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요일(1월 31일) 아침, 어째 날이 찌뿌듯하다. 꼭 눈이 올 날씨다. 이런 날은 그냥 집 안에 틀어박혀 김치 부침개나 부쳐 먹는 게 제격이다. 공연히 집 밖을 나섰다가 물에 빠진 생쥐꼴 되기 십상이다. 지난 주 제주도여행을 다녀온 후로 몸도 무겁다. 제주도 있는 3일 동안에 도보여행, 자전거여행, 한라산 등반을 한꺼번에 해치웠더니, 몸뚱이가 제 스스로 알아서 이제 그만 좀 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날 웬만하면 그렇게 온종일 집 안에서 뒹굴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창 밖 날씨가 점점 더 밝아지는 게 아닌가? 그러자니 또 현관에 세워둔 자전거가 자꾸 눈에 밟혔다. 날더러 어쩌라고…. 해가 뜨려나 창밖을 살피다, 혹시나 해서 일기예보를 뒤져 봤다. 일기예보에 비나 눈이 온다거나 하는 말은 없다. 게다가 근래 보기 드물게 따뜻한 날씨다. 최하 영하 1도, 최고 영상 4도. 자전거 타고 놀기에 적당한 날씨다.

내 경우 이런 날은 아무리 열심히 페달을 밟아도 몸에 거의 땀이 나지 않는다. 땀이 나기는 하지만, 그 땀이 얼굴을 줄줄 타고 흐르거나 겨드랑이를 축축이 적시거나 하는 것이 아니어서 전혀 불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일기예보만 봐서는 조금 구름이 껴 있다 뿐이지, 비나 눈이 오는 것도 아니고 춥다고 느낄만한 날씨도 아니다. 이런 날 멀쩡한 자전거를 집 안에 세워두는 것도 참 못할 짓이다.

한강 북쪽 자전거도로. 올림픽대교 가는 방향의 버드나무길. 에돌아가는 일 없이 구리시민한강공원과 곧장 연결된다.
 한강 북쪽 자전거도로. 올림픽대교 가는 방향의 버드나무길. 에돌아가는 일 없이 구리시민한강공원과 곧장 연결된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옛날 강변 풍경이 오롯이 살아 있는 길

자전거를 타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 중에 하나가 양수리다. 그동안 버스나 승용차를 타고는 여러 차례 지나다녀 봤지만, 자전거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지지난 해 자전거 전국일주를 하면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양평을 지나 양수리를 들러온다는 게 그만 양수대교를 올라타면서 그 위를 가로질러 건너뛴 게 전부였다.

그 후로는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길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데다, 서울에서 양수리까지 국도를 달리는 차들이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아침 자전거여행 목적지로 자연스럽게 양수리가 떠올랐다. 몸도 무겁고 마음도 무거운 데다, 감상적인 기분 탓이었을까? 이렇게 칙칙한 날, 양수리는 또 어떤 풍광을 보여줄까 궁금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또 오래간만에 그 옛날 양수리를 오고 가던 날의 추억을 되살려 보고 싶었다.

미음나루 가는 자전거도로에서 바라본 한강. 안개에 싸인 강변이 아름답다.
 미음나루 가는 자전거도로에서 바라본 한강. 안개에 싸인 강변이 아름답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한강 북쪽 자전거도로를 따라가는 길, 한강에 안개가 자욱하다. 강 건너 보이는 사물이 모두 흐릿하다. 잿빛 화선지에 한껏 농도를 낮춘 먹물로 그린 듯이, 보일 듯 말 듯 건너편 강변에 서 있는 나무들이 희미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가슴이 시원하다. 이런 저런 일로 답답했던 가슴이 일시에 툭하고 터져나가는 느낌이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고 하는데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얼음이 두텁다. 성수대교를 지날 때만 해도 얼음 한 조각 남아 있지 않던 수면이, 올림픽대교를 지날 무렵에는 썰매를 지쳐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꽝꽝 얼어붙어 있다. 강 건너 높게 선 아파트들도 점점 자취를 감춘다. 강변 풍경이 오롯이 살아 있다. 서울 시내에서는 강 건너 풍경이 아파트 벽으로 가려지고 둔치는 자동차 도로로 덮인 지 오래다. 예전 강변 풍경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반길 만한 길이다.

자전거를 타고 양수리를 가는 길은 내내 한강을 거슬러 오르는 길이다. 자전거도로는 한강에 바투 붙어 있고, 차도 역시 대부분 강변을 따라 나 있다. 이 길은 그만큼 한강을 따라 이어진 다양한 풍경을 조망하는 데 그만이다. 마치 한강이 어떤 모습인지 한 번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듯, 가슴이 후련할 정도로 장쾌한 길을 이어간다.

