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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의 지난해 KBS 감사는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여러 행태를 보였다. 우선 전광석화처럼 신속하게 단행한 특별감사 결정이다. 5월 15일, 뉴라이트 전국연합, 국민행동본부, KBS MBC 정상화운동본부 등 뉴라이트 쪽 3개 단체에서 누적 적자 1,500억 원 등 부실 경영, 특별 승격 등 인사권 남용, 편파 왜곡 방송 등을 이유로 특별감사 청구를 하자, 엿새 만에 특별감사 실시 결정을 내렸다.

이런 감사 결정에 대해 KBS는 "사실과 다른 일방적 주장에 기초하여 감사 실시를 결정했다"는 이유를 들어 '행정심판 청구와 집행정지 신청'을 감사원을 상대로 냈다. 사실과 다른 단적인 예가 '누적 적자 1,500억 원'이었다. 이주장은 조합원 100명도 안 되는 KBS 간부노조(1급 이상)인 공방노가 숫자놀음을 하여 만든 거짓 숫자였다. 이 숫자가 그대로 뉴라이트 쪽 근거자료가 된 것을 보면, 공방노와 뉴라이트 사이의 견고한 연결고리가 보였다.

'재임 중 1500억원 적자' 괴물의 출현

반핵반김국민협의회,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2008년 8월 6일 오후 여의도 KBS 본사앞에서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반핵반김국민협의회, 고엽제전우회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2008년 8월 6일 오후 여의도 KBS 본사앞에서 정연주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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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연주 사장 재임 기간 중 1500억원 적자'라는 이 괴물은 조중동에서 대서특필되었고, 감사원 특별감사 결정에 주요 빌미가 되었다.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사장할 때, KBS 프로그램들은 좋았는데, 어째 누적 적자가 그렇게도 컸느냐고 되묻는다. 가랑비에 흠뻑 젖는다고, 반복되는 거짓 주장과 왜곡 보도로 그런 잘못된 인식이 각인되어버렸다.

나의 재임기간 5년간 KBS의 당기 순익 합계는 '189억 원 흑자'였다.  연도별로 보면, 2003년 288억 원 흑자, 2004년 638억 원 적자, 2005년 576억 원 흑자, 2006년 242억 원 흑자, 2007년 279억 원 적자로 5년 전체를 보면 189억 원 흑자였다.

이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KBS가 공사로 설립된 이후 해당 시점까지 발생한 이익과 손실의 총계인 '이익잉여금'이다. 해마다 국회 결산보고 때 제출하는 KBS 재무현황 자료에도 나오는 KBS 이익잉여금은 2002년 말 3955억 원이었던 것이 2007년 말 현재 4144억 원으로, 정확하게 189억원이 늘었다. (일부 언론과 한나라당에서는 이 이익잉여금을 국고에 환수해야 한다고 늘 주장했다).

그런데 '5년 누적 189억 원 흑자'가 '5년 누적 1,500억 원 적자'로 둔갑했다. 그 배경은 이러하다. 간부노조인 공방노가 2008년에 들어서면서 나를 공격하기 위해 만든 "특별기획 '정연주 5년을 고발한다'"라는 보도자료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2월 1일자로 나온 두번 째가 '무능경영의 극치, 누적 적자 1500억 원'이었다. 이 보도자료에서 공방노는 2003년 288억 원 흑자는 아예 계산에 넣지도 않았고, 2005년과 2006년에는 법인세 환급금을 제외하고 계산해서 2005년 20억 원 흑자, 2006년 132억 원 적자로 둔갑시켰다. 그리고 2007년은 추정치로 310억 원 적자로 하였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2008년의 경우에는 적자 예산 편성액인 439억원을 그대로 반영하여 모두 합쳐 1500억 원 적자라고 주장했다. 참으로 작위적이고 어이없는 셈법인데, 조중동은 이를 대서특필했고, 감사원은 이 숫자를 주요 빌미로 삼아 특별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의 거짓 왜곡의 숫자 놀음

지난해 8월 6일 오후 2시 정연주 KBS 사장이 감사위원회의 해임요구 결정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6일 오후 2시 정연주 KBS 사장이 감사위원회의 해임요구 결정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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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의 숫자 놀음은 KBS 공방노의 어이없는 숫자 놀음보다 더 저급했다. 어떻게 공무원 조직이, 그것도 전문가 집단이라는 조직에서 그런 얼토당토 않는 거짓과 왜곡을 서슴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사원은 지난해 8월 5일, 특별감사 후 서둘러 발표한 보고서에서 나의 해임을 제청하면서 그 근거가 되는 '무능 경영' 사례로 '1,172억 원 누적 사업 손실'을 들었다. 이 내용은 거짓과 왜곡의 합작품이었다.

