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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뚫고 하이킥> 해리가 외치는 '빵꾸똥꾸'에 속 시원~하신 적 있으시죠? 길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 우왕좌왕 지하철 우측통행, 예쁜 여자가 능력 있다고 믿는 사람들 때문에 목구멍까지 차오른 '빵꾸똥꾸' 외침을 참느라 힘드셨다고요? 2010년 새해,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빵꾸똥꾸'들을 <오마이뉴스> 11기 인턴기자들이 모아봤습니다. 여러분을 대신해 속시원히 외쳐드리겠습니다. "야, 이 빵꾸똥꾸야!!!!!!!!!!!" [편집자말]
취업준비생 송유미(25, 가명)씨는 통통한 편이다. 성공적으로 끝난 적은 별로 없지만, 유미씨는 항상 다이어트를 시도한다. 여름에는 수영장에 다니고 매일 조깅을 하기도 했다. 주로 토마토를 먹으면서 음식을 조절하는 '토마토 다이어트'가 그나마 살을 빼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방심하는 순간에 예전 몸무게로 다시 돌아갔다. 최근에는 먹고 싶은 고기를 먹으면서도 다이어트 효과가 있다는 '닭가슴살 다이어트'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오래 버티진 못했다.

다이어트는 밑 빠진 독에 계속해 물을 길어 넣듯 긴장을 늦추는 순간 노력의 대가가 증발해버리는 고된 '작업'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여성들은 계속해서 다이어트를 '숙명'으로 여기고 성형, 피부 관리 등 '더 예뻐지기'를 최대 미션으로 삼는다. 아니, 이곳에선 그래야만 한다.

예쁘면 '여자', 안 예쁘면 '그냥 친구'?

화장품 브랜드숍 진열장에 놓여 있는 배우 전지현의 전신 사진
 화장품 브랜드숍 진열장에 놓여 있는 배우 전지현의 전신 사진
ⓒ 권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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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미씨는 일상생활에서 외모에 따른 차별적 '시선'은 물론 차별적 '대우'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사회적 시선으로 봤을 때, 술자리에는 '예쁜' 친구와 , '못난' 친구가 있다고 해요. 알게 모르게 둘에 대한 대우가 달라요. 예쁘면 '여자'로 보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친구'인가 봐요. 한 선배는 '예쁜' 친구는 시간이 늦었다고 택시를 태워 보내면서 챙겨줬지만, 다른 친구에게는 그러지 않았어요. 알아서 집에 가야 해요. 꼭 챙겨주길 바라는 건 아닌데, 외모에 따라서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게 느껴지니까, 그게 싫은 거죠."

유미씨가 느끼기에 외모에 따른 차별적 대우는 경제적 문제로까지 영향을 끼쳤다. 최근 <개그콘서트> '남성인권보장위원회'가 항상 남성이 계산을 하는 문화의 부당성을 재미있게 드러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그 부당한 남성들의 '계산의 희생'으로 인한 '혜택'이 모든 여성에게 고루 전달되진 않는다고 유미씨는 말한다.

"외모가 예쁘면 사달라고 하지 않아도 선배나 다른 남자들이 밥도 사주고 술도 잘 사줘요. '투자'의 개념이랄까요. 남자들은 예쁘지 않은 여자에겐 그렇게 강박적으로 계산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럴 땐 '쿨하게도' 그냥 같은 인간 대 인간이 된다고나 할까…."

이런 식으로 여성과 여성 사이에서는 부익부 빈익빈 같은 '양극화'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돈을 아낄 수 있는 예쁜 여자는 그 돈으로 더 예뻐질 수 있는 여러 수단들을 얻을 수 있죠."

유미씨는 일상생활에서 외모가 한 사람의 자본 역할을 한다는 것이 결코 극단적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했다.

안 예쁘면 예의도 없고 능력도 없는 것?

요즘 길거리에서는 여러 브랜드의 화장품을 함께 진열해 놓은 화장품 가게를 흔히 볼 수 있다.
 요즘 길거리에서는 여러 브랜드의 화장품을 함께 진열해 놓은 화장품 가게를 흔히 볼 수 있다.
ⓒ 권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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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자본이 될' 외모가 부족하다는 것은 인정하고 넘어간다고 해도, 유미씨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말이 있다. "여자가 화장을 하지 않았을 경우 예의가 없다", "뚱뚱한 여자는 게으르고 자기관리를 잘 못하는 사람" 등의 말이 그것. 이 말은 자연스럽고 공공연하게 유통된다.

"취업한 선배가 면접 준비를 하려면 저한테 살부터 빼라고 하더라고요. 그 이유는 날씬해야만 민첩해보여서 일을 잘할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거예요. 아니, '외모'랑 '일하는 능력'이랑 무슨 상관이 있나요?"