왕숙천이 한강과 만나는 곳. 얼핏 천을 건너는 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천을 건너려면 구리시 쪽으로 1km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날 구리한강시민공원을 지날 무렵 잠깐 눈이 내렸다. 때로는 일기예보보다 육감이 더 정확할 때도 있다.
 왕숙천이 한강과 만나는 곳. 얼핏 천을 건너는 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천을 건너려면 구리시 쪽으로 1km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날 구리한강시민공원을 지날 무렵 잠깐 눈이 내렸다. 때로는 일기예보보다 육감이 더 정확할 때도 있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자전거도로 종점' 표시에 속아 곤욕을 치르다

그러나 양수리까지 가는 길에 거쳐 갈 수밖에 없는 차도는 자전거여행자들의 감상을 현실로 되돌린다. 천상의 구름길을 걷다가 느닷없이 지상의 돌투성이 길을 내려 걷는 기분이 이럴까? 이날 자전거를 타고 처음으로 이 차도에 올라선 여행자는 덜덜덜, 거친 노면과 비좁은 갓길에 자전거가 떨리는 건지 아니면 공포심에 제 몸이 떨리는 건지 언뜻 분간을 하지 못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강을 따라 간 자전거 길은 한강구리시민공원을 지나 팔당대교까지 이어진다. 남양주 한강 체육공원(미음나루)를 끝까지 가다 보면, 자전거도로 종점 표시가 나오는데 그 표시를 지나서도 자전거도로는 계속된다. 이날 미처 이 사실을 몰랐던 나는 '종점' 표시를 보고 자전거를 되돌려 내려오는 바람에, 차들과 함께 도로(고산로)를 달리는 곤욕을 치렀다. 정보가 부족했던 탓이다.

미음나루 부근. 날 울린 자전거도로 종점 표지판. 저 위 언덕을 계속 넘어갔어야 하는데 이 앞에서 발을 돌렸다.
 미음나루 부근. 날 울린 자전거도로 종점 표지판. 저 위 언덕을 계속 넘어갔어야 하는데 이 앞에서 발을 돌렸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자전거도로 종점 표시를 지나 비포장길을 좀더 올라가다 보면 산 속에 이런 자전거도로가 나온다. 감춰진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다. (양수리에 다녀온 뒤, 확인차 다시 가서 찍은 사진)
 자전거도로 종점 표시를 지나 비포장길을 좀더 올라가다 보면 산 속에 이런 자전거도로가 나온다. 감춰진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다. (양수리에 다녀온 뒤, 확인차 다시 가서 찍은 사진)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고산로를 달리다 보니 오른쪽으로 남양주한강공원(삼패지구)이 눈에 들어온다. 제대로 길을 찾았다면, 이때쯤 이 공원의 강변 자전거도로를 달려야 한다. 곧 이어 덕소IC다. 그곳을 차들이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국도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팔당구길이든 한강 자전거도로든 좀더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찾고 싶다. 오른쪽으로 샛길이 보인다. 작심하고 그 길로 들어선다. 어디로 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차들이 주는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그 길로 내려서 국도 밑 터널을 빠져 올라오니, 그곳이 덕소다.

덕소IC 부근. 자동차들이 신호등에 걸려 잠시 주춤할 때 달려내려갔다. 위 다리는 미사대교.
 덕소IC 부근. 자동차들이 신호등에 걸려 잠시 주춤할 때 달려내려갔다. 위 다리는 미사대교.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운이 좋았다. 덕소 삼익아파트 밑에 강변 자전거도로가 있다. 강쪽으로 다가가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이 길 역시 강가에 바투 붙어 있다. 원래는 미음나루에서부터 계속 이어진 자전거도로다. 이 길을 계속 달리다 보면, 팔당대교 못 미쳐 풀잎이 우거진 넓은 둔치(한강시민공원 팔당지구)가 나타난다.

그 초지에 예봉산에서 몸을 날린 패러글라이더들이 사뿐히 내려앉고 있다. 우아한 몸짓이다. 한동안 그들의 비행을 올려다 보다 자리를 뜬다. 이 길은 팔당대교 부근에서 끝난다. 자전거로 한가롭게 달릴 수 있는 길은 여기가 끝이다.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도로를 타야 한다. 길 끝에서 360도 돌아 올라가면 6번 국도와 만나게 된다.

이때부터는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 표지판을 따라가면 크게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나중에 다산유적지 입구 삼거리(열차 길 밑)에서 갈림길이 나올 때 좌회전하는 것만 주의하면 된다. 그곳에서 우회전하면 유적지까지 올라가는 언덕길이다.