우선 기업의 재정상태, 경영상황을 보는 가장 일반적인 개념인 '당기 손익'의 기준을 쓰지 않고, '사업 손익'이라는 아주 좁은 개념의 기준을 사용했다. '당기 손익'의 기준을 사용하면 '재임 5년간 189억 원 흑자'이니, 그걸 사용할 수 없었을 게다. '사업 손익'의 경우에는 KBS 자회사 손익과 투자에 따른 손익, 사업외 수익이 모두 제외된다. 법인세 환급금도 제외된다. 참으로 교묘한 수법이었다. 누적 적자,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능 경영'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이 곳곳에 역력했다.

큰 규모의 사업 이익(434억 원 흑자)이 발생한 2003년도는 아예 제외해버렸고(이 수법은 공방노와 일치했다), 2005년부터 4년간 사업 손익만 따졌다. 게다가 2005년의 경우에는 법인세 추납액을 이중으로 계산해서 엉뚱하게 적자를 345억 원이나 부풀렸다. 정말 해도 너무했다.

왜 속도전을 선택했을까

어쨌거나 KBS는 뉴라이트 등의 감사 청구 사유인 1500억 원 적자 등 청구사유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감사 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고 보았고, 그래서 '행정심판 청구와 집행정지 신청'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감사원은 6월 10일 이 청구를 각하했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이런 결정을 내리기도 전인 5월 26일에 예비감사를 시작했다. 말이 예비감사지, 사회복지감사국 직원 9명(팀장 정00 과장), 특별조사본부 직원 4명(팀장 송00 감사관) 등 모두 13명이 KBS에 들어와 본관 4층에 수감장을 마련하고는 온갖 자료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뉴라이트 3개 단체가 감사청구한지 불과 열하루 만에 KBS에 점령군처럼 진주하여 특별감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요구하는 자료 내용은 이미 감사의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사장을 포함한 임원의 재산 공개 내역, 통신비 사용 내역, 접대비를 포함한 법인 카드 사용 내역, 관용차 운행 일지 등 국민감사 청구 사항이 아닌 사장을 비롯한 임원의 개인 비리를 캐는데 필요한 자료를 우선 집중적으로 요구했다.

예비 감사는 5월 26일부터 6월 5일까지 진행되었다. 예비 감사가 끝난 뒤 불과 닷새 만인 6월 10일, 감사원은 KBS 사장 앞으로 공문을 보냈다. 6월 11일부터 사회복지감사국 김00 국장 외 28명으로 구성된 감사단이 KBS를 감사할 것이라는 통보서였다. 그리고는 거기에 사회복지감사국 김00 국장 지휘 아래 감사1반(반장 정00 과장), 감사2반(반장 조00 과장), 감사3반(반장 금00 과장) 등 3개 감사반의 직원 명단을 모두 적어서 보냈다.

나는 그 명단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직원 한 명, 한 명이 KBS에 무슨 자료를 요구했는지, 그 전체 목록을 다 가지고 있다. 당시 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매일 아침 출근하면 내 책상 위에는 전날 감사원 감사팀의 누구가 어떤 자료를 요구했는지 그 목록이 놓여 있었다. 감사원 직원 전부가 그랬던 것 아니지만, 적어도 이들 중 상당수는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필요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정치 감사, 표적 감사를 했다. 그리고 감사 결과를 발표할 때 사실과 다른 거짓과 왜곡도 서슴지 않았다. 스스로 반성하고 참회하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 반드시 있을 터이다. 어느 정권이든 그 권력은 유한하다. 그 유한한 몇 년의 권력은 긴 역사의 눈으로 보면  반딧불처럼 잠시 반짝였다 사라질 뿐이다.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과 부안, 그리고 아내의 고향