결국 예뻐 보이지 않으면 졸지에 '예의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이 된다. 이런 현실은 유미씨가 죽어라 다이어트를 시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그는 체질적으로 자유롭게 음식을 먹어도 쉽게 살이 찌지 않는 친구를 보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몹시 억울하기도 하다.

이런 부조리한, '빵꾸똥꾸' 같은, 미적 기준과 외모지상주의를 한 개인이 극복하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같은 기준으로 '예쁘다', '못났다'를 평가하고, 또 그게 살아가는 데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데, 부당하고 편협한 기준이라고 해서 제가 어쩔 수 있겠어요. 그것보다 내 몸을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게 훨씬 더 빠를 거예요."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없는 개인의 외모지상주의"

유명 브랜드 광고에도 항상 날씬한 여성 모델의 사진이 이용된다
 유명 브랜드 광고에도 항상 날씬한 여성 모델의 사진이 이용된다
ⓒ 권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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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과 광고는 여성의 '더' 예뻐지고 싶은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날씬하고, 눈이 크고, 코가 오똑한 전형적인 미인들이 수많은 광고에 등장한다. '내가 바르는 화장품을 바르고, 내가 마시는 물을 마시고, 내가 먹는 음식을 먹으면 나처럼 예뻐질 수 있어요. 어서 계산해요'라고 여성들의 귓가에 매일 같이 속삭이는 것만 같다.

대학생 최나영(25, 가명)씨는 자신 또한 어쩔 수 없는 '외모지상주의자'라고 말했다. 그는 손담비를 모델로 한 '참소주' 광고를 우리사회의 외모지상주의를 더욱 부채질하는 전형적인 광고 중 하나로 꼽았다.

"예쁘지 않은 여자가 손담비와 똑같은 옷을 입고 앉아있는데, 남자가 소주를 한 잔 마시고 나니 그 여자가 갑자기 손담비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소주를 연거푸 마시는 거죠. 이런 광고들을 보면 아무래도 자극을 많이 받게 되요."

대학원생 권진경(24, 가명)씨는 연예인들의 과도한 성형 시술이 사소한 생활의 일부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방송 또한 일반인들의 성형 욕망을 부추겨 한국을 '성형천국'으로 만든다고 보고 있었다.

"성형이 굳이 필요하지 않는 여성들까지 쇼핑을 하듯이 성형외과로 향하는 현실은 분명히 반성이 필요하다고 봐요."

이처럼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막강한 현실에서 개인이 한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 기준을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 정신분석학과 비평이론을 강의하고 있는 이윤성 경희대 영문학과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외모지상주의를 도덕적으로 비난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개인이 이런 경향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죠. 우리의 경우, 매체들의 공격을 개인이 견뎌내기는 어려워요. 매체들이 하는 게 거의 연예인들 이야기라면 말이에요. 우리가 심해도 너무 심하죠. 외국 대학생들이 연예인에 대해 과연 그렇게 관심이 많을까요?"

'외모지상주의' 버틸 수 있는 '내공'을 키우자

화장품 진열대 위로 송혜교와 이나영의 클로즈업 사진이 걸려있다
 화장품 진열대 위로 송혜교와 이나영의 클로즈업 사진이 걸려있다
ⓒ 권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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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성 교수는 우리사회의 외모에 대한 집착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달리 심하다고 보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외모지상주의에 취약한 이유를 "사회의 현상을 버텨내는 '내공'이 부족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우리의 경우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일에 너무 매달리는 것은 사실이지요. 모든 나라 젊은이들이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의 경우 유달리 심해요. 다른 가치를 생각하고, 그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테크놀로지의 기여로 지금은 수술비만 있으면 누구나 외모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를 거부하고 버틸만한 의지와 내공이 없는 겁니다.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겁니다. 현실적으로 외모를 가꾸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있는 한 말입니다. 이력서 내는 데 사진을 꼭 붙여야 하는 이 나라에서는 말이죠. 외국의 경우, 대학 입학원서에도 사진을 붙이지 않아요. 배우 뽑는 곳 아니면요. 교수 응모하는 이력서에 사진을 붙인다고 생각해요? 외국에서? 아닙니다."

그는 우리가 외모지상주의의 늪에서 헤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건 '무관심'이라고 했다. "좀 무관심해집시다. 능력을 키웁시다!"

만들어진 아름다움, 이 빵꾸똥꾸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아름다움을 재는 잣대가 우리에겐 '단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잣대는 자본과 미디어의 영향으로 만들어졌다. 이것은 외모에 대한 우리의 욕망이 '부추겨진' 욕망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엄격한 '미의 틀'에 고통스럽게 몸을 구겨 넣게 만드는 우리의 외모지상주의는 우리 스스로에게 가혹하다. 이제는 단 하나의 '예쁜' 성역에 의구심을 가지고, 매스미디어의 공격에 '무관심'으로 대처할 수 있는 '내공'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아름다울 수 있기 위해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권지은 기자는 11기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 기자입니다.



태그:#외모지상주의, #다이어트, #성형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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