예봉산 행글라이더 활강장에서 몸을 날린 패러글라이더가 하늘을 날고 있다.
 예봉산 행글라이더 활강장에서 몸을 날린 패러글라이더가 하늘을 날고 있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팔당대교부터는 도로를 타야 한다. 이때부터는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 표지판을 따라가는 게 좋다.
 팔당대교부터는 도로를 타야 한다. 이때부터는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 표지판을 따라가는 게 좋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오 마이 '갓'길, 혜성처럼 나타나는 자전거여행자들

팔당대교에서 얼마간 도로를 달리면, '다산문화의거리' 표지석이 서 있는 삼거리에 도달한다. 이곳이 '팔당길'과 '다산로'가 만나는 지점이다. 팔당길과 다산로는 남양주시가 2007년에 새주소부여사업을 하면서 새로 붙인 이름이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보통 '팔당 구길'로 불린다.

이 지점에서 서울 쪽으로 향한 길이 '팔당길', 양평 쪽을 향한 길이 '다산로'다. 이 도로는 새 국도가 생기기 전에 서울과 양평을 잇던 옛 도로이다. 과거 양평을 오가던 사람들에겐 꽤 많은 추억을 간직한 길이다. 양평에서 군대 생활을 했던 사람들에겐 '악몽의 길'이기도 하다.

다산로. 차가 많이 지나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갓길이 거의 없어 꽤 위험해 보인다.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한다.
 다산로. 차가 많이 지나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갓길이 거의 없어 꽤 위험해 보인다. 조심스럽게 지나가야 한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많은 기억들이 떠오를 법하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이 길 위에서 다른 생각을 떠올리는 건 조금 한가한 얘기다. 추억이니 악몽이니 정신 못 차리고 딴 생각 하다간 '사고'치기 딱 좋다. 무엇보다 내 간을 바짝 졸아붙게 만든 건 '갓길'이다.

다산로 상당 구간에 갓길이 있는지 없는지를 구분하는 일이 무의미한 곳이 많다. 다산로에도 갓길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갓길이 있다 해도 그 한가운데 전봇대가 줄줄이 서 있는 건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중에 남양주시청에 문의를 했더니, 최근 다산로를 정비하면서 전봇대를 지중화하는 것을 계획했지만, 비용 문제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팔당길은 비교적 한가한 편일지 모르나 강변을 따라가는 다산로는 잘 알려진 드라이브 코스 중에 하나여서 주말에는 비교적 차량이 많은 편이다. 게다가 이 길에는 강변 풍경을 보기 위해 걸어서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때로 차와 보행자와 자전거가 한데 뒤섞인다. 그 길 중간에 조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다. 자전거여행자들 사이에 팔당구길은 비교적 자전거 타기 좋은 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길을 처음 가는 자전거여행자로선 선뜻 발을 들여놓기 힘든 길이다.

다산로. 도로표지판까지 길을 막고 서 있다.
 다산로. 도로표지판까지 길을 막고 서 있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다산로는 구 양수대교까지 계속 된다. 이 길 대부분 갓길이 충분하지 않다. 주의가 필요하다. 갓길이 있다 해도 이 길 대부분에 얼어붙은 눈이 덮여 있는 경우가 많아, 얼음 조각 피하랴 차 피하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그래도 내가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었던 건, 같은 길을 가던 다른 여행자들 덕분이다. 갓길이 제대로 확보되어 있지 않은 길을 앞에 두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으면, 어디선가 혜성처럼 나타난 여행자들이 그 길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달려가곤 했다. '날 잘 봐, 바로 이렇게 지나가야 하는 거야' 엉덩이를 씰룩이며 앞서 달려가던 그들이 얼마나 듬직해 보이던지.

팔당댐을 지나 언덕이 하나 도사리고 있다. 그 언덕을 오르는 길 한 쪽 공터에서 두 명의 자전거여행자들을 만났다. 그 두 사람을 만나 그때까지 다산로를 달려오면서 겪어야 했던 고충을 털어놓았다. '갓길이 없다' '너무 무섭다' '조심해서 가야 한다'고 했더니, 두 분 허허허 천연덕스럽게 웃는다. '그래도 이 길은 양반이다' '도로가 넓어 위험하지 않다' '그나마 차량이 적다'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순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난 속으로 이곳은 길만 무서운 게 아니라 그 길을 가는 사람들까지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강호엔 정말 고수들이 차고도 넘친다. 내가 이미 하수란 걸 간파한 그들, 내게 양수리까지 가는 길을 자세히 가르쳐준다. 그들의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된 건 물론이다. 그곳에서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복잡한 도로 위에서 또 혼자 길을 잃고 헤맸을 게 뻔하다.

정약용선생 유적지 입구 삼거리에서 바라본 한강 풍경.
 정약용선생 유적지 입구 삼거리에서 바라본 한강 풍경.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다산 유적지 삼거리 입구에서 좌회전 한 후 계속 달리다 보면 이런 표지판이 나온다. 조안면으로 방향을 튼다. 오른쪽 언덕을 올가가면, 신 양수대교다.
 다산 유적지 삼거리 입구에서 좌회전 한 후 계속 달리다 보면 이런 표지판이 나온다. 조안면으로 방향을 튼다. 오른쪽 언덕을 올가가면, 신 양수대교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구 양수대교, 살아서 무사히 건너갈 수 있을까?

