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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우리말로 참 징한 동네다. 국내외 가이드북이나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보면 교토를 대개는 이틀, 길게 잡아 사흘 일정으로 소개하던데 느린 여행이 몸에 밴 본인의 경우 예외적으로 '격일 관광(하루 보고 하루 쉬고)'의 틀을 깼음에도 이곳서 머문 일주일이 내내 숨가빴다.      

하나 보고 눈 돌리면 또 하나 식으로, 국보급 문화재와 명소들이 도심 곳곳에 빼곡히 차 있어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나흘쯤 지나자 체증 같은 피로감이 쌓여 하루빨리 딴 곳으로 떠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교토를 잊을 수 없게 한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것은 그 장소, 그 시간에 도달하기 전엔 결코 예상하지 못한 전적으로 우연한 만남들, 바로 그 속에 있었다. 특히 슬픈 귀무덤 옆에서 만난 일본인 교코씨와의 추억은 이제껏 일본에 대해 품고 있던 막연한 거리감을 한순간에 좁혀버린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일본인 교코씨 "아이 엠 쏘 쏘리..."

어린이 놀이터 뒤로 미미즈카(귀무덤)의 오륜 석탑이 보인다.
 어린이 놀이터 뒤로 미미즈카(귀무덤)의 오륜 석탑이 보인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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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서 교토까지 자전거로 이동한 탓에 처음 두 날은 숙소에서 빨래하고 책 읽으며 컨디션 회복에 집중했다. 그사이 매끼 슈퍼에서 입맛대로 도시락을 사다 먹는 재미와 오후 무렵 골목길을 산책하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본격 관광에 나선 건 여독이 풀린 사흘째. 교토에 머문 동안 갔던 곳을 정리하면 교토타워→히가시혼간지→니시혼간지→쇼세이엔→산주산겐도→미미즈카→도요토미 히데요시 신사→ 호오코오지→기요미즈데라→산넨자카→니넨자카→네네거리→야사카탑→야사카절→고다이지→야사카신사→니노마루공원→지온인→헤이안 진구→교토코엔→긴카쿠지→철학의 길→난젠지→JR교토역→도지이다. 

사흘째날 첫 여정은 히사기혼간지를 시작으로 기요미즈데라까지 잡았는데, 그 중에서도 핵심은 '미미즈카'였다. 미미즈카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 군사들이 전공품으로 잘라간 우리 조상들의 귀와 코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을 받고 매장한 일명 귀무덤으로, 사실 이 곳 한 곳만 본다 해도 교토에 온 이유는 충분하다 생각했다.

천수관음좌상과 함께 1000개의 목조 천수관음상으로 유명한 산주산겐도를 보고 나오는 길,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 근처 가까운 곳에 미미즈카가 있었다. 그런데 생각처럼 쉽사리 찾을 수 없는데다 도로변 곳곳에 세워진 관광 표지판에선 유독 미미즈카만이 보이질 않았다.

일부 꿍꿍이속을 갖고 현지사람들에게 미미즈카의 위치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평소 일본에 대한 적개심 따위 갖고 있지 않았으나 이날 만큼은 새삼스레 괘씸하고 침통해지는 마음을 가누기 어려웠다. 특히 궁금한 것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미미즈카의 존재를 아는지, 그리고 왜 여태까지 그 흉한 것을 남겨놓았는지 하는 것이었다.

두 명의 앳된 여학생과 20대로 보이는 청년, 중년의 택시기사 등 너댓 명에게 물어본 결과 대부분 미미즈카의 위치는 알고 있었다. 산주산겐도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교토박물관이 있고, 그 바로 아래 우측 골목으로 들어가면 첫 삼거리 좌측에 어린이놀이터가 있는데 귀무덤은 바로 그 놀이터 옆에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놀이터를 사이에 두고 귀무덤과는 10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사가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군사들이 전공의 증표로 잘라간 우리 조상들의 귀와 코를 매장한 무덤. 이 무덤 지척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사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군사들이 전공의 증표로 잘라간 우리 조상들의 귀와 코를 매장한 무덤. 이 무덤 지척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사가 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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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위에서 도요토미 신사를 향해 눈을 힐끗 흘기고 미미즈카 앞으로 달려갔다. 옆 놀이터에는 까까머리 남자아이와 긴머리 소녀가 그네를 타며 놀고 있었다. 멀리서 언덕처럼 보이던 듬성듬성 풀이 자란 무덤과 그 위에 세워진 오륜 석탑은 가까이서 보니 훨씬 거대했다.

'시신도 아닌 귀와 코를 묻은 것인데 그 양이 얼마나 많았으면….'