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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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얘기했다시피, 감사원 감사팀은 KBS 일반에 대한 감사를 담당하는 팀(사회복지감사국)과 특히 나의 비리를 집중적으로 찾는 팀(특별조사본부. 그들 스스로 줄여서 '특조'라 불렀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실인지 알 수 없으나 1주일이면 정연주 손들게 할 수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당시 공기업 사장이 사퇴를 요구받고 좀 버티다가 감사원 특조팀이 들어가 이틀 정도만 뒤져도 이를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그런데 특조팀이 내 법인 카드와 업무 추진비를 들여다 본 후 김이 샜다는 후문이 들렸다. 업무 추진비의 실제 집행액이 월 한도액의 30-40%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조팀은 다른 카드도 여럿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 건설과 관련된 것이다. 이 건은 당초 감사원 특조팀에 들어간 제보가 워낙 상세한데다 혹하게 잘 만들어져 있어서, 이것만 가지고도 정연주를 날릴 수 있을 꺼라고 생각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 제보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은 당초 경남 통영, 전남 여수, 완도 등이 고려 대상이었는데, 정연주 사장 부인의 고향이 전북 부안 쪽이라 그 쪽으로 결정이 났고, 그런 과정에 사장 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상당히 자세한 정보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이 문제 때문에 '불멸의 이순신'을 연출한 담당 PD를 비롯하여 드라마팀이 참 고생을 많이 했다. 수시로 감사팀에 불려가서 조사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는 보고가 계속 들어왔다. 그 조사 대상에는 부안으로 세트장이 결정되는 과정에 사장이 어느 정도 깊이 관여했는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하 드라마의 세트장을 결정하는 데는 여러 요인이 고려 대상이지만, 핵심은 드라마 연출자의 마음이다. 드라마 연출자는 어느 곳이 세트장으로 가장 적합한지를 찾기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그래서 몇 군데 후보지를 정해 놓고, 어느 곳이 드라마에 가장 좋은지를 검토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어느 후보지가 대략 정해지면, 세트장 건설비, 미술비 등의 부담을 지방자치단체가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를 놓고 지역 지방자치 단체와 논의한다.  지자체는 드라마가 성공하면 관광수입 등을 기대할 수 있기에 드라마 세트장 유치에 적극적이다.

'불멸의 이순신' 경우, 연출자는 여러 군데를 후보지로 보았다고 했다. 전남 완도, 여수, 경남 통영, 전북 부안 등의 후보지를 놓고 실제 답사하면서 장단점을 헤아렸다는 것이다. 양식장이 많은 곳, 영상미가 잘 나오지 않는 곳, 서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곳 등을 제외하다 보니, 전북 부안이 이들 후보지 가운데 가장 좋다는 결론이 내려진 모양이었다. 세트장이 들어선 부안의 궁항 주변은 전신주 등의 방해물도 없고, 앞 바다에 점점이 작은 섬들까지 흩어져 있는데다, 가까운 곳에 변산 내소사도 있고, 또 KBS의 또 다른 세트장(영화 '왕의 남자' 촬영지)이 있어서, 여러 면에서 조건이 좋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후보지로 정해진 다음, 부안군과 협찬을 논의하게 되었고, 협찬 논의도 순조롭게 진행되어 최종 후보지로 낙찰되었다. 사장인 나에게는 별도로 세밀한 내용이 보고되지 않고, 대체적인 흐름과 큰 줄기에 대한 이야기가 임원회의에서 보고되었다.

조직의 자율성 확대를 위해 이미 많은 권한을 아래로 내려 보냈는데다, 드라마 세트장 선정이야 말로 전문가인 드라마 연출자가 결정해야 하는 것이니, 사장이 개입할 여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감사원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우연하게도 나의 아내 고향이 전북 부안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현미경을 들이댔다. 그리고 감사원 특별감사가 있기 훨씬 전, 나에 대해 참으로 적대적이었던 강00 감사 시절, KBS 감사실에서 이미 부안 세트장 건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특조팀은 부안 세트장 일대 토지 매매를 거의 조사한 모양이었다. 나나 나의 아내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대신 KBS 직원 두 명의 땅 소유 사실이 드러난 모양이었다. 한 명은 1백 평을, 또 다른 한 명은 7백 평을 사들였는데, 드라마 세트장이 들어설 즈음에 구입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1백 평은 규모가 너무 작고, 7백 평 경우는 세트장이 들어설 것으로 보고 투자하기는 했지만, 지역을 잘못 짚어 세트장보다 좀 떨어진 곳에 땅을 매입한 탓인지, 감사 당시까지는 되레 손해를 본 것으로 드러난 모양이었다. 부안 세트장 건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한 편의 서글픈, 그러나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블랙 코미디였다.

*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태그:#정연주, #KBS, #감사원, #정치 감사, #영혼없는 무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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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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