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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을 하루 앞둔 4월 4일은 막내 누님과 매형이 온다는 날이었다. 그런데 오전 10시가 넘도록 연락이 없어 궁금한 마음에 전화를 했더니, 지금 오는 중이라면서 시간이 없어 집에는 들르지 못하겠다고 했다. 

 

 

달포 전부터 누룽지도 모아놓고, 조기랑 박대도 말려놓았는데 실망이었다.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해서 기다리는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셋째 누님 집에서 모이기로 했으니 오후 6시30분까지 오라는 전화였다. 아쉬움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모를 정도로 반가웠다.

 

6시 버스를 타면 늦을 것 같아 5시35분 버스를 타고 나갔다. 조카도 와있었는데 출출해서 그런지 테이블 위 바구니에 있는 손님 접대용 과자가 맛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조카며느리가 웃으며 한주먹을 호주머니에 넣어주는데 코흘리개 시절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조금 있으니까 이튿날 산에서 먹을 음식 준비를 끝낸 막내 누님과 매형, 동생 부부가 도착해 무엇을 먹을까? 의견을 나누었는데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장면에서 시래기 매운탕, 민물장어까지 거론되었으나 해망동 수산물센터 이 층 횟집에서 '우럭회'를 먹기로 결론이 났다.

 

저녁 식사는 지난달 하순부터 며칠 간격으로 형수들에게 생일상을 받은 동생 부부가 인사 차원에서 대접하겠다고 해서 마련된 자리였다. 특히 암과 투병 중인 막내 누님이 항암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에 축하무드 속에 즐거움이 더했다.  

 

그런데 형님 내외가 빠져서 서운했다. 형님은 서울을 비롯한 각지에서 모인 고등학교 동창 40여 명이 타고 다닐 버스를 준비하고 식당, 숙소를 안내하느라 참석하지 못했고, 형수도 지난달 막내 동서(제수) 생일상을 차려주고 열흘 정도 휴가(?)를 얻어 서울에 사는 자식들과 언니 집에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항암주사를 맞을 때마다 먹지도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막내 누님을 보며 마음 아파하던 막내 매형은 진단 결과가 좋게 나오고, 10년 넘게 미뤄오던 산소 일을 식목일이자 청명(淸明)인 5일에 하려고 음식을 준비해놓고 날씨까지 좋으니까 기분이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해망동 바닷가 횟집에서  

 

주문을 하고 가서 그런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상이 차려졌는데, 나오는 음식들이 먹음직스러웠다. 고소하기로는 생선회 중에 으뜸인 싱싱한 우럭회를 푸짐하게 썰어놓아 침샘을 자극했는데, 막내 누님의 밝은 웃음이 가미되어 더욱 맛있게 보였을 것이다.

 

 

가지런히 썰어 나온 우럭회는 언뜻 보기에도 흐무졌고, 싱싱하다고 자랑이라도 하듯 색이 고르고 윤기가 나서 감칠맛을 돋우었다. 우럭회는 기름기가 없고 담백하고 연해서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데, 생선회 중에 으뜸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섬 출신 주방 아주머니가 만들어 내놓은 음식들은 하나같이 개운하고 깊이가 있어 젓가락을 바삐 움직이게 했다. 바닷가에서 태어나 바닷가에서 자란 아주머니의 야무진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이니 어머니 손맛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조피볼락'으로도 불리는 '우럭'은 미식가와 애주가들이 즐겨 찾는 생선이기도 하다. 검은빛을 띠면서도 살결이 희고 연한 우럭은 광어와 돔 등 다른 회와 쉽게 구별되는 특유의 맛을 지니고 있는데 고소하면서도 뒷맛이 달다는 것이다.

 

 

회가 남았는데도 매운탕을 주문했다. 불꽃이 좋은 가스불에 금방 끓여 먹는 우럭 매운탕은 수박 겉핥기나 다름없고, 소꼬리를 삶아내듯 푹 끓여야 머리와 뼈에서 특유의 진국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특히 찜, 탕 등 생선요리에 단골손님인 미나리를 듬뿍 넣으면 뼈에서 우러나는 고소한 국물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데 맛도 일품이지만, 독을 제거하면서 소주에 지친 속을 달래주는 역할을 한다. 다음날 아침에 속이 허전할 정도로 편하다는 얘기다.

