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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을 기르며 텃밭을 일구고 사철 수확물로 소박하게나마 행복을 꿈꾸며 살던 머리카락  하얗게 인 할머니는 생전 가보지 못했던 경찰서 유치장에도 갔다. 할머니가 아시기에는 어제까지만 해도 손주 같았던 경찰들에게 옷을 뜯기고 떼밀리고 소리소리 질러도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고착당하여 분통터져 화병이 생길 일도 겪었다

 

야밤에 촛불들고 집회라니, 그것은 서울 한 복판에서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다.  힘든 일 끝내고 가족들과 도란도란 보내야 하는 시간에  밤마다 폐교로, 고단한 몸을 끌고 와 이제 눈만 보아도 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이웃마을 주민과 촛불을 켜들고 노래방에서 유행가나 불렀던 마이크 들고 결사와 투쟁을 부르짖기도 했다. 자식 손주 안아주던  팔을 내뻗어 "주민 생존권 빼앗는 무건리 훈련장 확장 반대한다"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시내 한복판을 몸벽보 두르고 행진하기고 했다. 서울로 와 무소불위의 국방부 정문 앞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집회라는 것도 했다.

 

13일 무건리 훈련장 확장 저지를 위한 주민 촛불집회가 500일을 맞이하였다. 이미 720만평의 초유의 면적을 군사훈련지로 갖고 있는 국방부는 지난해 9월 5일 무건리 훈련장 확장을 위한 강제수용절차인 '실시계획승인'을 고시하고 강제 토지 매수에 나선이래 주민들을 우롱하고 현저히 배부른 자를 더 배불리고 농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는데 더없이 유리한 '공익사업을위한토지등의취득및보상에관한법률'(공토법)을 앞세워 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반대하는 것에도 요지부동하며 마침내 10월 8일 중앙토지수용위원회(중토위)의 2차 토지수용재결 결정을 내렸다. 

 

도시노동자가 일자리를 뺏기면 그것은 노동자들을 곧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대로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며 살아오던 주민들에게서 삶의 유일한 터전인 땅을 빼앗는다는 것은 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거나 숨을 쉬어도 식물인간에 다름 아닌 삶을 살게 만든다.

 

도대체 어느 나라가 제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것도 군사훈련장으로 쓴다고 목숨과 다름없는 땅에서 몰아낸다 말인가. 

 

주민들은 애써 분단된 이 땅의 상황을 이해하여 근 30여 년 동안 바로 이웃한 땅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군사훈련이, 그것도 자국의 군인이 아닌 분단의 원흉인 미군의 훈련장으로 쓰여도 또 그들이 어린 두 여학생을 탱크로 깔아 죽여 가슴에 피멍이 들어도 고통을 감내하고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주민들에게 이제 집 한 채 덜렁 지어 줄 테니 고향 땅에서 나가라는 것이다. 국방부는 난데없고 뜬금없이 주민들의 안전을 걱정한답시고 주민대책위에서 제 자리를 지키고 사는 것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보여도 남북대결을 부추기고 분단을 이용하여 권력을 누리고 있는 국방부 나아가서는 이명박정권은 두 귀와 두 눈을 막고서 주민들의 제발 목숨만 유지할 수 있게 또 고향의 한 언저리에만 살게 해달라는 요구를 부조리한 법을 앞세워 주민들의 목숨 줄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 침략군을 불러들여 배부르게 해주고, 바다와 평야가 어우러진 비옥한 땅 평택을 동북아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게 해준 것도 모자라 서울 북쪽의 아름다운 땅  파주일대를 훈련장 확장이라는 이름으로 미군에게 갖다 바치려 하고 있다. 그것이 아니라며 이미 확보된 남아도는 군사 훈련지를 두고 주민들의 목숨 건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800만평이 넘는 땅을 군사훈련장으로 확장하려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주민들을 설득할 수 없는 것이다. 

 

무건리 훈련장 확장부지는 천연기념물인 물푸레나무와 황조롱이, 원앙, 독수리와 또 나뭇가지에 꽃처럼 하얗게 둥지를 틀었다가 보기 좋게 들판을 날아오르는 백로가 서식하고 있을 만큼 자연환경이 오염되지 않은 곳이다.

 

논을 가로질러 훈련장으로 이르는 길은 탱크자국이 화인처럼 깊숙이 패여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효순이 미선이의 생명을 무참히 짓밟았던 그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만  계절마다  온갖 꽃이 피어나고 녹음방초며 단풍이며 겨울 빈 산야조차 맑은 공기로 가득하고 새들은 아스라이 야트마한 산등선으로 날아오르는 아름다운 땅이다.

또한 파주는 남북분단시대나 다가올 통일시대에서도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개성과 맞닿아 있는 곳이라  남북 분단의 상황에서는 군사적으로 매우 민감한 지역일 수밖에 없는 만큼 남과 북은 서로를 자극하지 않아야 하고 무건리는 그야말로 평화로운 마을로 남겨두어야 한다. 그것은 남북 간 긴장을 완화하고 적대적 대결국면에서 평화공존을 가져오는데 더없이 필수적 조건이 됨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한.미군사훈련장 확장이라는 사대적이며 종속적이고 파렴치한 국방정책을 수행하기 위해서 추악한 전쟁시나리오에 따른 군사훈련장으로 쓰려고 하고 있다. 

 

 무건리 훈련장은 이미 97년에 주한미군에게 공여되어 주한미군 뿐 아니라 미국 본토의 스트라이커 여단과 주일미군, 호주 등 해외주둔 미군까지 들어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고 보면 훈련장확장에 대한 미국의 속셈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자국의 생존전략인 침략근성을 드러내는데 있어 가장 적합한 한반도를 영구히 분단국가로 고착하려는 속셈으로 반통일 반북대결정책에 열을 올리는 이명박정권을 하수인으로 삼아 북에 대한 침략전쟁연습을 강화하여 자국의 잉여군수품과 침략군들을 이용해 한반도 곳곳을 포화와 포성 자욱한 땅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은 500여일이 넘는 훈련장 확장 저지 투쟁으로, 또 2차 중토위 토지수용결정으로, 또 앞으로 법적인 안전장치를 확보하여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국방부의 더러운 작태를 생각하면서 당분간 좌절감에 시달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주민들은 평화는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지난 500여 일 동안 뼈저리게 느꼈으며 가만 앉아서 당할 수 없으며 고향 땅을 지키는 데 묘비를 걸고 한 맨 처음의 결의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 500일 촛불집회를 맞아 주민들은 고향을 지키려는 고귀한 의지를 다지며 그것이 고향의 땅과 사람과 나아가 한반도 전체의 평화를 지키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될 것이다.

 

"죽일려면 죽여라! 내발로는 못나간다!"

 

주병준 무건리주민대책위위원장의 절규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임미영님은 양심수후원회 사무국장입니다.   


태그:#무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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