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5월29일 오전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거행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를 하려던 순간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사죄하라'며 소리치다 경호원들에게 입을 틀어막히고 있다.
 지난 5월29일 오전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거행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를 하려던 순간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사죄하라'며 소리치다 경호원들에게 입을 틀어막히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관련사진보기


"워낙 민감한 사안이어서 언론 취재에 일체 응대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

질문은 간단했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에게 장례식 방해죄를 적용하면서 참고했다는 이전 사례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 의원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부장 검사는 '민감한 사안', '언론 취재 거부' 등 간단치 않은 단어를 써 가며 답변을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기존 (장례식 방해 사건 처리) 사례를 충분히 참고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상주가 장례 방해'?... 기소된 백원우 의원 "어처구니 없다"

앞서 지난 23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오정돈)는 소란을 피운 혐의(장례식 등 방해)로 백원우 의원을 3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사죄하십시오"라고 외친 것이 문제가 됐다.

검찰은 '장례식 등을 방해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형법 제 158조를 적용했다. 특히 검찰은 2005년부터 최근까지 장례식 방해 사건으로 처리된 2건의 사례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장례 방해죄'는 검찰 스스로 밝혔듯이 지난 5년 동안 단 2번만 적용됐을 정도로 일반인에게 생소한 조항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백원우 의원은 당시 장례위원이었다. 검찰은 '상주(장례위원)가 장례를 방해했기 때문에 벌금을 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적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 안팎에서는 "국가원수모독죄가 사라진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고함을 지른 백 의원에게 괘씸죄를 적용한 게 아니냐"며 논란이 일었다. 백 의원 역시 "상주이며 장례위원이었던 사람이 장례식 방해자라니 어처구니가 없다"며 정식 재판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검찰이 백 의원을 기소하면서 참고했다는 2건의 '장례 방해죄' 적용 사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이 사례 공개를 거부한 가운데, 기자는 지난 2005년부터 '장례 방해죄'가 적용된 사건 판례를 찾아봤다. 그러나 기자가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005년 인천지방법원에서 진행된 1건이 전부였다.

"장례 방해죄 적용한 검찰, 치졸하고 한심"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건축업자인 A씨와 B씨는 지난 2004년 12월 인천의 한 병원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고인이 된 C씨가 자신들의 공사대금을 주지 않고 사망한 것에 원한을 품은 것이다. 그들은 장례식장에서 "개XX들, 누구 허락을 받고 장례를 치르고 있냐, 남의 돈을 떼먹고 장례를 온전히 치를 수 있는 줄 아느냐"며 큰 소리로 떠들었고 소지하고 있던 소주병을 바닥에 던져 깨뜨리는 등 소란을 피웠다.

재판부는 "이들이 피해자의 아버지 C의 장례식을 약 30분간 방해했다"며 '장례 방해죄'를 적용, 각각 100만원의 벌금형에 처했다. A씨와 B씨는 곧바로 항소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물론 이 사건이 검찰이 백 의원을 기소하면서 '참고'한 2건의 사례에 포함된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검찰이 그랬듯이, '장례 방해죄'가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참고'할 만하지 않을까? 기자는 기간을 확대해 2003년 있었던 2건의 판례를 더 찾을 수 있었다.

한 장례식장 모습.
 한 장례식장 모습.
ⓒ 이현숙

관련사진보기


[판례①]
 "2003년 7월 A씨는 한 천주교회 내 장례식장에서 술에 취한 채 아무런 이유 없이 상주 B씨와 C씨가 진행하고 있는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는 조문객들에게 "야, 이 XX들아"라고 욕을 하고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등 소란을 피워 약 40분간에 걸쳐 장례식을 방해하고…."

