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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의 작은공간에는 큰 세상이 담겨져 있다. 우표는 단순히 편지를 주고 받기 위한 지불수단이 아니라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70~80년대에 초중시절을 보낸 이라면 한두 번쯤 우표 모으기를 해본 기억이 새록새록할 것이다. 다방, 음악실, 레스토랑 등에서 증정하는 성냥 수집과 함께 우표수집은 가히 전 국민의 취미생활이었다고 할 만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면 치밀한 계산하에 자체적으로 만든 '대통령우표 1장에 기념우표 몇장'하는 식으로 일정한 룰에 따라 우표를 교환했고, 우표책 도난은 학교에서 심심치않게 일어나는 사건이었다. 나 또한 두번이나 우표책 도난을 경험하기도 했다.

 

우체국에서 나눠주는 연중 우표발행계획표를 꼭 지니고, 계획표에 올려진 한 달에 한두번 우표 발행일이 돌아오면 전날부터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우체국 앞에는 새벽부터 우표를 먼저 선점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표를 많이 발행하는데도 구하려는 전지, 시트와 명판(4장묶음)은 왜 그리 부족했던지... 당시에는 이름도 생소한 나라의 대통령이 왔다 갔는지도 잘 모르는 정상회담기념우표, 대통령 취임기념우표, 대통령 해외순방 기념우표 등 갖가지 이유로 기념우표가 쏟아져 나왔다.

 

우표가 통신수단뿐만 아니라 역사의 증인으로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만,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그야말로 우표수집의 봄날이었다.

 

우표가 발행된 다음날에는 새벽에 줄을 서지 못한 죄(?)로 수업중 쉬는 시간에 애장하고 있는 우표들과 새 우표를 눈물을 머금고 바꾸거나 근처 우표상(우표전문점)을 찾아야만 했던 그 시절. 특히, 우표에 단기연호가 새겨졌거나 액면가 단위가 '환'이나 '전'으로 끝나는 우표를 손에 쥐는 날은, 세상의 모든것을 다 얻은듯한 행복감에 빠지던 그런 시절이었다. 몇 날 며칠을 굶고 그것만 들여다봐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당시 해외건설의 붐을 타고, 외국에 친척이 근로자로 나가있는 경우라면 최고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삐그덕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온 우체부 아저씨가 영어로 씌여진 내 이름이 적힌 편지를 건넸을 때의 반가움과 설렘. 편지봉투에서 물건너온 귀한 우표의 손상을 최소화하여 떼어내는 노하우 터득은 기본. 편지내용이 무엇인지는 뒷전이고 우표만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새벽줄서기의 진풍경은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점점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른바 '통신판매'라는 제도의 도입으로, 우체국에 일정금액을 예치한 후 통신판매신청서만 제출하면 우표발행일에 맞춰 원하는 우표를 집으로 배달해주는 제도가 생기면서부터이다.

 

이후, 체신부(현 정보통신부)에서 판매하는 '연도별우표책'이나 '기념우표책'등을 통해 연도별로 행사별로 우표를 한꺼번에 구입할 수 있게 되었고, 인터넷의 발달로 우표의 사용이 많이 줄어든후 열기가 시들고 말았다.

 

한때, 일본정부의 발행중단 요청으로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사이버 전쟁'까지 촉발시켰던 독도 기념우표에 구매열기로 우체국 새벽줄서기가 재연되기도 했지만, 요즘은 다른 취미가 많아 우표수집에만 관심을 두기에는 벅찬일로 여기고 만다.

 

"우표에서 배운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많다" - 미국 제32대 루즈벨트 대통령

 

이제 20여년간 모았던 우표책을 아들에게 물려주려 한다. 어느새 내가 우표를 모으기 시작한 그 나이가 된 아들이 잘 관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지만, 우표수집을 통해 주어진 일에 몰두하고 계통적으로 정리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이 쏟은 노력과 정성은 최고의 가치임을 배웠으면 한다.

 


태그:#우표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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