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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두렁 야구를 아시나요. 70년대만 하더라도 시골에서는 야구나 축구는 운동장이 아닌 밭이나 논, 아니면 모래밭에서 주로 했지요.

 

곡식이 심어져 있는 여름엔 팬티만 입고 종일 모래밭에서 공을 차고 놀았습니다. 여름 한낮 땡볕이 온몸을 달구어도 우리들의 놀이는 그칠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공을 차고 던지다 더위에 헐떡이면 물속으로 풍덩 빠져 자맥질 한 번 하고 나오면 그만이었지요. 목이 마르면 모래 웅덩이 두 개를 파서 물길을 내고 맑게 솟은 물을 시원하게 마시기도 했고요.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 수확이 끝나면 논밭은 운동장으로 변하지요.

 

농촌에서 수확마당이 끝난 논은 아이들의 놀이터지요. 놀이라고 해봤자 특별한 게 없었지만 그래도 신나게 뛰고 뒹굴다 보면 하루 해가 금방 서산에 지곤 했습니다. 엄마들이 목 터지게 밥 먹으라고 열 번은 불러야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으로 들어갔으니까요.

 

마른 논바닥은 야구하기에 안성맞춤이지요. 종종 타자가 때린 공이 울퉁불퉁한 논바닥에 지멋대로 튀어나가는 것도 논바닥 야구의 별미라면 별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땐 승부에 집착하기보단 놀이 자체를 즐겼기에 그런 일로 화를 내기보단 함께 웃으며 신나했지요.

 

며칠 전 그 즐겁고 가물거리던 추억을 즐기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 6학년인 조카아이들과 아들 녀석이 논바닥에서 야구를 하기에 잠시 끼어들었습니다.

 

"야! 나도 좀 끼워 줘라."

"큰 아빠 야구 할 줄 알아요?"

 

함께 야구 하자는 말에 4학년짜리 조카 녀석이 대뜸 하는 소리가 야구할 줄 아느냐는 소리입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논바닥에서 논 사람한테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뿐인가요. 학창시절엔 실내 야구장에서 공을 뻥뻥 치던 실력인데 말이죠. 하기야 녀석이 큰아빠 야구하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봤으니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뻥뻥 큰소리 쳤죠.

 

"이래 봐도 한 야구 했다. 자 한 번 던져봐."

 

근데 이게 영 아닙니다. 왼쪽 어깨가 고장 나 한 팔로 하긴 해도 계속 헛방망이질만 했습니다. 어쩌다 한 방 맞으면 아이들은 '와! 잘 한다.' 하고 감탄을 하지만 쑥스러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지요.

 

그렇게 치고 던지며 한참 야구를 하고 있는데 지천명을 바라보는 형이 끼어듭니다. 옛날 생각이 난 거지요. 그런데 형 역시 투수의 폼은 그럴듯한데 공의 궤적은 영 아닙니다. 오히려 공에 맞춰 아들 녀석과 조카 녀석이 툭툭 잘도 칩니다. 그러면서 아들과 조카 녀석이 놀립니다.

 

"에이! 큰 아빠 뭐야. 우리보다 못하잖아."

 

이에 형은 그냥 껄껄 웃어버리고는 그만 하겠다고 들어가 버립니다. 그 빈자리는 6학년인 보미가 채웁니다. 여학생이라고 예쁜 척 야구를 합니다. 그런 모습이 못마땅한지 남자 녀석들이 제대로 좀 하라고 짜증을 부립니다. 그러나 말거나 보미는 포수도 하고 타자도 합니다. 타자를 하며 공을 한 번 때리자 홈런을 친 것 마냥 껑충껑충 뛰며 좋아합니다.

 

한때는 야구나 축구를 하려고 하면 편을 갈라도 인원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지금 농촌에서 아이들을 찾아보려면 눈을 수십 번 비벼야 합니다. 지금 조카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올 입학생은 두 명뿐이라 합니다. 예전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우리 동네에서만 50여 명이 넘은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두 조카 아이 뿐입니다. 이젠 전설 같은 이야기지요.

 

사람이 없는 농촌은 생기가 없습니다. 아니 아이들이 사라진 고향은 항상 적막합니다. 모처럼 자신이 태어나고 놀던 고향에 온 사람들은 포근함보단 오히려 쓸쓸함을 안고 삶터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라고 노래하던 시인 정지용의 한숨은 고향을 잃어버린 모든 사람의 한숨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동생네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고 문자를 보내 왔습니다. 송아지 사진과 함께 말입니다. 동생이 소를 키우면서 처음으로 얻은 송아지입니다. 앞으로도 세 마리의 엄마소가 새끼를 더 낳을 거라고 합니다. 며칠 있다 아이들이랑 송아지 보러 가야 합니다. 가서 야구 한 판 더 신나게 하고요.

 


태그:#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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