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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아이들 등하교 길에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 등하교길 우리집 아이들 등하교 길에 바다가 펼쳐져 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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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를 구하고 나서 가장 먼저 나무부터 심었습니다. 공주 집 뒤로 호남고속도로가 뚫리게 되면 무지막지한 포클레인에 짓뭉개질 어린 소나무 몇 그루를 비롯해 어린 뽕나무, 오가피며 매실나무 몇 그루를 옮겨 심었습니다. 

"아, 얼른 집 짓고 이사 와서 같이 삽시다."

터 앞에는 이미 1년 전에 집 짓고 이사 온 60대 초반의 부부가 살고 있는데 외진 곳에 단 한 채의 집, 부부만 달랑 생활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던 모양입니다.

어디든 정 붙이고 살면 그만이지

새로운 이웃 박종호씨 부부로부터 저녁 식사 대접을 잘 받고 공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구멍가게에서 담배를 사려 하는데 그 앞에 쪼그려 앉아있던 어르신이 빤히 올려다보며 물었습니다.

"첨보는 양반인디, 어디서 왔소?"
"공주에서요."
"충남 공주? 아따 멀리서 왔구만, 이 동네 누구 아는 사람이 있소?"
"아뉴, 아무도 없는 디요. 이제 마악 이웃들이 생기고 있네요."
"뭘 하는 양반인가?"

봉두난발한 머리채에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내 꼬라지가 어르신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모양입니다.

"글도 좀 쓰고 농사도 좀 짓고, 바다 일도 배워가며 인저 이 동네서 살건디요."
"이 동네서? 어디로 이사 오는가?"
"아직 집은 없는디 저기 바닷가 안쪽 있잖유... 거시기 거기다가 터 구하는디 3년이나 걸렸다니께요."

밑도 끝도 없이 터 구하기 위해 3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고 푼수처럼 말하자 동네 어르신이 마뜩찮은 투로 말했습니다.

"뭐 그렇게 까다롭게 땅을 구하러 다녔데요이, 어디든 정 붙이고 살믄 고만이지..."
"... 그러게 말입니다."

그 '어디든'이 바로 이 동네인데요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언젠가 친구 녀석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어디든 눌러 살면 그만이지 뭘 그리 까다롭게 땅을 보러 다니냐고요. 그랬습니다. 아주 까다롭게 땅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먼저 가진 돈에 맞춰야 했습니다. 개발 염려가 없는 땅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 수억 원짜리 번듯한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 친구는 모를 것입니다. 가진 게 별로 없으면 까다롭게 땅을 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는 또한 모릅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줄여 나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대자연을 누리며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을. 진짜로 좋은 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모를 것입니다.

그는 좋은 땅의 개념을 투자 가치로 보기 때문입니다. 투자 가치가 있는 땅은 개발과 관련이 있기 마련입니다. 결국 그 땅은 좋은 땅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망가지는 땅입니다. 자연과 어울려 사람이 살 만한 그런 땅이 아닙니다. 돈으로 환산되는 땅의 가치는 생명의 차원에서 보면 죽어가는 땅입니다. 그런 땅은 자금이 넉넉하면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는 땅입니다. 까다롭게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매 나온 땅? 가슴아픈 땅일 틴디... 못 혀"

새 터를 구하러 다니면서 새삼스럽게 확인한 것 중 하나가 대한민국은 개발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살아있는 강줄기를 무지막지하게 후벼 파내 죽음의 삽질을 하고 있듯이 구불구불 생동감 넘치는 시골길을 반듯하게 뚫어 큰 도로로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시골 구석구석 큰 도로가 닿지 않은 곳이 별로 없을 정도입니다.

누가 빨리 달릴 수 있나 달리기 시합이라도 하듯 큰 도로 옆에 고속도로까지 뚫고 있습니다. 큰 도로가 닿은 곳은 상대적으로 땅 값이 비쌉니다.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는 큰 도로를 피하면 상대적으로 땅 값이 싼 편입니다. 큰 도로가 온 국토에 거미줄처럼 그어져 있기에 싼 땅을 찾기가 쉽지 않아 결국 까다롭게 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남 고흥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놓고 볼 때 교통의 오지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거기다가 우리 가족이 찾은 새 터는 개발될 염려가 거의 없는 산간 바닷가 오지입니다. 새 터로 들어서려면 바다를 옆에 끼고 있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거쳐야 합니다. 마을로부터 1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 전화선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터로 이어지는 도로는 아직 콘크리트 포장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적도상에 도로와 맞닿아 있는 땅이 거의 없어 투자 가치가 없는 오지지만 자연환경은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터를 구하기 전, 싼 땅을 찾아다니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어떤 사람은 임야를 권하기도 했습니다. 임야는 논이나 밭에 비하면 아주 싼 편입니다. 하지만 임야를 구하게 되면 산을 훼손시켜야 합니다. 온갖 나무들을 베고 굴삭기를 동원해 산을 까뭉개 터를 다져야 합니다.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보금자리를 일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임야를 원치 않는다면 경매로 나온 아주 싼 땅을 구할 수 있는데 그것도 한번 알아봐요."

잘 아는 후배가 고리대금업자들, 금융기관에서 내놓는 경매 물건들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땅 구하러 다니는 것에 지칠 대로 지쳐 있던 터라 후배 말대로 한동안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경매 사이트를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경매로 나온 매물들은 일반 땅 시세보다 반 가격도 채 안 되는 싼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대부분 가슴 아픈 땅들일 틴디, 나는 그 짓 못 허것어."

