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남양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도문. 왼편으로 보이는 다리 건너편이 남양시이며, 다리 중간에 붉은색과 하늘색으로 국경선을 표시하고 있다.
▲ 중국-조선 국경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남양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도문. 왼편으로 보이는 다리 건너편이 남양시이며, 다리 중간에 붉은색과 하늘색으로 국경선을 표시하고 있다.
ⓒ 김동민

관련사진보기


2007년 1월 중국을 여행할 때 도문(圖們)을 찾아간 적이 있다. 간도협약을 논할 때 '백두산 정계비'에 새겨진 토문강(土門江)이 도문강(圖們江)이라고 중국 측이 주장하는(중국 발음으로 '투먼'으로 같다) 바로 그 도문강(두만강)의 최북단 지점에 위치한 도시다. 북한의 남양(南陽)과 마주하고 있는 접경지역이다.

당시 조선 동포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관광객들을 상대로 북한 돈을 기념품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북한 돈이 그만큼 가치가 떨어져 있다는 의미였다. 평양에서는 보지 못했던 북한 돈을 그곳에서 보았다.

북한은 작년 11월 30일 화폐개혁(교환)을 단행했다. 남한의 언론들은 바로 부정적인 시각의 추측 보도를 쏟아냈다. 그리고 2월 11일 이후 다시 추측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실패했으며, 그 후과로 대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화폐개혁의 실패로 아사자들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중이고, 주민들의 불만이 거의 폭동 수준까지 달했으며 책임자들도 경질되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불신도 고조되어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갖은 묘수를 부리고 있다는 따위의 기사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사들의 출처는 무엇일까? 객관적 사실로 믿을 만한 정보원을 갖고 있을까?

<시사IN> 1월 9일자 121호에 실린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의 인터뷰 기사 <"북한 화폐개혁 보도 너무 엉터리다">를 보면 해답이 보인다. 박 사장은 엉터리 보도의 출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불만 세력의 움직임이 있다면 평양이 중요하다. 북한은 평양공화국이라 할 만큼 모든 게 평양 중심이다. 외신은 평양 이외 국경 지방에서 중국을 오가는 북한 주민들에게 들었다고 출처를 밝히고 있다. 최근 외신과 한국 언론은 중국 국경 지역에 가서 정보 브로커들로부터 '북한 소식'을 돈으로 산다. 북·중 국경지역에서는 중국제 휴대전화기가 터지니까, 큰돈을 주고 국경 근방 북한 주민을 매수해 전화기를 들려 보낸 뒤 주기적으로 휴대전화로 소식을 받는 것이다. 문제는 정보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그럴듯하고 쇼킹한 말을 보내줘야만 돈을 많이 준다는 생리를 알기 때문에 엉터리 소식을 보내고, 언론 보도는 사실 확인은 못한 채 그대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소식은 신빙성이 없다고 보면 된다."

평양시내 보통강호텔과 남포시 소재 평화자동차 공장을 운영하며 수시로(작년에만 14회) 평양을 다니기 때문에 북한의 실상과 남한 언론 보도의 괴리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도문(圖們)이라는 곳도 '북한 소식'을 거래하는 통로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주간 조선> 2월 15일자, 북한의 화폐개혁을 특종 보도했다는 <NK데일리>의 손광주 편집인을 인터뷰한 기사 <"김정일 핵 무장에 우린 휴대폰으로 맞선다">를 보면 박 사장의 말에 수긍이 간다. 이 기사의 관련 내용이다.

"휴대폰 기지국들이 있는 중국과 접한 북한땅 10~20㎞ 지역 내에서는 중국 이동통신사에 가입한 휴대폰이 잘 터진다. 심지어 서울에서도 통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2007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 내부 통신원들이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나와서 데일리NK 특파원들과 접촉, 북한상황을 전달해줬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특파원과 통신원들이 휴대폰 통화로 북한정보를 취합하거나 교차 확인을 한다. 취합된 정보가 서울로 '송고'되면 탈북자 출신 기자들과 데스크가 다시 확인작업을 거치게 된다."

통일뉴스에 기고한 곽동기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의 글 <화폐개혁을 둘러싼 비정상적인 보도행태>에서는 엉터리 보도의 다른 출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이 모든 정보들이 <열린북한방송>과 같은 반북성향 단체의 보도내용을 그대로 짜깁기한 보도라고 주장한다.

<열린북한방송>의 대표 하태경씨는 1990년대 초반 전대협에서 활동한 운동권 출신으로 뉴 라이트로 전향한 사람이다. <열린북한방송>은 2005년 12월에 개국한 대북방송 중계사업자로 2006년에는 미국 국무부가 주는 대북방송지원 예산 가운데 첫 해 분 100만 달러의 공동수혜자 세 곳 가운데 한 곳으로 선정된 기관이다. <NK데일리>도 미국민주주의재단(NED)으로부터 해마다 활동 지원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조선일보가 2월 14일자 기사 <'화폐개혁 수습' 北 비상 대책회의>에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사실상 실패한 화폐개혁의 뒷수습을 위해 지난달 말 강원도 원산 모처에 북한 최고의 경제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며칠간 비상 대책회의를 개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한 기사의 출처는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이다.

이처럼 지극히 편향돼 있는 아마추어 매체들이나 미국의 우경화된 방송이 '진실보도'라는 저널리즘의 원칙을 무시하고 북한의 사정에 대해 부정적으로 쏟아내는 편린들을 선호하는 남한 언론은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데 무슨 의미를 가질까?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가 2월 27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 <北 화폐개혁, 과연 '대혼란' 겪어왔나?>를 보아도 진상의 핵심에 접근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꼬끼리 다리 만지기'식의 추측보도가 남발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화폐개혁 이후 평양이 물자 공급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정창현 교수의 진단에 따르면, "화폐개혁 이후 북한 주민의 생활경제에 일부 혼선이 빗어지고 있지만 '대혼란'을 언급할 정도는 아니며, 화폐개혁을 하면서 달성하고자 했던 북한 당국의 일부 목표는 일정한 성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 북한의 한 관계자가 말했다는 "화폐개혁 이후 나타난 부정적 요소에 대해 남측에서 과도하게 부풀리고 있는데, 공화국(북)은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화폐가 차지하는 비중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는 부분도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내재적 비판의 접근이 절실한 시점이기도 하다.


태그:#북한, #화폐개혁, #언론보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