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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리 재미있는 걸까?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은 웃음을 간신히 눌러 참느라고 입술에 힘을 꽉! 준 것 같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 걸까?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은 웃음을 간신히 눌러 참느라고 입술에 힘을 꽉! 준 것 같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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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넉넉하고 듬직한 오빠 같은 미소의 불상들이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마음 넉넉하고 듬직한 오빠 같은 미소의 불상들이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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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에 갈 때마다 그다지 바쁘지 않으면 가급 만나고 오는 불상들이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 걸까? 어떤 이유에서인지 웃음을 잔득 머금었다. 금방이라도 간신히 참고 있는 웃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이 부처님들을 마주하고 있다 보면 기분이 그저 환해진다.

아래 사진 왼쪽의 부처님은 속보이는 투정과 억지를 부려도 "허허!" 웃으며 모두 받아줄 것처럼 마음이 넓어 보인다. 은근하게 봉긋한 볼이 유독 예쁜 오른쪽 불상도 불상이 지녀야하는 근엄함보다는 오늘 우리가 만난 한 평범한 사람을 보는 것처럼 친근하고 편안하다.

이 사바세계를 웃음의 도가니로 몰고 가려는 당찬 부처님이다. 이까짓 몸뚱이 하나 없다고 나의 웃음을 막을 수 없다. 웃을 수만 있다면 몸뚱이 백 개라도 인간을 위해 줄 수 있다. 내가 웃으면 이 세상은 웃음 바이러스로 전염되어 머지않아 극락정토가 될 것이라 확신하면서 폭발하는 웃음을 터뜨리기 1초 전인 듯싶다. 꼭 다문 입술엔 웃음이 함박 머금어 있고 중생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와 아예 두 눈을 감아버렸다. 팽팽해진 볼은 웃음이 터지면 그 위력을 실감케 하는 것 같아 너무 재미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을 닮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불교는)내가 웃으면 세상이 바뀐다는 인연, 인과법을 철저히 믿고 따른다. 인과에 따라 지옥 천당은 내 스스로 정하여 내가 간다. - <불교미술의 해학, 사찰의 구석구석>중에서

<불교미술의 해학ㅡ 사찰의 구석구석>(불광출판사 펴냄)은 사찰의 전각이나 불상, 탱화, 석탑 등에 새겨진 우리 조상들의 해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책이다. 책 속 '줄다리기를 이기면 부처가 안 된다?'라는 글 중 재미있는 그림 하나.

줄다리기를 이기면 부처가 안 된다?

남양주 흥국사 만월보전 팔상도-수하항마상 부분
 남양주 흥국사 만월보전 팔상도-수하항마상 부분
ⓒ 권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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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흥국사 만불보전의 수하항마상 일부분이다. 수하항마상은 부처님의 일생 중 가장 굵직한 사건을 8장면으로 표현한 팔상도 여섯 번째 그림이다. 부처님이 깨달음 직전에 세상의 온갖 번뇌와 유혹, 괴로움 등을 이기는 그 순간이다.

초등학교 운동회의 줄다리기를 떠올리게 하는 이 그림은 썩 재미있다. 파랗고 길쭉한 병 하나를 쓰러뜨리겠다고 마왕(악마)의 부하들이 이 난리들이다.

부처님이 완전한 깨달음을 이뤄 중생들을 구하면 마왕(악마)에겐 그만큼 불리할 것이라, 그동안 온갖 방법으로 부처님의 수행을 방해하던 마왕 파순은 마지막 카드를 제시한다. 무력으로라도 부처님의 깨달음을 막고자 자신의 군대를 동원한 것이다.

부처님은 '마왕일지라도 살생해선 안 된다. 자비로 응대하자'라며 깨달음의 상징인 보병을 마왕에게 내밀며 조건을 제시한다. "너희들이 이 보병을 쓰러뜨리면 나는 깨달음을 이루지 않을 것이다"라고. 그리하여 이 그림과 같은 장면이 연출되고야 만다.

