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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농사일을 많이 거들지는 못했습니다. 부모가 원치 않기도 했지만, 중고등학교를 인천 시내로 다니면서 새벽에 집을 나가 밤늦게 돌아오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정규수업이 끝난 후 밤늦게까지 학생들을 교실에 잡아놓고 자율학습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주말이나 모내기-추수철, 방학에나 시간이 날 때 동생과 함께 논밭에 나가 부모를 잠시 도울 수 있었습니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때는 고사리손으로 후리지아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의 무거운 거적을 부모 대신 덮거나, 하루종일 허리도 펴지 못하고 부모가 힘들게 꺾어온 꽃을 포장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입학 졸업시즌에 흔히 볼 수 있는 그 샛노란 꽃을.

 

 

지금은 가벼운 솜과 차광망을 이용해 거적을 만들지만, 예전에는 볏짚을 기계에 넣고 양탄자처럼 엮어 그것을 비닐하우스 철봉에 일일이 줄로 매달아 잡아 당겨 덮었다 벗겼다를 아침저녁으로 해야 했습니다. 비닐하우스 거적 덮는 일은 애어른 모두에게 고된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안방에서 꽃 숫자를 묵묵히 세어 묶는 일은 양호했습니다. 새벽에 서울 강남의 꽃시장으로 마을에서 꽃차(트럭)가 나가기까지 일을 해야 해, 졸음이 밀려와 동생과 먼저 잠들기 일쑤였지만 말입니다. 추수를 끝낸 뒤에도 겨우내 봄이 오기까지 꽃농사 때문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쉴새없이 일한 농부들과 함께 오랜 세월을 버텨온 비닐하우스도 세상 풍파에 못 이겨 낡고 녹이 슬어 버렸습니다.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어머니처럼 비닐하우스도 지난 폭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비닐하우스가 3월의 큰눈을 맞고 눈물을 흘립니다. 눈이 그친 뒤 쌀쌀한 바깥공기는 비닐하우스 안의 뜨거운 기운과 만나 눈부신 눈물을 맺습니다. 그리고 어린 고추모를 옮겨심는 노부부의 등위로 톡톡 떨어져 내립니다. 영롱한 비닐하우스의 눈물은 농부의 땀방울이 되어 흘러 내립니다. 내 가슴 한 구석에도 애잔한 눈물이 맺힙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다음뷰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비닐하우스, #땀방울, #눈물,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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