(그 부분 외의 내용에서는 전혀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렇다면 콘서트를 영화화해 극장에서 상영하기로 결정했을 때에는 해당 부분에 대한 수정 및 삭제 조치가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수정된 것은 칼에 모자이크 처리를 한 것뿐, 예의 침대 퍼포먼스와 살해를 암시하는 피범벅이 된 지드래곤의 두 손 등 나머지 장면들은 여과 없이 그대로 노출됐다.

 

"고개 숙여 사과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번 문제와 관련해 또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점은 공연법위반 혐의로 약식 기소됐던 YG와 연출가가 이에 불복하고 무죄를 주장해 사건이 정식 재판으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공연음란죄와 청소년보호법위반에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고 공연법위반으로만 약식 기소 처분을 받은 YG와 연출가가 이번에는 공연법위반마저도 무죄를 주장하고 나선 것. 결국 이번 문제는 법정에서 그 잘잘못이 가려지게 됐다.

 

이는 지난 3월 9일 YG의 실질적 대표인 양현석이 YG 홈페이지에 올린 입장과도 대립된다. 양현석은 YG 홈페이지에 올린 'Message from YG'에서 해당 문제에 대해 "법적인 기준과 판단은 관계기관의 결정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라며 "소속가수들의 앨범 진행이 더욱더 시급한 상황 속에서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는 가급적 자제할 생각입니다"고 덧붙인 바 있다.

 

지난해 12월 콘서트의 선정성 논란이 일자 12월 11일 홈페이지에 올린 그의 사과문 내용 역시 모든 법적 책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그는 "대중음악이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누구보다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는 음반 기획자로서 이번 공연의 연출과 진행을 총괄했던 한 사람으로서 시끄러운 논란이 일어난 점에 대해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드리는 바입니다"라며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그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처럼 YG에서 비롯된 논란이기에, 괜한 핑계와 이유를 들어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라며 "YG는 보건복지가족부의 지적과 곧 진행될 조사에 성심 성의껏 임할 것이며, 조사 이후 현행법상에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 뒤따르는 모든 법적 책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검찰의 약식 기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무죄를 주장했다. 법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문제가 됐던 퍼포먼스들은 그대로 극장에서, 연소자도 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YG의 일련의 행동에서 '고개 숙여 진심으로 사과하는' 자세는 찾아보기 힘들다.

 

1시간 40여분의 러닝타임이 끝나고 콘서트는, 영화는 막을 내렸다. 극장 바깥으로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교복을 입은 어린 팬들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멋있다", "짱이다"라는 탄성을 연발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녀들이 멋있어 하는 게 지드래곤의 현란한 랩과 멋진 무대 매너에 국한되기를, 침대 위의 야릇한 퍼포먼스와 손에 피범벅이 된 지드래곤의 모습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랐다.


태그:#지드래곤, #콘서트, #음란성, #공연법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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