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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보면, 마음이 바쁜 일행과 함께 있었더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만한 곳이지만, 눈에 번쩍 띄면서 여행자의 마음을 압도하는 순간이나 장소가 있다. 그곳은 벚꽃이 한창 피어나는 한적한 주택가의 골목길일 수도 있고, 길고 늘씬한 열차가 어둠을 뚫고 숙소의 지붕 위를 지나가는 광경일 수도 있다. 

 

이런 곳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은 길을 잃거나, 저녁 식사 후 남는 시간에 주위를 둘러보는 때이다. 여행자의 마음에 가야할 곳과 보고 싶은 것에 대한 아무런 선입견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결정적인 순간에 대하여 <윌리엄 워즈워스>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우리의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이 힘으로 우리를 파고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땐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며

떨어졌을 때에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 <틴턴 사원 몇 마일 위에서 지은 시> 중에서 

 

결정적인 시간의 한 점, 서부경찰서 정문을 나서던 날

 

나의 삶에도 이러한 시간의 점들이 있다. 그것은 워즈워스처럼 여행 중의 한 순간이기도 하고, 노래를 듣거나 그림을 보는 찰나의 시간이기도 하다. 또는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거나, 다시 만나게 된 어떤 경험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간의 점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뿌리고 지나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 마음에 새겨진다.  

 

이십여 년 전, 종로에서 열린 시국 집회에 참석한 날이었다. 머리카락과 허리띠를 잡힌 채 닭장차에 끌려가 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방패로 얻어맞으며, 의자 밑으로 고개를 처박은 채 실려 간 곳이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서부경찰서'였다.

 

2박 3일간 감내했던 변기 냄새와 무짠지와 꽁보리밥을 뒤로 하고 경찰서 정문을 나서던 날, 눈앞에 펼쳐진 세상의 풍경이 얼마나 신기하고 반가웠던지 말로 다하기 힘들다. 그 서부경찰서를 다시 마주하게 된 것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 열리는 가수 홍순관의 팬카페 <춤추는 평화>의 정기모임 때문이었다.

 

요가를 하면서 듣게 된 노래의 근원을 찾다가 가입한 곳이 <춤추는 평화>였다. 7월의 어느 날에 첫 정기모임이 있다고 해서 모임장소인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찾아갔더니, 마침 그 서부경찰서 정문 앞이었다.  

 

그 사이 이십여 년이 흘렀다. 이번에는 아내와 세 딸과 함께 경찰서 앞 골목풍경이 되어 그 날의 두려움과 떨림, 골목풍경에 대한 반가움과 안도감을 반추해 보았다. 그러나 그 기억을 온전히 되새긴 것은 불과 30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곧 모임에 대한 생각이 침입을 했고, 아내가 빨리 가자고 재촉을 했다. 

 

결정적인 시간의 한 점, 가수 김은영의 노래를 듣던 순간

 

아내의 재촉에 서부 경찰서 정문을 흘끗흘끗 쳐다보면서 모임이 열리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 들어섰다. 행사는 이미 진행 중이었고, 가운데 무대에는 어느 여자 가수가 맑고 고운 소리로 편안하게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했다. 가수의 '팬카페'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때여서 막연히 <춤추는 평화>의 중심인 홍순관님의 노래를 직접 듣겠거니 하고 찾아간 터였다. 그러나 이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할 겨를 없이, 꾸밈이 없는 청정한 소리와 단순한 멜로디와 가사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목을 전혀 쓰지 않는 듯 자연스런 노래 소리는 높낮음을 쉽게 오르내리면서, 야만의 시절에 젊은 청춘이 겪었던 당황스런 기억을 잊게 하고, 평범한 아스팔트 길에 기꺼이 입 맞추고 싶은 반가움을 일깨웠다.  

 

어쩌면 그 반가움은 야만의 시절에 겪었던 폭력에 비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국가의 폭력은 개인에게 순간의 충격과 상흔을 줄 수 있지만, 개인의 정신을 지배하지 못한다. 상처는  평화를 일깨울 뿐, 복수를 염원하지 않는다. '가수 김은영'을 처음 접한 순간에도 그러했다.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무장해제하는 노래의 힘이 어쩌면 예술의 본질일 수도 있겠다.  

 
17년만의 첫 단독 콘서트, <첫눈이 왔으면 좋겠어!>

 

그 '가수 김은영'이 올해 초, 첫 단독 앨범 1집<그리움을 말하다>를 발매하였다. 그리고  지난 11월 28일(토)에는, 단독앨범 발매를 기념하기 위해 양재동 aT센터에서 <첫눈이 왔으면 좋겠어!>라는 타이틀로 생애 첫 단독콘서트를 열었다.  

 

이번 콘서트는 '가수 김은영'과 그 팬들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었다. 17년 전 여고 축제에서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른 이후,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은 첫눈처럼 가슴 설레는 첫 단독 콘서트였다.

 

또한 오랫동안 대중에게 리더 이필원과 함께 활동하던 듀엣 '뚜아에무아 3기'의 여성멤버로 기억되었지만, 이제 '가수 김은영'으로 다시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콘서트 현장에서 다시 접한 김은영의 노래는 단지 곱고 서늘한 뚜아에무아 1기 여성멤머인 '박인희'의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가수 '혜은이'의 감칠맛도 느껴지면서 '올리비아 뉴튼 존'의 발랄함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자신의 색깔과 정체성을 가사와 멜로디에 녹여 내면서 수많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결정적인 시간의 한 점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가 경험한 가수 김은영에 대한 관찰 기록입니다. 시간별로 정리했으며, 지난 주에 열린 콘서트 이후의 느낌을 정리하여 기록한 기사입니다. 


태그:#김은영, #포크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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