마왕의 군대는 "얼씨구나 좋다" 하고 여러 갈래의 밧줄을 보병에 걸고 마왕 파순의 진두지휘 아래 줄다리기를 한다. 얼굴이 붉어지고 팔다리 근육이 불끈불끈 솟아오른다. 보병주둥이를 잡고 바깥다리 거는 놈, 힘을 모으기 위하여 북을 치며 격려하는 놈, 빨리 당기라고 꽹과리를 두들기며 독촉하는 놈, 뒤로 나자빠지는 놈, 밧줄에 매달리는 놈 등등 수십 수천의 마왕 무리들이 신나게 줄다리기 전쟁을 한다. 오직 대상은 보병 하나뿐인데 이렇게 쩔쩔 매다니 어느 초등학교 운동회 구경보다 재미있고 신나며 해학적이다. 무기를 쓰지 않고 오직 밧줄에 목숨을 건다.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안 것일까? 죽자, 살자하는 전쟁판이 아니라 떠들고 웃고 즐기고 노는 모습에 여유가 넘쳐흐른다. 인간의 전쟁도 이런 방법으로 하면 지구도 살고 사람도 사는 것 아닐까? - 책 속에서

종교그림인지라 일반인들에게 낯설 수밖에 없는 그림이지만 보병은 우리가 이뤄야 하고 지켜야 하는 목표나 규칙이요, 마왕과 그 졸개들은 목표를 향해 가는 동안 끊임없이 이겨내야만 하는 온갖 유혹 정도로 바꿔 생각하면 이 그림은 훨씬 의미 있게 다가오리라.

보병 하나 쓰러뜨리느냐 못하냐에 따라 세상의 '선(善)'과 '악(惡)' 그 순도가 결정된다. 그러니 마왕과 그 졸개들이 어떻게든 이겨야겠다고 이 난리들인 것이다. '보병이 쓰러지느냐 끝까지 버텨 주느냐?'에 따라 개인의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는 해석은 어떨까.

팔상도는 사찰 전각의 벽화나 탱화로 그려진다. 수하항마상 중에는 마왕이 자신의 딸을 보내 유혹하는 장면도 있는데, 재미있게도 남양주 흥국사의 이 그림 속 마왕의 딸은 못생긴 중년 여인이다. 아리따운 여인이 유혹해도 턱 없는데 왜 그렇게 못생긴 중년의 여인을?

종교 그림이라 우선 어렵고 딱딱하고 근엄하게만 여겨지는 그림일 수 있지만 불교미술 중에는 이처럼 해학적인 것들이 많다.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보물 1041호) 외에 다수의 팔상도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장난 좀 그만 쳐라, 부처님 말씀 중이시다"

여주 신륵사 극락보전 아미타삼존불 후불탱화 부분
 여주 신륵사 극락보전 아미타삼존불 후불탱화 부분
ⓒ 권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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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장난 좀 그만 쳐라, 부처님 말씀 중이시다'란 제목의 글에서 만날 수 있는 여주 신륵사 극락보전 아미타삼존불 후불탱화의 한부분이다.

사찰 전각마다 다른 불보살들이 모셔지고 그에 맞는 탱화나 벽화가 조성되는데, 극락전 혹은 극락보전에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의 그 아미타불이 주인공이다.

보살들과 아라한들이 아미타부처님(아미타불)을 에워싸고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긴장하며 열심히 듣고 있다. 그런데 어라? 아라한들이 장난을 치고 있다. 그리하여 수업 분위기가 헝클어져버렸다. 이때를 놓칠세라. 한 아라한이 사군자 그림을 자랑할 셈으로 펼쳐 보인다.

수업시간에 몰래 그렸나? 아라한들이 그림을 보겠다고 술렁인다. 잘 안 보인다고 두 손으로 머리를 미는 아라한과 안 보인다고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 치는 아라한 등, 앞의 아라한들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수업에 열중하건만 이처럼 뒷줄의 아라한들은 딴 짓을 하기에 바쁘다. 오늘날 교실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아무리 봐도 재미있는 그림이다.

