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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여성들은 결혼을 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이름이 없어진다고 한다. 남편에게선 "여보", 아이들에게선 "엄마", 시댁으로부터는 "며늘아".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여성이 호칭이 아닌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과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짐에 따라 많이 완화되어가고 추세지만, 여전히 여성들이 이름으로 기억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흘러야 될 듯하다.

나직하여 땅과 잘 어울린다.
▲ 박경리 선생 봉분 나직하여 땅과 잘 어울린다.
ⓒ 정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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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192610월28일~2008년 5월5일).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고 이름으로 남은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의 나이 24세 때인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납북된 남편 김행도와 생이별 한 후, 슬하에 남은 외동딸 김영주와 모진 세월을 이어갔었다. 그 딸과 결혼한 사위인 김지하 선생의 명성 또한 만만치 않았으니 김지하의 장모 박경리라고 불릴 만도 했건만, 박경리 선생의 이름과 사위 김지하의 이름 순서는 바뀌지 않았던 듯하다.

조금 엇길로 새는 이야기지만 우리 어머니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서방 복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더만..." 천하한량 남편에게서 못 이룬 꿈을 자식에게라도 구하려 했지만, 그 기대에 부응치 못하던 나를 향해 하시던 말씀이었다. 그처럼 선생 또한 남편과 생이별하고 외동딸을 키워서 얻은 사위 또한 그 젊은 시절 대부분을 감옥에 들락거렸으니, 선생의 굽이굽이 굴곡진 삶의 자락마다 남아있는 회환은 얼마나 깊었을꼬?   

다음 지도 캡처
▲ 추모 공원 가는 길 다음 지도 캡처
ⓒ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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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은 1969~1994년까지 25년 동안 한국문학사의 금자탑이랄 수 있는 대하소설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 등 여러 소설을 집필함으로써 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랬던 그가 지난 2008년 마침내 몸을 누이게 된 곳은, 경남 통영 산양 일주도로변 산양읍 신전리 1426번지 내 '박경리 선생 추모공원'. 이곳은 통영 IC에서 내려 통영시청 통영대교를 거쳐서 짧은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공원 초입의 안내판
▲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공원 초입의 안내판
ⓒ 정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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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 공원 가는 길 조그마한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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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초입에 늘어진 소나무
▲ 공원 가는 길 공원 초입에 늘어진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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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약력이 자세히 적혀 있다.
▲ 안내판 선생의 약력이 자세히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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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을 대신하고 있는 항아리
▲ 남기실 말씀이 있으면 방명록을 대신하고 있는 항아리
ⓒ 정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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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 는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아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 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히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 는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아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정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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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 산다는 것은 / 박경리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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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기둥 하나 잡고 내 반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 아무도 무엇으로도 고삐를 풀어주지 않았고 풀 수도 없었네 영광이라고도 하고 사명이라고도 했지만 진정 내겐 그런 것 없었고 스치고 부딪치고 아프기만 했지 그래, 글기둥 하나 붙들고 여까지 왔네
▲ 눈먼 말 / 박경리 글기둥 하나 잡고 내 반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 아무도 무엇으로도 고삐를 풀어주지 않았고 풀 수도 없었네 영광이라고도 하고 사명이라고도 했지만 진정 내겐 그런 것 없었고 스치고 부딪치고 아프기만 했지 그래, 글기둥 하나 붙들고 여까지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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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은 다 아름답습니다. 생명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능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능동적인 것이 곧 생명 아니겠습니까. 세상은 물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피동적입니다. 피동적인 것은 물질의 속성이요, 능동적인 것은 생명의 속성입니다.
▲ 박경리 / 마지막 산문 중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은 다 아름답습니다. 생명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능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능동적인 것이 곧 생명 아니겠습니까. 세상은 물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피동적입니다. 피동적인 것은 물질의 속성이요, 능동적인 것은 생명의 속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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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상업적인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간혹 상업적인 사고를 가진 문학인들을 볼 수 있는데, 진정한 문학은 결코 상업이 될 수 없습니다. 문학은 추상적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컵 같은 것이 아닙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정신의 산물을 가지고 어떻게 상업적인 계산을 한단 말입니까?
▲ 박경리 / 마지막 산문 중에서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상업적인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간혹 상업적인 사고를 가진 문학인들을 볼 수 있는데, 진정한 문학은 결코 상업이 될 수 없습니다. 문학은 추상적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컵 같은 것이 아닙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정신의 산물을 가지고 어떻게 상업적인 계산을 한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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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봉분을 뒤로 하고 바라보는 통영 산양리 앞바다
▲ 산양리 앞바다 선생의 봉분을 뒤로 하고 바라보는 통영 산양리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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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초입에 차를 세우고 10여 분을 팍팍한 길을 따라 걸으면 선생의 묘역이다. 간간이 서 있는 그의 시비는, 글씨체나 글자의 크기를 과장하지 않고 적절하게 배치하여 보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봉분도 그저 평범하게 나직해서 땅과 잘 어울리게 해 두었으므로, 그 풍경에서 특별한 문인 박경리가 아닌,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역시 누운 이가 대단한 분이라고 경건을 강요를 하는 일부 묘역과는 달리 추모하는 자들을 잘 배려하는 곳이었다. 거기에 가시거든 선생의 묘소를 뒤로하여 산양리 앞바다를 잘 느껴보시라. 뭔가 물컹거림 같은 것이 잡힐 지도 모른다.


태그:#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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