후배가 혀를 찼습니다

"어이구 성님, 이것저것 따지면 어느 세월에 땅을 구할 수 있겠어요?"
"그런 아픈 땅에다가 어떻게 희희낙락 농사지으면서 살 수 있겠어?"
"그래도 누군가가 그 땅을 매입할 것인데 형님이 구입해서 그 분들 한티 잘 해 드리면 되잖아요."
"그게 말처럼 쉽겠어, 그렇게 한다 해도 결국 그 사람하고 한 동네에서 얼굴 마주보며 살아야 허는디, 그 양반이 오고가며 그 땅을 보면 얼마나 가슴 아퍼하겠어. 아이구 나는 그 짓 못혀." 

막상 땅을 손아귀에 쥐면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싼 땅을 구하겠다고 경매물건에 손을 댄 사람이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을까요? 애초에 그런 자비로운 마음이 있다면 경매물건 따위를 끼웃거리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나 또한 그런 자비심을 베풀 만큼 너그럽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투기하는 사람들이 은행에 잡혀 나온 매물도 있다는데 그걸 한 번 찾아봐요."
"그걸 어떻게 찾겠어? 아이구 경매 사이트 뒤적거리고 있다 보니께 머리에 쥐가 날려구 그려, 그냥 경매는 그만 둘텨."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는 말도 있잖아요."
"나는 그럴 자신도 없고 그 말 안 믿어."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 그 말 안 믿어"

하루 세끼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도 닦는 어떤 선배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천 평의 땅이 있었습니다. 주식해서 돈 벌어 좋은 사업 벌이겠다며 후배들까지 동참시켜 주식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습니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겠다는 심사였겠지요.

나는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겠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간혹 이 일 저일 가리지 않고 피 땀 흘려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그런 분들을 두고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말을 갖다 붙이곤 합니다. 하지만 그 분들이 사회에 환원하는 돈은 개처럼 번 것이 아닙니다. 사람답게 번 돈입니다. 사람답게 벌었기에 사람답게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개처럼 벌어서는 청렴한 정승처럼 쓰질 못합니다. 미친개처럼 이 사람 저 사람 물어 뜯어가며 자신의 뼈다귀를 구석구석 넘치도록 챙겨 놓고 어쩌다 선심 쓰듯 개집 밖으로 뼈다귀 하나 뚝 던져 놓는 자본가들의 습성이 그렇듯이 개처럼 쓸 뿐입니다.

그리고 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 정승들은 온갖 편법을 저지르는 '개 같은 인물'들입니다. 정승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은 대부분 이 사람 저 사람 물어뜯어가며 미친개같이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국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겠다는 말은 미친개처럼 살아가는 정승들이 자기 합리화로 떠벌여 대는 말에 불과합니다.

사실 나는 그 선배처럼 좋은 일에 쓰겠다며 주식에 투자할 만큼의 여유 자금이 없었습니다. 그는 주식을 날려가며 마음을 비우고 돈을 비울 수 있었겠지만 나는 비울 것도 날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산과 바다, 대자연입니다. 교통 불편한 오지에 땅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특권이기도 합니다.

자식들 교육문제요? 시골 작은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에게 고루 사랑을 받아가며 친구들과 죽어라 경쟁하지 않아도 됩니다. 삼삼한 등굣길이 바닷길을 따라 늘 열려 있습니다. 산에서 산나물을 캐러 다니고 바다에서는 조개를 캡니다. 미역도 캐고 고기도 잡아 어느 정도의 찬거리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은 빠드름하게 해도...

학교에서 돌아오는 녀석들 입에 뭔가가 물려 있습니다. "쫀쫀하게 그런 걸 먹냐?" "우리 먹는 거 쫀쫀인디 어제 아빠도 이 쫀쫀이 먹었잖어 쫀쫀하게."
▲ 인효 인상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녀석들 입에 뭔가가 물려 있습니다. "쫀쫀하게 그런 걸 먹냐?" "우리 먹는 거 쫀쫀인디 어제 아빠도 이 쫀쫀이 먹었잖어 쫀쫀하게."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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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목에 마중 나온 우리집 개 곰순이
 녀석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목에 마중 나온 우리집 개 곰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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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가 바다는 큰 도화지를 돈 한 푼 받지 않고 제공합니다. 언제 어느 때건 물이 빠지면 해변으로 달려가 맘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영구재생 가능한 거대한 도화지입니다. 그림에 소질을 보이고 있는 작은 아이, 글 쓰는데  관심이 많은 큰 아이에게 이만한 교육환경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먹고 사는 문제요? 가장 큰 문제지요. 일단 한 달에 백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송 원고료로 생활하면서 땅과 바다를 통해 기본 먹을거리를 해결해 볼까 합니다.

땅과 바다를 통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듯이 구체적인 계획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뭔가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맘껏 갈아먹을 농토가 있고 산과 바다가 있으니까요. 우리 마누라한테 말했다가 늘 된통 당하기 일쑤인 사이비 교주 같은 말로 표현하자면 '큰 욕심 부리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땀 흘려 살다보면 하늘이 다 알아서 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

말은 빠드름하게 하고 있지만 사실 당장 살 집이 문제였습니다. 몸을 의지할 둥지가 있어야 날갯짓도 할 수 있으니까요.

덧붙이는 글 | 기사에 덧붙인 사진은 새터로 이사 와서 최근에 찍은 사진입니다.



태그:#좋은 땅, #땅 투기, #임야, #경매, #교육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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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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