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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이하 심사위)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14일 진행된 저에 대한 소청심사가 어떻게 결정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요. 전화 수화기 넘어오는 말들은 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저를 '해임'시키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거든요.

 

저는 지난 3월, 제가 몸담고 있는 양천고의 비리를 폭로했다는 이유로 파면(3월9일)당했습니다. 그 후 징계 무효→복직(6월25일)→5일만에 다시 직위해제→재파면(8월27일) 등을 거쳤는데, 지난 14일 심사위가 해임결정을 내렸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이지요. 

 

심사위에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심사위가 왜 있는 것인지요? 부당하고 억울한 교사를 구제하라고 설립해 놓은 기관인데, 거꾸로 악덕재단 편에 서서 확인사살할 거면 뭐하러 소청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몇몇 분들이 심사위가 정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으니 처음부터 민사로 가자고 했지만, 설마 사학비리 폭로자(공익신고자)에게까지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대랴 싶어 소청심사를 청구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그래도 최소한의 양식은 있는 분일 것이라 믿고 청구를 한 것이지요.

 

솔직히 저는 금품을 수수한 것도 아니고, 아이들을 구타하여 물의를 빚은 것도 아니고, 성관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그저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이제는  양천고도 주먹구구식이 아닌 원칙과 기준이 있는 학교, 몇몇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학교가 아닌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학교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입니다. 그래야 학생들과 학부모님, 그리고 교사들의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겠느냐? 이런 바른 소리를 한 죄밖에 없습니다.

 

학교비리 고발...그래도 소청심사위에 기대 걸었는데

 

이번 심사위 결정에 대해 많이 기대 했었습니다. 우리 교사들이 주장했던 양천고 비리 의혹이 그동안 수많은 언론에 보도됐을 뿐만 아니라, 국감과 교육청 재감사로 상당부분 밝혀졌습니다. 이에 대한 공로로 제가 <PD수첩>과 함께 '제 9회 투명사회상'까지 받았기 때문에 은근히 '징계무효'도 기대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최악으로 판정하더라도 '정직 3개월'을 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소청은 저희의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어처구니 없는 판정을 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습니까? 대한민국이 법치국가가 맞긴 한 것인지요. 정말 법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요. 도둑이나 강도를 신고하면, 도둑이나 강도에게 벌을 주어야지, 도둑과 강도에게는 면죄부 또는 솜망방이 처벌을 하고, 신고한 사람에게는 파면·해임이라니…. 결국 양심과 정의를 철저히 숨기고 영혼 없는 사람으로 침묵하며 굴종적으로 살라는 뜻인가요?

 

정규수업시간에 버젓이 교과서 대신 참고서 쓰고 그곳에서 시험문제를 출제한 교사들에게는 경고, 자신의 잘못으로 부과된 벌금을 학교 돈으로 낸 이사장에게는 경고, 또한 회계자금 변태 지출 및 감사자료를 허위제출해도 경고, 법인카드를 개인적으로 사용하여 회계질서를 문란하게 했는데도 경고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개인도 아닌 국가기관이 이렇게 이중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지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개인 부과 벌금 학교 돈으로 낸 이사장도 '경고' 주면서, 왜 저는?

 

정말 피를 토하고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소청관계자에게, 도대체 저의 해임사유가 뭐냐고 물어도 대답을 못하네요. 이런 절망적 현실 속에 제가 살고 있다는 것이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저에게 더는 토해낼 분노가 없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기 참으로 힘드네요.

 

오늘은 세 번째로 절망적인 날입니다(첫 번째는 검찰이 수사다운 수사 한 번 하지 않고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한 날, 두 번째는 학교측이 그것을 빌미로 저를 파면한 날입니다).  

 

그러나 저 이번에는 울지 않았습니다. 속에서야 피눈물이 흐르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눈물을 아끼겠습니다(지난 3월, 1차 파면 때 충분히 잠 못자고 충분히 울었습니다). 이제 더는 아파서, 슬퍼서, 괴로워서 흘리는 눈물은 없을 것입니다. 저들을 위해서는 눈물 한 방울도 아깝습니다. 꾹꾹 참았다가 좋은 일, 기쁜 일, 즐거운 일이 오면 그때 실컷 울겠습니다.  

 

그동안 저의 부당한 징계에 함께 아파하고 이모저모로 정말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과 여러 단체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 하나 고생하는 것이야 그렇다쳐도 여러분들 더는 고생시키지 않기 위해, 이번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소망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저를 애타게 기다리는 양천고 3학년 학생들, 제 제자들이 졸업하기 전에 학교로 돌아가 그들의 졸업과 대학입학을 마음껏 축복해 주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정말 미안합니다.