 

코끝을 자극하는 비릿한 바닷바람 냄새와 밤바다를 감상하며 먹는 우럭회 맛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주꾸미, 멍게, 해삼 등 서비스로 나온 각종 해산물 중에 살아 움직이는 주꾸미는 맛으로나 형체로나 세발낙지와 착각을 일으키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빈 술병이 늘수록 가족들의 대화는 긴 강을 이루며 탁류가 되기도 하고 맑은 물이 되기도 하면서 해망동 앞바다에서 맴돌았고,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금강 하류의 반사되는 불빛들은 크리스마스트리에 붙은 금박지와 은박지처럼 반짝이며 저녁식사 자리를 축하해주는 듯했다. 

 

즉석에서 정한 여행 날 

 

좋은 안주가 널려 있는 탓도 있었겠지만, 일흔이 코앞인 막내 매형은 처남과 처형, 조카들이 권하는 소주잔을 마다하지 않고 받으면서 대화를 이끌어나갔는데, 얼굴엔 흡족해하는 표정이 가득했다. 

 

술잔이 몇 순배 돌아갔는데 형님이 도착했다.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손님들이 노래방에서 노는 사이에 틈을 내서 왔다면서 소주를 연거푸 몇 잔 마시고는 매형에게 미안하다며 자리를 떴다. 나이는 한 살 아래지만, 촌수를 따지면 손위 처남이 되니까 위인데도 항상 깍듯이 대하는 형님을 볼 때마다 무게를 느낀다. 

 

형님이 다녀가고 나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정담은 계속 이어졌다. 웃음과 행복을 가져오는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냇물이 되어 가슴으로 흐르고, 일부는 횟집 천정으로 흩어졌다. 형제들이 바닷가 횟집에서 저녁을 먹기는 무척 오랜만이었는데, 즐겁고 뜻있는 자리에 아내가 빠져서 서운했다.

 

자리가 끝나갈 즈음 막내 매형이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내일(5일) 함께 올라가지, 이제는 누님이 밥이랑 음식이랑 해줄 만하거든, 조기도 한 상자 샀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올라가자고···"하는 것이었다. 서울대공원, 경복궁, 용산 국립박물관 등을 거론하며 함께 꽃구경이나 다니자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전율을 느낄 정도로 고마웠다.

 

놀라운 제의였는데 매형은 셋째 누님에게도 함께 가자고 재촉했고, 옆에 있던 조카도 "이번 기회에 어머니도 삼촌이랑 함께 다녀오세요, 재미있겠네!"라며 거들었다. 그러잖아도 날이 풀리면 어디든 다녀와야겠다고 아내에게 얘기했고, 허락도 받은 상태인데 울고 싶은 차에 뺨 얻어맞은 격이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앞뒤 사정을 얘기했더니 잘 됐다며 집은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하기에 다음날 오후에 출발하기로 약속했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까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처럼 신이 나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눈앞에 그려졌다. 

 

맛있는 저녁을 즐겁게 먹고 나오려는데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식대를 내려니까 누가 이미 치렀다며 어이없어하는 동생과 "따라다니면서 얻어먹기만 했으니까, 이모랑 오셨을 때 한 번쯤 사야 되지 않겠어요?"라고 묻는 조카며느리에게 할 말이 없었다.

덧붙이는 글 | 2004년 가을 이후 6년 만에 이루어진 외출에서 의왕 철도 박물관, 서울대공원, 옛 친구와의 만남, 남산 한옥마을 탐방, 강정구 교수 강의 참석, 수원 화성 시티투어 등을 하면서 느꼈던 점들을 6-7회 정도로 나눠 담아보려고 합니다. 


태그:#여행, #우럭회, #우럭매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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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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