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대답은 시간은 죽음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이 이르는 곳이면 어디에든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사라져 버리면 시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죽음은 마치 거미가 우리의 시간을 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에 삶이 시간이 서있는, 현재의 순간에, 멈춰있는 그 곳에 있다면 죽음은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영역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간은 죽음을 지나 흐르고 있으며 삶 속에서 멈추는 것이다. 영혼의 창문에서 영원과 시간이 나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죽음은 다만 현재 시점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멈출 능력을 잃어버린 우리 시간의 한 부분인 것이다. 이유는 우주에서 멈춰 편안하게 차는 시간의 양은 언제나 같기 때문이다. 나머지 시간들은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 밀로라드 파비치 '바람의 안쪽' 중에서.

밀로라드 파비치
 밀로라드 파비치
ⓒ pavich.ru

관련사진보기

하이퍼 픽션의 장인, 미래 소설의 기수라 불리던 세르비아의 작가 밀로라드 파비치가 11월 30일 81세 일기로 자신의 저택에서 숨졌다. 사망원인은 경색인 것으로 보인다고 세르비아 언론들은 전했다.

밀로라드 파비치는 전세계에서 소설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세르비아에서는 시인, 번역가, 역사가로도 유명하다. 또 그는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그리고 몇 가지 고어들을 구사했으며 푸시킨과 바이런 번역의 대가로도 유명하다.

파비치는 1929년 10월 15일 베오그라드에서 조각가 아버지와 철학 선생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고,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베오그라드 대학 철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신문사에서 일하며 비평을 많이 썼고, 유럽 시인들의 시들을 번역했다.

그의 작품 세계

앞서 말했듯 파비치는 하이퍼 픽션의 장인으로 불렸다.(하이퍼 픽션이란 본래 영화와 소설의 장점을 고루 융합, 음악, 그래픽 등을 가미시킨 컴퓨터 소설을 의미한다. 하지만 문체, 서사, 묘사법 등에서 기존의 전통적 소설의 구성을 넘어선 실험적소설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그의 별명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작품들에서는 실험적 요소들이 넘쳐났다.

본래 그는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1967년에 첫 시집 <폴리미세스티>를, 1971년에 시집 <월석>을 발표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은 그가 스스로 평가하듯 사람들에게 큰 인기가 없었다. 그리고 1984년 그를 세계적 작가의 반열로 올려준 소설 <카자르 사전>이 출판된다.

'카자르 사전'은 우리에게 전통적인 서사적 줄거리가 없는 세가지 작은 사전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소설의 내용은 8세기에서 9세기경의 카자르족의 이야기인데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 '카자르 사전'은 실제 역사를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은 허구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어디서부터 읽어도 무방할 만큼 줄거리가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의 소설적 실험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1988년에 발표한 '차에 그려진 풍경화'는 소설 전체가 퍼즐처럼 이루어져 가로, 세로로 읽을 수 있다. 1994년 작 <콘스탄틴노플에서의 마지막 사랑>은 소설 전체가 타로카드로 연관되어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들의 운명이 타로 카드에 의해 좌우된다.

1991년 발표한 또 다른 대표작인 <바람의 안쪽>은 프랑스의 파리 마치지가 "20세기에 쓰여진 21세기 소설"이라고 극찬한 작품이다. 소설은 '헤라'와 '레안더'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에서모티브를 딴 이 소설은 17세기와 20세기의 세르비아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시공에서 살지만 같은 장소에서 살면서 서로의 존재를 알아가고 필연적인 비극을 맞이한다. 이 소설의 특징은 어떤 편에서부터 읽던지 결말에서 두 이야기가 만나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들은 전세계 30개 국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2004년에는 노벨 문학상에 노미네이션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카자르사전>과 <바람의 안쪽>이 번역되어 출판됐다.

그의 명언들

"난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죽였다. 죽을 때까지." – 그가 살아있을 때 맞이한 3번의 전쟁으로 세르비아가 폭격을 당한 것에 대해.

"난 벌써 200년을 넘은 작가이다." – 자기 자신의 직업관에 대해 설명하며.

"나는 가장 미움 받는 민족인 세르비아의 가장 유명한 작가이다."

"나는 살아 생전에 많은 작가들이 죽어서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얻었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 그 다음 문장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 독자들이 자신의 작품에 싫증 나는 게 두려웠다면서 남긴 말.


태그:#밀로라드 파비치, #바람의 안쪽, #카자르 사전, #세르비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