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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내가 겨우 13개월일 때 아버지는 징용령으로 전쟁터로 나갔다. 그 후 생사도 모른 채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을 안고 힘들게 살아왔다.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한 건 1992년 아버지의 사망명부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1997년, 아버지가 A급 전범과 함께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유족에게 어떤 통고도 동의도 없었다. 내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곳에 영혼마저 가둬둘 수 없다. 내 아버지의 영혼을 돌려 달라."

한국 강제동원피해자 유족 이희자씨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됐다. 한국과 대만에 있는 유족들은 아버지 혹은 남편, 아들의 생사를 모른 채 살아가다 1990년대 들어서야 관련 자료를 통해 가족의 생사와 야스쿠니신사 합사 사실을 알게 됐다. 강제로 끌려가서 죽은 것도 억울한데, 끌어간 일본의 신으로 모셔져 있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이었다.

한국인 유족들은 2001년 6월29일 '야스쿠니신사 합사 취하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야스쿠니 측에서 돌아온 답변은 '전사한 시점에 일본인이었다'는 이유로 합사를 취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식민지 출신 전사자는 영원히 식민지 통치하의 일본인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혼마저 천황의 노예로 가둬두고 있는 것이다.

1930년경 전주신사의 모습
 1930년경 전주신사의 모습
ⓒ 김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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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은 안중근의사 순국 100년이 되는 해이며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다. 이에 전주역사박물관이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침략신사, 야스쿠니'라는 전시를 마련했다. 야스쿠니신사를 비롯한 일제의 침략신사에 대한 자료를 모아 지난해 11월4일부터 15일까지 국회도서관에서 최초 공개된 이후 두 번째 소개되는 전시다.

일제의 침략신사 문제가 조명된 것은 연구자들보다는 야스쿠니신사에 강제 합사된 유족들로부터였다. 이번 전시는 일본 정부 및 야스쿠니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국, 대만, 일본, 오키나와의 이들 유족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북돋아주자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조선을 강제 병합한 일제는 조선을 온전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무력 탄압뿐 아니라 민족말살정책을 강행한다. 조선어 사용 금지, 일본어 교육, 창씨개명 등이 그런 맥락에서 이뤄졌고, 신사참배 강요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사는 원래 일본 신앙의 종교 시설이자 왕실의 조상이나 민간 고유의 신앙 대상들을 모셔 놓은 종교 건축물이었으나 메이지유신 이후 종교적 색채를 지우고 천황 중심의 국가종교로 재편됐고, 신사는 그 국가신도의 실천장이 됐다.
부산 용두산 신사의 모습
 부산 용두산 신사의 모습
ⓒ 김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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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신사는 일제가 침략전쟁을 통해 식민지로 만든 나라에도 짓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사는 부산에 세워진 용두산 신사며, 전북에는 군산에 1902년에 최초 건립됐다. 이후 꾸준히 신사가 증설되다가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1도(道) 1신사(神社), 1면(面) 1신사(神祠) 설치를 장려했다. 이처럼 신사의 확대와 신사참배강요는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것이었고, 징병, 징용에 용이하게 조선인을 동원하기 위해 강제됐다.

야스쿠니 신사는 천황이나 황족을 제외하고 일반국민을 국가가 직접 신으로 모신 유일한 신사다. 야스쿠니신사에 신이 되는 단 하나의 조건은 천황을 위한 전사였다. 야스쿠니신사는 신사를 사칭하지만 일반 신사와 달리 천황을 위해 전쟁에서 희생된 자를 신으로 모시기 위해 육해군성의 요청에 따라 설립한 군사시설이었던 것이다.

2001년 현재 야스쿠니신사에는 총 246만여 명이 합사돼 있는데, 이 중 한국인은 2만1000여 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태평양전쟁 기간에 군인, 군속으로 강제 동원된 사람들이다. 한국인이 일본인의 이름으로 침략국가의 호국의 신으로 모셔지고 있는 실정이다. 유족들은 이 사실을 1990년대에 들어서야 관련 자료를 통해 알게 됐다. 강제로 끌려가 죽은 것도 억울한데 강제로 끌어간 일본의 신으로 모셔져 있는 것이다. 이에 유족들과 많은 민간단체들이 일본을 상대로 기나긴 법정재판을 이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번 전시는 일제강점기 침략신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역사적 연원, 어떻게 식민지 지배에 사용됐는지에 대해 다양한 사진과 유물, 신문기사 등을 통해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에 아직도 합사돼 있는 피해자들의 운동과 전북지역과 관련된 신사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최재흔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은 "왜 그들의 신사를 침략신사라 부르는지, 야스쿠니신사라는 일본의 대표적 신사의 모순이 뭔지, 동아시아 국가들이 일본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해 중단을 요구하는 이유가 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전시"라며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학생들에게도 좋은 정보가 될 수 있는 전시"라고 밝혔다.

전시는 전주역사박물관에서 3월26일부터 6월12일까지 진행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신사, #침략신사, #일제시대, #신사참배,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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