[판례②] "피고인들은 주택단지 내에 있는 한 사찰이 장례식장을 설립하고 장례식을 개최하는 데 반대하여 오던 중 실제로 망 D씨에 대한 장례식이 진행되려고 하자, 이를 제지하기로 공모하여…. 장례식장 앞길에서 성명불상의 주민들과 함께 길에 누워 장의 차량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판례①'의 경우, 재판부는 공무집행방해죄까지 더 해 피고인을 징역 6개월에 처했고, '판례②'의 경우, 항소심에서 피고인에게 각각 벌금 20만 원~30만 원을 부과했다.

3건의 판례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피해자가 상주 등 장례 주최 측이거나 조문객이라는 점, 장례식 진행이 실제로 방해를 받았다는 점 등이다. 검찰이 백원우 의원을 '장례 방해죄'로 기소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 참석해 헌화를 하려고 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예배 행위를 방해했다고 해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백 의원이 한 행위는 이 대통령이 헌화를 하려고 일어서자, "여기가 어디라고… 이명박 대통령, 사죄하시오"라고 외친 게 전부였다. 당시 백 의원은 고함을 친 뒤, 채 1분도 되지 않아 곧바로 경호원에게 입이 틀어막힌 채 끌려 나갔다. 이 대통령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게 헌화를 마쳤고, 장례식 전체 일정도 차질 없이 끝났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황희석 변호사는 "장례라는 것은 전통적인 관념이 상당히 중요하다"며 "장례를 치르고 있는 가족이나 상주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방해를 당했다면 장례 방해죄가 언급될 수 있지만, 이 건은 그 반대"라고 지적했다.

황 변호사는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유족과 측근 인사들은) 현 정권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깊숙이 관련 돼 있고, 여러 가지 정황들을 봤을 때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장관과 이 대통령 등에게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당시 백원우 의원의 심정은 이명박 대통령이 참배하는 자체가 장례 방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교통사고로 숨진 고인의 장례를 치르고 있는 상주 입장에서 사고를 낸 운전사가 문상을 왔을 때,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며 호통을 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황 변호사는 특히 "검찰이 법률적으로 문제를 삼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자 치졸하고 한심한 행위"라며 "검찰이 아직 정권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라고 꼬집었다.

"오세훈·MB·경찰도 '장례 방해죄'로 처벌해야"

한편 백원우 의원이 장례 방해죄로 기소 당하자, 오세훈 서울시장이나 이명박 정권, 경찰도 '장례 방해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었다.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은 24일 논평을 내고 "자기가 모시던 대통령의 장례식을 방해했단 말인가, 참 할 말이 없다"며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용산참사로 가족을 잃은 그 유가족들은 아직까지 장례식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오세훈 시장과 이명박 정권이 장례 방해죄로 오히려 처벌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 30일 경찰은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 시민분향소 천막을 강제 철거했다.
▲ 경찰에 짓밟힌 대한문 분향소. 지난 5월 30일 경찰은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 시민분향소 천막을 강제 철거했다.
ⓒ 송영대

관련사진보기


앞서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에도 '장례 방해'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시민들이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한 분향소와 천막을 경찰이 강제 철거한 것. 당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질서를 지키며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았지만, 경찰은 빈소와 천막을 둘러싸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특히 국민장 기간이 끝나자마자, 경찰은 빈소가 마련된 천막을 파괴하고, 영정을 올려놓은 제상 등을 훼손해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

당시 '법학도'라는 한 네티즌은 "(분향소는) 집회나 시위도 아니어서 집시법의 규율을 받지 않기 때문에 경찰의 행위는 위법"이라며 "동시에 경찰의 이러한 행위가 고의적이었다면 이는 대한민국 형법 제158조에 규정된 '장례식 등 방해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황희석 변호사도 "(시민 분향소를) 장례식장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분향소를 마련해 참배의 예를 갖추는 행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찰이 이를 강제 철거한 것은 '장례 방해죄'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태그:#장례 방해죄, #노무현 전 대통령, #백원우 민주당 의원, #검찰 기소권 남용, #이명박 대통령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