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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즈음 필자는 "팀을 바꾸는 게 어떻겠니?", "아니 할 말로 네가 그 회사 직원도 아니잖아"등의 무수한 진심 어린 충고를 들었고, 그런 그들에게 반항하는 심정에 우월한 화면으로 야구를 보겠다며 50인치 LCD TV를 확 질러버렸으나… 일시불로 월급을 한 방에 날리고 손가락을 빨면서 12연패를 풀 HD화면으로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그 심정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짐작조차 못하리라. (레지나, 야생야사 가족사)

하필 내가 본격적으로 야구를 다시 보기 시작한 2004년부터 KIA 타이거즈는 서서히 바닥을 향해 추락했고, 급기야 2005년 팀 역사상 최초로 꼴찌를 기록했다. 2006년에는 간신히 4강에 진입했으나 다음 해 또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어떤 형님은 나보고 타이거즈를 위해 다시 입대하는 게 어떻겠냐는 진심 어린 권고까지 했다. (신희진, 그대 나의 챔피언)

어딜 가든 우리 주위엔 야구에 미친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뼛속 깊이 야구 DNA가 박힌 사람들. 주변에서 미쳤다고 손가락질해도 소용없다. 프로야구의 존재 목적이자 희망의 존재, 바로 팬이니까. 팬들의 시야에는 그런 손가락질은 들어오지도 않는다.

언제 다음호가 나올지 모르는 야구잡지

야구에 미친 사람들에게는 야구는 그 자체로 삶이나 다름없다. 잡지인지 단행본인지 모를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의 동류의식을 묘하게 자극한다.
 야구에 미친 사람들에게는 야구는 그 자체로 삶이나 다름없다. 잡지인지 단행본인지 모를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의 동류의식을 묘하게 자극한다.
ⓒ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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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수 있는 스포츠를 주창하며 나타난 야구생활(도서출판 금요일)은 '야구에 미친 사람들을 닮은' 특이한 잡지다. 먼저 야구 잡지의 시대를 살다 간 주간야구, 월간야구, 스포츠 2.0의 계보를 따르는 것 같지만 잡지라고 하기엔 너무 두툼한 양을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게다가 편집자는 창간호 머리글에 "첫 권이 마지막 권이 되어 '레어템(희귀한 아이템)'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버젓이 써 놓았다.

누구나 입으로 프로야구의 중심은 팬이라 외치며, 팬과 함께함을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 터지거나 중요한 일이 생기면 팬들의 목소리는 외면받기 일쑤. 그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곳이란 포털사이트 기사창의 댓글란 밖에 없는 실정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야구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매체, 한국야구의 그림에 대해 갑론을박 떠들어볼 수 있는 공간'의 '임무'를 갖고 태어난 책이 <야구생활>이다.

팬들의 진솔한 목소리, 전문가의 치밀한 분석

<야구생활>은 책 절반의 내용을 8개 구단 팬 중 글 깨나 쓴다는 입심 좋은 이들의 글로 엄선했다. 소박한 자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글을 풀어나가니 야구에 미친 사람들에겐 동류의식을 자극한다.

팬들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책의 뒷부분은 프로야구의 담론을 이끌어가는 쟁쟁한 전문가들의 글이 자리잡았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야구의 추억>으로 유명한 작가 김은식씨는 그만의 담담하고도 진솔한 말투로 프로야구 명장으로 손꼽히는 김성근, 조범현, 김경문 감독을 그려낸다. 또한 현장에서 날카로운 분석을 자랑하는 이데일리 정철우 기자는 팬들이 보지 못하는 현장의 내밀한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담았다.

새로운 야구담론의 등장

이 잡지는 '2009-2010' 호다. 계간지까지는 들어봤는데 연간지라니. 그러면 다음호는 '2010-2011' 호란 말일까? 쟁쟁한 필자에 광고 팍팍 실리는 잡지도 한방에 날아가는 얼어붙은 출판시장에 팬들의 글로 책을 채우고 광고 하나 없다니 생명이 위태로워 보인다.

하지만 이 배짱 좋은 편집자는 '좋은 책은 독자가 알아준다'는 신념을 가지고 우직하게 밀어붙이려고 한다. 야구팬들이 좋은 글을 써주고 또 많이 읽어준다면 얼마든지 꾸준하고 오래 갈 수 있다는 일종의 신념마저 느껴진다.

2010년 프로야구 개막이 어느덧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이 터진 한국시리즈 7차전에 환호했던 팬들은 금세 다가온 새 시즌에 놀라면서도 기대를, 아쉬운 패배에 눈물 흘렸던 팬들은 절치부심하며 설욕을 기다렸을 터.

2010년엔 2010년의 이야기가 새로 그려질 것이다. 팬들 또한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한 해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야구생활>이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길 기원해본다.


야구생활 2009-2010 - 첫번째호

김은식.정철우 외 지음, 금요일(2010)


태그:#야구생활, #프로야구,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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