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9년 1월 7일은 <오마이뉴스>에 내가 올린 기사가 처음 채택된 날이다. 겨울 철거민들과 연대하는 빈민현장활동을 준비하면서 쓴 "추운 겨울 나눔을 실천하는 대학생들"이 오마이뉴스 잉걸 기사로 채택이 되었다. 이렇게 시작해서 쓴 기사가 지금까지 총 72개나 되었다.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 가입한 지는 5년(2004년도에 가입) 지났지만 기사를 쓰기 시작 한 것은 올해부터였다. 시민기자 활동을 처음 한 2009년에 쓴 기사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서 올해 기억에 남는 기사를 소개하고, 기사 뒷얘기에 대해 적어 볼까한다.

"88만원세대에게 동아리는 왕 부담이다"

[체험기] 대학교 개강 첫날 동아리 모집 풍경을 보고

매년 3월이 되면 대학교 분위기는 분주하다. 나 또한 학교에서 인문학회 '카르마'(이하 카르마) 라는 독서 토론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어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서 바빴다. 카르마에서는 신입생들을 모집하기 위해 카르마 활동 사진전, 화장실 홍보지, 벽보, 동물잠옷 입고 유인물 나누어주기, 강의실 방문 홍보(일명 강방) 등 많은 방법을 통해 새내기 회원을 모집하였다.

동아대 인문대 로비 앞에서 카르마 황 모 회원이 호랑이 패션 옷을 입고 홍보를 하고 있다. "막돼 먹은 카르마!"
 동아대 인문대 로비 앞에서 카르마 황 모 회원이 호랑이 패션 옷을 입고 홍보를 하고 있다. "막돼 먹은 카르마!"
ⓒ 배성민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일주일 동안 카르마 모든 회원들이 홍보에 온 힘을 다 쏟았지만, 홍보 하는 것을 보고 가입한 후배들은 아무도 없었다. 신입생들의 분위기에 실망한 카르마 회원들은 이제 홍보를 그만두고 그냥 고학년들끼리의 모임으로 계속 가자 라는 의견이 나왔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 않은 답답함에 나는 <오마이뉴스>에 '88만원세대에게 동아리는 왕 부담이다'라는 기사를 올렸다. 이 기사의 내용은 현재 20대 대학생들은 동아리를 하기 어려운 현실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사의 결말은 이런 어려운 현실을 함께 고민할 후배들을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기사를 쓰고 이틀 후 일어일문학과와 철학과 후배 두 명이 카르마 홍보 부스로 찾아왔다. 대뜸 찾아와서 인터넷에 기사보고 왔다면서 카르마에 가입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정말 기뻤다. 왜냐하면 신입생이 모이지 않아 쓴 푸념의 글이었는데 그 글을 보고 신입생들이 모였으니 말이다. 이후 신입생들이 홍보지를 보고 하나 둘 모이지 시작하여 14명의 신입생 회원을 받았다.

그리고 당시 나의 기사를 보고 찾아왔던 일어일문학과와 철학과 후배 두 명은 2010년 카르마를 이끌어갈 학회장과 총무를 맡게 되었다.

"너 잡혀간 거 아빠한테 비밀로 했다"

부모님은 학생운동하는 '불량 아들'의 든든한 '빽'

가족 사진. 어느 여름 해변가에서 찍은 사진 왼쪽 끝 필자,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가족 사진. 어느 여름 해변가에서 찍은 사진 왼쪽 끝 필자, 아버지, 어머니, 남동생
ⓒ 배성민

관련사진보기


대학에 들어와 사회 참여 활동을 하면서부터 5월은 1년 중에 가장 바쁜 달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1일 메이데이 집회(노동절), 2일 2008년 촛불 1주년 집회, 518 광주 순례, 학교 축제 등 정신없이 5월을 보냈다.

너무나 바쁜 나머지 5월 7일 오후 까지 8일이 '어버이의 날' 인지 모르고 있었다. 7일 저녁에 카네이션을 팔고 있는 리어카를 보고,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손에 선물 가방을 보고 난 후 8일이 '어버이의 날' 이라는 것을 알았다. 부모님의 선물을 준비할 시간 없이 부랴부랴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급하게 집에 오긴 했지만 카네이션 하나 사오지 않은 아들을 보자 부모님은 실망한 눈치였다. 부모님께 변명을 잔뜩 늘어놓았지만 내가 너무 가족을 등한시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죄 하는 의미에 부모님께 편지를 쓰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집에 편지지도 없고 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공개적으로 '부모님께 사과를 드리자' 라는 생각에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썼다.

"너 잡혀간 거 아빠한테 비밀로 했다" 라는 기사의 내용은 어버이날 부모님께 카네이션 하나 달아들이지 못한 아들인 나의 편지였다. 대학에 들어와서 사회참여 활동을 하면서 부모님 속을 많이 썩 였지만 매번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응원을 해주신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기사의 내용 중에 내가 용산 참사 추모제에 참가하여 경찰에 연행 된 일에 대한 얘기도 있었다. 연행 된 이후 어머니는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해주겠다며 다음부터는 조심해라는 말을 하셨다. 하지만 기사가 <오마이뉴스> 가장 중앙에 나오게 되자 인터넷을 열심히 한 아버지도 내가 경찰서에 연행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2월 7일 용산참사 추모대회에서 연행된 필자 (왼쪽)
 2월 7일 용산참사 추모대회에서 연행된 필자 (왼쪽)
ⓒ 양희석

관련사진보기


"성민아 기사 다 봤다."
"아 그래? 아빠 그럼 내가 경찰에 잡혀간 것도 이제 알겠네? 괜찮나? 나 혼낼 거지?"
"(웃으면서) 아니. 니가 잘못한 아닌데 뭘.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라! 그리고 기사 글 잘 봤다. 정말 고맙다."

