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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적봉에 해가 떠오르고 있다.
 향적봉에 해가 떠오르고 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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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적봉은 덕유산의 최고봉으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다음으로 높이가 1614m입니다. 올해 1월 18일 74세된 어머님 생신을 향적봉 정상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맞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눈으로 하얗게 덮인 덕유산의 절경을 보여드리기 위해 야심차게 겨울 산행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제안을 했고 가족들은 흔쾌히 응답했죠. 어머니께서는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셨기 때문에 눈 쌓인 산을 등반하신다는 것이 무리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고심하고 망설이기도 했지만 걱정도 잠시 선뜻 동조를 하셨답니다. 어머니를 걱정하셨던 아버님께서는 어머니의 용기에 기쁜 마음으로 설산 등반계획을 세우셨고 초등학교 때 소풍가기 전날 밤 들뜬 마음으로 밤잠을 설쳤던 시절처럼 며칠을 설레셨다고 합니다. 부모님과 손위형님과 우리부부, 동생부부 7명이 향적봉으로 향했습니다.

칠순이 넘은 부모와 형님, 동생내외와 향적봉 산행을 하다.
 칠순이 넘은 부모와 형님, 동생내외와 향적봉 산행을 하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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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적봉에서 일출을 보려면 이른 새벽에 등반을 해야 하기에 연로하신 부모님에게는 무리가 되어 전날 무주리조트에 설치되어 있는 곤돌라를 이용하여 설천봉에서 내린 다음 향적봉까지 600m 정도 도보로 이동한 뒤 향적봉에 일몰 전에 도착하여 향적봉 낙조를 보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 향적봉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일출까지도 보는 코스입니다.

향적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대피소에서 1박한 뒤 다음날 다시 향적봉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작년 이맘 때쯤 일몰과 일출을 담기 위해 다녀갔던 경험을 생각하면 대피소에서 1박을 한다는 것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곤혹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야말로 대피소이기에 좁은 공간에서 40여 명이 자야 합니다. 장소가 협소하고 비좁아 칼잠을 자야 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현지 실정을 부모님께 사전에 말씀드렸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키셨지요. 향적봉대피소는 전화로 사전 예약을 통해야만 숙박을 할 수 있기에 사전에 예약을 해두었습니다.

날씨가 누그러진탓에 향적봉에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날씨가 누그러진탓에 향적봉에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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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적봉 정상에는 날씨가 누그러진 탓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걱정되었던 어머니는 문제없이 향적봉에서 대피소로 내려오셨습니다. 가파른 눈길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내려오는 사람이 한 줄로 이동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좁은 길에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두 줄로 올라오는 바람에 내려오시던 아버님이 피하다 눈길에 미끄러져 아버님께서는 한번 구르셨다고 합니다.

먼저 내려왔던 저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대피소에 짐을 정리한 후 중봉까지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대피소에서 1km 정도를 걸어가면 중봉(1594m)입니다. 온 가족이 잠깐 휴식을 취한 뒤 중봉으로 향합니다.

구상나무사이로 해가 지기 시작한다.
 구상나무사이로 해가 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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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 사이로 노을이 붉게 타고 있다.
 구상나무 사이로 노을이 붉게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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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사이로 아름다운 노을이 붉게 타고 있다.
 주목 사이로 아름다운 노을이 붉게 타고 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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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으로 가는 길에 주목에 수북이 쌓인 눈이 황홀하게 아름답습니다. 구상나무 사이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살이 비쳐 황금빛으로 반사됩니다. 맹추위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했던 동장군은 잠시 소강 상태인지라 부모님에게는 다행입니다.

서울에서 교직생활을 하셨던 아버님이 정년퇴임 후 시골에 정착하신 다음 눈 구경은 많이 하셨지만 이곳 설경을 남다른 멋이 있다며 비록 넘어지는 불상사가 있었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하십니다. 중봉에서 돌아오는 길에 미리 봐두었던 일몰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저는 기다리고 부모님과 가족들은 대피소로 향합니다. 

향적봉 대피소에서 간단하게 취사를 할 수 있는 곳에서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는 건배를 하고 있다.
 향적봉 대피소에서 간단하게 취사를 할 수 있는 곳에서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는 건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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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의 동침도 아름다운 추억이다

취사를 할수 있는 곳에서 간단한 요기를 위해 김치찌개를 끓입니다. 사진을 찍느라 배고픈 줄 몰랐던 저는 취사실로 들어선 순간 냄새가 뇌를 자극합니다. 설천봉에서 중봉까지 다녀온지라 허기진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나며 혀에는 침이 고입니다. 얼추 찌개가 익어가자 생신을 맞으신 어머니를 위해 준비한 소주로 간단하게 건배를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비록 서서 식사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색다른 생일 파티를 위해 준비해준 자식들에게 고맙다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고 하십니다.

대피소에서는 여러 사람이 사용하기에 서로에게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9시가 되면 소등을 합니다. 강제로 산장지기가 불을 끄는 것이지요. 이미 다른 일행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날이 셀 때까지 잠과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박자를 맞춰 정답게 코를 고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천장이 무너질 듯 코를 고는 사람, 적과의 동침이 시작됩니다.

향적봉 대피소가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부모님과 함께 이곳에서 좋은 추억을 쌓고 있다.
 향적봉 대피소가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부모님과 함께 이곳에서 좋은 추억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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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모를 산새가 다가와 아침인사를 합니다.
 이름모를 산새가 다가와 아침인사를 합니다.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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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가 넘어야 잠을 청하는 사람들에게는 9시에 소등을 하여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잠을 청해야하는 것은 참기 힘든 고문입니다. 하지만 눈길을 산행한 탓에 몸은 지쳤고 저녁식사 때 한잔한 알코올 덕분에 몇 번 뒤척이다 잠이 듭니다. 불편한 잠자리는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지만 아침은 찾아옵니다.

부모님과 함께 힘차게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경인년 한해를 무사안녕을 바래보지만 날씨가 흐려 구름에 가린 채 한참만에야 붉은 해가 산등성이를 뚫고 올라옵니다. 붉은 여명과 함께 떠오르는 해를 보며 가족 건강을 기원해봅니다. 이른 아침 이름모를 산새가 반갑게 인사합니다.

향적봉대피소에서 부모님과 형님, 동생내외
 향적봉대피소에서 부모님과 형님, 동생내외
ⓒ 조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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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돌라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아버님께서 한 말씀 하십니다.

"겨울산행은 나이도 있고 건강도 허락하질 않아 이제는 끝났구나 생각했는데 너희들 덕분에 정말 뜻 깊은 산행도 하고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특히 너희 어머니 걱정이 되어 더더욱 겨울 산은 생각도 못했었단다. 이런 여행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단지 걱정이 되는 것은 너희들에게 우리가 신경 쓰이게 하지는 안했었는지 염려가 되긴 하는구나!"

"별 말씀을요, 아버님이 행복하셨다니 기쁩니다. 진즉에 이런 여행 계획을 생각지 못했던 저희가 죄송할 따름이죠."

어머니 생신을 맞아 부모님과 함께 1박2일을 한 덕유산 산행은 우리 가족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향적봉대피소 전화 063-322-1614).
정원이 40명인 소규모 대피소이므로 예약을 서두르는 것이 좋습니다.
1박 성수기 9000원 비수기 7,000원. 대여료 침낭 2,000원, 담요 1,000원. 내부 난방을 하므로 침낭 하나면 견딜 만합니다.



태그:#덕유산향적봉, #향적봉대피소, #주목, #구상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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