 

피를 토하고 죽고 싶지만...울지 않겠습니다

 

아직 양천고 사학비리의 전모가 밝혀지지도 않았고, 교육청과의 유착관계에는 근접도 못했고, 검찰의 부실수사 문제도 진척이 없는데, 학교 안에 들어가 조용히, 평온하게 살려고 했던 저의 안일한 생각이 짧았던 듯합니다.

 

지난 6월 25일, 복직하여 죽은 듯이 조용히 살겠다고 했으나, 학교측은 저를 재파면하여 저를 돕는 공대위가 더욱 공고해졌고 끝내는 양천고 문제가 국감에까지 갔고 교육청 특감까지 받았습니다. 이번 저의 해임도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학교 측에서는 해임 결정에 잘 됐다고, 이겼다고, 고소해하며 쾌재를 부르겠지만 그러나 아직 웃기에는 이른 듯보입니다.

 

솔직히 어제 잠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기도를 통해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저는 이미 3월의 김형태가 아닙니다. 그동안 냉탕과 온탕을 연거푸 오고가는 담금질에 거의 강철검 수준이 되었습니다. 저를 파면하고, 재파면하고, 해임한 사람들은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정의와 양심이 승리한다는 것을 반드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혼자 가면 길이 되지만, 여럿이 가면 역사가 된다고 했습니다. 염치없지만, 감히 여러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저와 함께 이 반상식의 세상을, 상식과 논리가 통하는 세상으로 바꾸어보자고요. 그리하여 성경말씀처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미 제가 여러 번 언급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저들에게 있는 돈도, 힘도, 백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저들에게 없는 정의·양심이라는 무기와 깨어있는 시민, 그리고 용기있는 언론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소 힘들고 시간은 걸려도 끝내는 정의와 양심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물은 웅덩이를 만나면 그냥 비껴가지 않습니다. 바보스럽게도 그 웅덩이를 다 채우고 다시 앞으로 갑니다. 힘으로 잠깐은 물길을 산으로 돌릴 수 있어도 그러나 물은 다시 돌아돌아 결국은 바다로 흐릅니다. 물을 잠깐은 막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물은 막을수록 커다란 힘을 소유합니다. 이 평범한 진리를 모두들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함께 아파하고 이모저모도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저야 이미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고 있지만, 저로 이해 고통당하고 고생하는 가족들, 지인들의 짐을 조금이나 덜여주려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약속하건대, 반드시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 여러분들도 함께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여러분들께 드릴 선물이 없어, 저의 각오를 담아 시 한 수 선사합니다.

 

물빛 사람을 꿈꾸며... - 리울 김형태

 

물은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되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가되 그냥 가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조금씩 나를 나누어 목마른 입술들을 촉촉이 적셔준다.

 

웅덩이를 만나면 말없이 웅덩이를 채우고

산을 만나면 빙그레 웃으며 돌아갈 줄도 안다.

 

남들이 높고 좋은 곳을 향해 달려갈 때,

모두가 싫어하는 낮고 천한 곳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간다.

 

스스로를 헹구어가며 맑고 깨끗해지고자 애쓸 뿐 아니라

다른 이의 탁함과 허물까지 아낌없이 닦아줄 줄 안다

 

그늘지고 외롭고 소외된 이웃을 만나면

가던 길 멈추고 더러운 발 씻어주고 아픈 가슴 보듬어준다.

 

스스로 움직여 빛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다른 이에게 힘을 실어주는 그림자가 되기도 한다.

 

물은 혼자 걷기도 하지만 다른 이와 함께 갈 줄도 안다.

다정스레 어깨동무도 하고, 기꺼이 무동도 태워가며 갈길 찾아간다.

 

가는 길에 장애물을 만나면 넘어져 우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은 갑절, 아니 곱절이 된다.

 

부드러운 얼굴과 달리 무서운 힘의 소유자로 한번 용트림하면

제 몸을 산산이 던져 바위를 뚫어 길을 내고 산을 넘어뜨린다.

 

호랑이를 만나면 피하기보다 겁도 없이 그의 먹이가 되어

그를 움직이는, 그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된다.

 

폭풍우를 만나면 털썩 앉아 슬피 울기보다는

가슴 밑바닥까지 물구나무 세워 세상을 정화하는 계기로 삼는다.

 

소리 없이 흐르면서 세상 대신 퍼런 멍울로 하염없이 울어주고

찬란한 여백 같은 푸르름과 함께 사무친 긴 여운도 선사한다.

 

그는 넓고 깊은 바다를 다 채우고도 남아, 단비가 되고 백설이 되고

풍선 같은 구름이 되기도 하고 보석 같은 이슬이 되기도 한다.

 

비누의 색깔이 다양하지만 그 거품은 모두 하얀색이듯

그의 얼굴과 표정은 천 가지이나 그 마음만은 하나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약하지만, 그러나 또한 가장 강하다.


태그:#김형태, #양천고, #해직교사 , #양심교사 , #공익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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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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