아버지는 나의 기사를 보고 오히려 나에게 고맙다 라는 말을 했다. 혼날 줄 알았는데 고맙다 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 한 구석이 짠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어떻든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주는 부모님의 말에 가슴이 뭉클 했던 것이다.

이후 내가 집에 올 때 마다(필자는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한다) 아버지는 술 한 잔 하자고 조르신다. 술을 통해서 서로가 떨어져 살면서 알지 못했던 일상에 대한 얘기부터 앞으로의 진로에 관련 된 것까지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가족의 관계는 더욱 돈돈해졌다.

오마이뉴스 7월의 뉴스게릴라와 함께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대학생 토론, "노무현 아저씨가 왜 그랬을까"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을 읽고 부산대학교 대학생사람연대 회원들과 토론을 하는 장면.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을 읽고 부산대학교 대학생사람연대 회원들과 토론을 하는 장면.
ⓒ 배성민

관련사진보기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정부 측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함하기 위해 퍼트린 루머일 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TV, 라디오, 인터넷 모두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긴급 뉴스를 보내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나에게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해 쉽게 받아   들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평택 미군기지 설치, 한미FTA, 이라크/아프카니스탄 파병, 비정규직보호법 등으로 노 전 대통령을 퇴임 전까지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토록 미워했던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자 기분이 오묘했다. 슬퍼 울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기쁜 마음에 춤을 추지도 못했다.

노 전 대통의 죽음에 대해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는데 7월 초에 <오마이뉴스> 최은경 기자님에게 전화가 왔다.

"배 기자님, 이번에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해 대학생들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최근에 저희 오연호 대표님이 쓴 책이 있는데 이 책을 참고 하여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대학생들의 토론을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까요? 토론 하셔서 기사를 써주시면 좋겠는데..."

처음에 전화를 받았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여쭈어 보고 다시 연락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나 스스로도 아직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까라는 걱정이 되어 제안에 대한 답을 망설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혼자 생각할 바에 친구들과 얘기를 해보며 정리 하자는 생각에 최 기자님의 제안에 승낙했다. 제안에 승낙하고 토론을 한 후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다. 역시 다른 사람들과 얘기를 하니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입장을 잘 정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기사 덕에 7월 '이달의 뉴스게릴라'로 선정되어 <오마이뉴스>에서 상금을 받기도 했다.

또 하나의 재미! 엄지짱 된 사건

[나는야 엄지짱] '선덕여왕이냐 결못남이냐' 엄지짱에 선정 후기

나의 자취방에는 컴퓨터 두 대가 설치 되어 있다. (이 사진은 #5505 엄지뉴스에 전송된 사진입니다.)
 나의 자취방에는 컴퓨터 두 대가 설치 되어 있다. (이 사진은 #5505 엄지뉴스에 전송된 사진입니다.)
ⓒ 배성민

관련사진보기


<오마이뉴스>에는 일반 기사 외에도 사진과 동영상 등을 올리는 '엄지뉴스'가 있다. 한 때 일반 기사를 쓰는 것이 힘이 들어 엄지뉴스에 집중 했던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사진을 엄지뉴스를 전송했는데 머니머니 해도 엄지짱이 되었던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

'선덕여왕이냐 결못남이냐'라는 제목의 사진이다. 자취방에 함께 살고 있는 친구랑 각각 자신이 보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다툰 사연의 사진이다. 당시 친구는 '선덕여왕'을 봤고, 나는 '결혼하지 못하는 남자' 라는 드라마를 봤다. 모니터가 두 개 있었지만 스피커를 두 개다 켜서 보는 것이 영 불편했기 때문에 서로 자신이 스피커를 켜야 한다고 옥신각신했다. 그러다 내기를 하여 진 사람이 헤드셋을 끼고 드라마를 시청하자고 합의를 보았다.

결과는 나의 승리로 끝이 났고 친구는 헤드셋을 끼고 '선덕여왕'을 시청했다. 내기에서 승리한 나는 누워 컴퓨터 스피커 소리를 빵빵하게 키워 '결혼하지 못하는 남자' 를 봤다.

친구가 헤드셋을 끼고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진을 <오마이뉴스>에 올리자 엄지뉴스 메인에 뜨게 되었고, 네이버 오마이뉴스 섹션에 떡하니 메인에 올라 갔었다. 이것을 보고 주위 지인들은 너희 재밌다며 문자와 전화가 왔었다.

뜻 밖에 반응에 친구랑 나는 그날 하루 종일 그 사진을 보고 웃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 '선덕여왕'의 팬이 되었다. 물론 '결혼하지 못하는 남자'가 그날 이후 종영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진을 찍은 그날 친구가 선덕여왕을 너무 진지하게 보길래 나도 힐끗힐끗 보았는데 너무나 재밌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도 친구랑 다투지 않고 선덕여왕의 본방을 보기 시작했다.

2010년에도 기자 수첩과 명함, 펜을 들고 전국 방방 곳곳을 뛰어 다니며 재밌고, 진지한 기사를 취재하여 다시 돌아오겠다.
 2010년에도 기자 수첩과 명함, 펜을 들고 전국 방방 곳곳을 뛰어 다니며 재밌고, 진지한 기사를 취재하여 다시 돌아오겠다.
ⓒ 배성민

관련사진보기


2009년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주위에 있는 소소한 사람들의 얘기도 뉴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뉴스가 꼭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2010년 또 새로운 사람 혹은 어떤 사건이 펼쳐질지 너무나 궁금하다. 내년에 또 더 재밌고 진지한 기사로 다시 찾아오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노무현, #어버이날, #88만원세대, #선덕여왕, #드라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