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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이 뿔났다. 그것도 단단히 뿔이 났다. 작가회의에서 계절마다 내던 문예지 <내일을 여는 작가>를 무기한 정간하기로 했다. 이미 원고들이 다 들어와 인쇄를 앞둔 때다. 작가들은 자신의 글을 서점에 진열하기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섰다. 원고지 대신 아스팔트에, 활자가 아닌 분노의 목소리로, 작품이 아닌 작가정신으로 독자를 만나러 거리에 나섰다.

 

지난 3월 12일 오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가 있는 서울 혜화동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이날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책이 출간되었다. 그 책은 '창간호'가 아니다.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정간호'라는 이름으로 작가들이 책을 펴냈다. 물론 그곳에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책은 없었다. '저항'이라는 작가정신이 활자보다 더 굵은 글씨로 세상에 새겨지고 있었다.

 

작가에게 활자는 생명이다. 그 생명을 거부한 까닭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그 까닭을 찾으려면, 지난 1월 19일로 시간을 되돌려야 한다. 이날 예술위는 작가들에게 한 장의 확인서를 요구했다.

 

예술위가 요구한 확인서 한 장, 어이 없다

 

작가회의는 2008년 여중생들이 촛불을 들고 나서며 시작된 저항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고 말하라. 그러면 작가회의에 문예지 등을 낼 수 있는 돈 3400만원을 주겠다. 만약에 훗날에라도 촛불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확인'된다면 '보조금 반환은 물론 관련된 일체의 책임을 지겠'다는 서약을 하라. 이 '확인서'를 쓰지 않으면 단 한푼의 지원금도 줄 수 없다는 내용이다.

 

예술위는 3400만 원을 흔들며 작가들을 현 정부에 길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3400억 원을 흔들어도 길들여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작가다. 예술위의 '확인서'요구에 작가회의는 그 어이없음에 '예술위, 너나 잘 하세요'라는 취지로 입장을 발표했다.

 

"위정자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이 나라 인문학 역사의 오랜 전통이며 선비정신의 근간이었다. 봉건왕조 시대에도 선비 지식인들은 대의와 정도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직언을 하였으며, 근대 이후에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투옥과 고문과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해 왔다. 그와 같은 선비 지식인의 올곧은 정신이야말로 이 나라를 지켜온 버팀목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 작가들은 2년 전 시민들의 촛불을 지켜보았고, 스스로 촛불을 들었으며, 촛불정국을 바라보는 글을 썼고 민주주의의 확장을 요구했던 것이다."

 

- 2010.2.8, 한국작가회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반문화적 형태에 대한 한국작가회의의 입장' 가운데서

 

작가회의는 위 성명서의 마지막에 '우리 한국작가회의는 문인과 예술인의 양심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문학적 행동에 당당히 나설 것'임을 밝혔다. 그리고 며칠 후 2월 20일 열린 한국작가회의 정기총회에서 작가들은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벌일 것을 결의했다. 또 문예지 <내일을 여는 작가>를 내지 말자는 원로 최일남 소설가의 제의에 고은, 신경림 시인과 같은 흰머리 성성한 어른부터 이제 문단에 발을 갓 디딘 청년 작가들까지 한마음으로 박수를 쳤다.

 

확인서 철회가 문제 해결은 아니다

 

"우리 예술위는 이 지침을 준수하면서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해 귀 단체가 2008년도 '광우병대책국민회의'가 주최한 불법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자 한 것입니다. 미래의 행동을 제약함으로써 자기 양심에 어긋나는 신념과 행동을 강요하거나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에 제한을 두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인서의 형식과 일부 내용이 예술계의 오해와 우려를 불러일으킨 점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확인서의 요청을 철회하고자 합니다."

 

- 2009.3.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0년도 문예진흥기금사업 특별지원조건 관련 알림' 가운데서

 

돈으로 작가를 길들이려 했던 예술위는 뒤늦게 '유감'을 표명하며 작가들을 달래려고 했다. 하지만 작가들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내일을 여는 작가-정간호' 거리낭송회를 열며 '확인서' 철회가 작가 저항의 끝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 문제의 시작은 예술위가 아니다. 국가재정법 44조와 88조에 근거하여 내린 행정자치부의 '2010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 집행지침'을 예술위는 단순하게 집행하였을 뿐이다. 또한 많은 촛불시위에 참여한 많은 시민사회단체는 이 지침에 의해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를 여전히 침해당하고 있다. 작가회의나 예술인에게 적용되는 '확인서' 철회가 해결책은 아니다. 시민 위에 군림하려는 현 정부의 오만함에 대한 반성 없이는 작가들의 '저항'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양심은 작가에게만 허용된 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항의 글쓰기'로 빚을 갚겠다

 

이 자리를 빌려 솔직히 고백할 것이 있다. 나는 2008년에 예술위에서 창작기금을 자그마치 1200만 원이나 지원 받았다. 그때 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60,70년대 가발공장·봉제공장에서 보조로 일하며 저임금에 배고팠던 이들의 목소리부터 최근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의 삶까지. 현 정부의 '기업 프렌들리'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나도 촛불시위에 '적극적으로' 나갔다. 이 지침에 따르면 기금의 '반환은 물론 관련된 일체의 책임'을 져야한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작가의 수입이라는 게 너무도 보잘 것이 없으니 말이다. 2000만 원짜리 전세금이라도 당장 빼야 하는데, 그곳은 아내의 명의이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다. 집필실이라도 있으면 어찌 해보겠는데 아직 돈이 여의치 않아 이곳저곳 얹혀 글을 쓰고 있으니 안타깝다. 승용차라도 있으면 팔겠지만 그도 없어 늘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으니, 정말 답답하다.

 

작가들은 '알량한 양심'(작가회의도 그래서 3400만원을 거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때문에라도 빚지고는 못산다. 나는 예술위에서 받은 1200만원 기금을 돌려주고 싶다. 하지만 당장 돈이 없다. 내 처지에 맞게 10원짜리로 1원짜리로 차곡차곡 모아 청와대 앞으로 가련다. 나 홀로 안 되면 그 옛날 짱돌을 들었던 벗들과 함께 손에 손에 1원짜리를 들고 청와대로 달려가련다(그럼 1200만 명인가?) 그때 놀라지 마시라. 촛불 때처럼 인왕산에 올라 '아침이슬' 부르시며 눈물도 흘리지 마시라. 단지 빚을 갚는 일이니. 그날, 이번에 확인서를 쓰지 않은 무뢰함의 빚도 반드시 갚는 '저항의 글쓰기' 멈추지 않으련다.

 

이번 확인서 사건은 무뎌진 작가정신을 깨우쳐주었다. 작가회의의 전신은 군사정권에 맞선 자유실천문인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다. 그 시절의 정신을 잊지 말라는 채찍으로 알고 작가들은 '저항의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태그:#저항의 글쓰기, #작가회의, #한국문화예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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