무덤 앞 비석 위에는 한글로 'xx 중학교'라고 씌어진 이름표와 함께 곱게 접은 종이학들이 한가득 걸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이곳의 의미를 설명하는 유일한 표지판 하나가 서 있었는데, 여기서 '왜 이것을 남겨놓았나' 하는 물음에 대한 표면적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안내글의 말미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히데요시가 일으킨 이 전쟁은 한반도 민중들의 끈질긴 저항에 패퇴함으로서 막을 내렸으나 전란이 남긴 이 귀무덤(코무덤)은 전란 하에 입은 조선 민중의 수난을 역사의 교훈으로서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다행히 제국주의 역사를 자랑스레 여겨 귀무덤을 그 훈장으로 남기려는 의도는 아닌 듯 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보통의 관광지 안내판에 영어와 일어로 표기하는 것과 달리 귀무덤의 그것에는 예외적으로 한글과 일어 표기만이 되어 있었으며 앞서 말했듯 근처 길목에 세워진 이정표에선 어디서도 귀무덤의 표식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우리 정부가 왜 여전히 귀무덤을 이렇듯 방치해놓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일본 입장에선 굳이 갖고 있을 필요도,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닐테니 말이다.

짐작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착잡하고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고통 속에 죽어간 옛사람들의 명복을 수차례 빌고서도 비석처럼 한참을 그곳에 서 있었다. 그리고 힘겹게 돌아서 나오는 길, 아까 놀이터에 있던 꼬마들이 그 엄마 곁에서 웃으며 재잘대고 있었다. '이제 와서 저들을 원망하겠나' 싶었지만 울컥한 마음은 좀처럼 진정이 안 됐다.

그때 빨간 원피스에 피크닉 모자를 쓴 아주머니 한 분이 꽃삽을 들고 놀이터 난간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마침 잘됐다 싶어 성큼 다가가 따지듯이 물었다. "저 미미즈카가 뭔 지 아세요?" 그러자 그녀가 내뱉은 대답은 뜻밖에도 "Yes, I am so sorry(네, 정말로 미안해요)"였다. 단단히 벼르고 있던 마음이 한순간 무장해제 되어 다리가 휘청 꺾일 뻔 했다.

귀무덤의 존재를 물었을 때 뜻밖에 정말로 미안한 표정으로 "아이 엠 쏘 쏘리"라고 말한 일본인 교코 아줌마.
 귀무덤의 존재를 물었을 때 뜻밖에 정말로 미안한 표정으로 "아이 엠 쏘 쏘리"라고 말한 일본인 교코 아줌마.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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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교코. 사십대 중반쯤 보이는 웃음이 고운 여인이었다. 여인은 덧붙여 말하길 "나는 저 무덤의 의미를 잘 알고 있어요. 우리 조상들이 잘못한 지난 역사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요"라며 서툰 영어로 마음을 표현하려 애썼다. 정말로 미안한 표정이 되어 내 손을 지긋이 당겨 잡는 그녀 앞에서 무덤가에서 애써 삼킨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소리를 내서 울 수가 없어 눈물을 참으니 목이 아팠다. 간신히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을 때 그녀에게 한 말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였다. 그리고 역시 서툰 영어로 "내게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어느 나라나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교코 씨 역시 두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이 보였는데 잠시 후 우리는 초면에 눈물을 보인 것이 머쓱해져 애써 명랑한 표정으로 화제를 돌렸다. 나의 일본 여행 목적, 숙소의 위치, 앞으로의 계획 등이 주가 됐는데 그 과정에서 교코 씨가 무려 61살이라는 걸 알게 됐다. 깜짝 놀라서 "거짓말 아니고 40대쯤으로 봤다"고 하자 만개한 목련처럼 그녀가 활짝 웃었다.

하루빨리 귀무덤을 고국으로 옮겨와 망자들의 넋을 위로해주길 우리 정부에 건의하는 바다.
 하루빨리 귀무덤을 고국으로 옮겨와 망자들의 넋을 위로해주길 우리 정부에 건의하는 바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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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오면 꼭 연락을 주십사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준 뒤 교코 씨와 작별을 했다. 그리고 바로 앞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신사에 들렀다.

신사 마당에 외국인 관광객 여럿이 보였다. 그들은 아마도 귀무덤의 존재는 모른 채로 이곳을 지나쳐갈 것이었다.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외국인들의 영어 가이드북을 봤더니 그 역시 미미즈카에 대한 정보는 실려 있지 않았다.

애석한 마음으로 도요토미의 신사 앞에 서서 속으로 기도했다.

'당신과 같은 우매한 정치인들로 인해 또다시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길 빕니다.'

끝으로 우리 정부에 다시 한번 건의하는 바, 귀무덤에 남겨진 망자들의 흔적을 하루빨리 고국에서 깨끗이 화장하고 그 넋을 기리는 '아주 작은 비석' 하나 봄볕 잘 드는 언덕에 세워주길 바란다.


태그:#귀무덤 , #미미즈카 , #교토 , #일본 ,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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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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