양수리 가는 길의 절정은 '구 양수대교'에 있었다. 다산유적지에 올라갔다 내려와 조안면사무소 앞을 지날 때는 나도 이제 이 길에 이골이 난다 싶었다. '뭐 그냥 저냥 달릴 만하네' 건방을 떨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눈앞에 구 양수대교가 나타나더니 달리 대처할 방법도 없이 다리 위로 쑥 올라섰다. 잠시 긴장을 풀고 딴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난관에 허둥댔다.

그 다리 위 갓길에는 하얀 선 하나가 가까스로 눈에 들어올 뿐이다. 그나마 그 하얀 선도 군데군데 검게 얼어붙은 눈으로 덮여 있다. 자전거를 되돌리거나 멈춰 세울 공간 같은 건 애초 저 멀리 사라진 뒤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양수대교를 피한다는 게, 아예 갓길조차 없는 길을 건너게 된 것이다. 이에 비해 양수대교는 갓길이 경운기 한 대는 너끈히 지나다닐 만큼 넓다.

구 양수대교를 건넌 뒤, 뒤를 돌아다본 광경. 지금 다시 봐도 아슬아슬하다. 풍경은 왜 또 그렇게 을씨년스럽던지.
 구 양수대교를 건넌 뒤, 뒤를 돌아다본 광경. 지금 다시 봐도 아슬아슬하다. 풍경은 왜 또 그렇게 을씨년스럽던지.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바로 다리 오른쪽 아래로 얼음으로 덮인 하얀 강이 내려다보인다. 아찔하다. 까딱 잘못하면 강 위로 곤두박질칠 상황이다. 바로 왼쪽으로는 뒤에서 설설설 기어온 차들이 스치듯이 지나쳐서는 바로 앞에서 내빼듯이 달아나 버린다. 반대편 차선으로는 나들이를 다녀오는 차들이 정체를 이루며 길게 줄을 이어 늘어서 있다. 그 순간 그 차들이 모두 내가 벌이는 아슬아슬한 묘기를 구경하기 위해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이 다리를 살아서 무사히 건너가야 한다는 생각과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볼썽사나운 일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들락날락 하는 사이, 겨우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 길가에 멈춰 섰다. 그 사이 도대체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다보았다. 거기에 버려진 듯한 초소와, 난간이 내 허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낡은 다리가 검은 하늘 아래 을씨년스런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다리도 조만간 사라질 모양이다. 다리 입구 한쪽에 다리 재가설을 알리는 공사 개요판이 서 있다. 어쩌면 내게는 이 날 있었던 일이, 이 다리와 관련한 마지막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그러자니 또 그 다리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애틋해진다. '잘 가라, 다리야. 그동안 사람들의 다리가 되어 주느라 고생 많았다. 그렇게 좋은 기억은 아니다만, 내 죽을 때까지 너를 잊지 않으마.'

두물머리, 400년 묵은 느티나무.
 두물머리, 400년 묵은 느티나무.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놀란 가슴 반, 짠한 마음 반. 울렁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돌아서니 그곳이 바로 양수리다. 사거리 한 쪽에 '두물머리' 표지판이 서 있다. 그 표지판이 왜 그렇게 반갑던지, 가슴이 또 울컥한다. 보는 사람만 없다면, 그 앞에서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다. 그때부터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성취감, 이제는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행복했다. 이날 아침 찌뿌듯했던 가슴이 뿌듯한 마음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 다음부터는, '두물머리'까지 들어가는 동안 내내 고향집 찾아가듯 마음이 편안했다.

해가 잠깐 비쳤다 사라지는 두물머리.
 해가 잠깐 비쳤다 사라지는 두물머리.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혹시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봐 덧붙인다. 두물머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두물머리는 '북'과 '남'이 만나 비로소 하나가 되는 곳이다. 북한강은 금강산 부근에서 발원한다.

이날 여행은 오전 10시에 길음동을 떠나, 오후 4시 무렵 양수리에 도착했다. 속도계에 찍힌 거리는 70km가 조금 넘는다. 8단 미니벨로를 타고 가느라 오르막에서 꽤 고전했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보다 배는 더 힘이 드는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는 양수리에서 청량리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접이식 미니벨로라 버스를 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근처 가까운 양수역(중앙선 전철)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야 한다.

가는 길이 조금 복잡한 편이다. 자전거를 타고 처음 가는 길이라 더 헤맬 수밖에 없었다. 그 길을 어떻게 다녀왔는지, 말로 설명하려니 무척 까다롭다. 내가 갔던 길이 '최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저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태그:#양수리, #자전거여행, #자전거도로, #두물머리, #한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