장엄된 부처님 세계의 근엄성, 위의성, 숨도 쉴 수 없는 경직성에 중생들이 주눅이 들까 염려되어 이런 해학적인 멋을 부렸을까. 굴레와 속박을 벗어난 아라한의 선을 형상화한 파격적인 여유로움은 해학과 웃음을 던져준다. 부조화와 불균형을 통해 조화를 찾아내어 해학을 형성한 조상들의 안목이 놀랍지 않은가. 번득이는 지혜의 눈이 자기 안에서 주인공을 찾은 것 같다. - 책 속에서

이는 우리나라 불교미술에서만 볼 수 있는 해학이란다. 어쩌자고 화공은 지극히 경건해야 할 법당에 모실 그림에 이와 같은 웃음을 베푼 걸까? 법당에 드나들 때마다 지레 어려워하며 절만 하고 나오곤 했는데 이젠 좀 느긋하게 살펴봐야겠다. 

<사찰의 구석구석-불교미술의 해학> 겉그림
 <사찰의 구석구석-불교미술의 해학> 겉그림
ⓒ 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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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의 해학, 사찰의 구석구석>은 이처럼 조상들이 남긴 수많은 유물에 스며있는 불교미술의 해학을 불자만이 아닌 비불자들까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재미있다.

새삼스러운 말이 될까? 사찰의 전각이나 탑, 불상, 그림 등 조상들이 남긴 유물 중에는 불교와 연관된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런지라 우리의 유물이나 조상들의 흔적을 이해하려면 불교의 한 부분들을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초적인 지식 없이 불교를 알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 책은 이제까지 종교적인 상징물로만 어렵게 대하던 불교미술 앞에 선뜻 다가가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불교미술, 나아가 우리 문화재를 이해하는데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주리라.

원래 우리 민족은 해학이 풍부한 민족이다. 민족과 천년세월을 함께 해 온 불교미술 속에는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는데 힘이 되었던 우리 조상들의 멋과 여유인 해학이 다분히 스며있다. 이제까지 불교라는 한 종교의 상징물로만 어렵게 대해온 불교 미술 속 해학을 통해 삶의 용기와 활력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바늘에 실을 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백양사 대웅전의 아나율 존자 ▲가려움을 참지 못하고 기다란 막대기로 등을 북북 긁고 있는 나주 불회사 대웅전 포벽의 그림 ▲기둥을 뚫고 머리만 내밀고 세상구경을 하고 있는 예천 용문사 대장전 창방 뻘목의 물고기 ▲개구리에게도 꼼짝 못할 만큼 나약한 용을 그린 김천 직지사 수미단 ▲성적인 표현이 대담하게 표현된 경산 환성사 수미단 ▲고개를 떨구고 졸고 있는 곱고 앳되어 보이는 귀여운 사천왕상이 조각된 연곡사 동부도 등, 저자는 전국의 사찰 구석구석에서 우리 조상들이 베푼 해학들을 찾아내어 재미있게 설명한다.

불교미술 속 해학을 찾아 설명하는지라 재미있는 표현의 사진들이 풍성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나?' 그동안 절집이나 고궁, 박물관에 셀 수 없이 드나들었지만 몰라서 전혀 보지 못한 것들을 책 속 사진을 통해 만나며 답사를 떠나고 싶어 조급해지기도 했다.

사찰의 구석구석을 찬찬히 살펴보면 조상들이 남긴 사찰 조형물에서 해학과 유머 그리고 여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천왕의 발밑에 깔려 있는 악귀의 모습에서. 약이 오른 용에서. 호랑이에게 담뱃불을 붙이는 토끼에서, 부부의 사랑을 노래한 수미단에서, 팔상도에서, 부처님의 설법 중에도 떠드는 아라한에서,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불상에서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요소들을 재미있게 불교교리로 표현하였다.
- <불교미술의 해학, 사찰 구석구석> 책 머리글 중에서

덧붙이는 글 | <불교미술의 해학, 사찰의 구석구석>Ⅰ권중서Ⅰ불광출판사 2010.3.12Ⅰ18000원



불교미술의 해학 - 사찰의 구석구석

권중서 글.사진, 불광출판사(2010)


태그:#불교미술, #사찰, #불교신문, #권중서, #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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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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