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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한 오늘(11월 26일) 아침, 북한산 자락
▲ 북한산 자락 안개가 자욱한 오늘(11월 26일) 아침, 북한산 자락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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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겨울 숲이 안갯속에 들어 있다. 안개 자욱한 숲의 속내는 보이지 않고 숲의 가장자리만 아침 햇살의 도움을 받아 드러날 뿐이다. 뭔가 저 깊은 숲에서 나목의 나무들이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인 듯하다. 온전히 보이지 않고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인간의 관음증을 자극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안개로 촉촉하게 젖은 겨울 숲이 나를 부른다.

안개 속에 아침 햇살도 들어있다.
▲ 여명의 아침 안개 속에 아침 햇살도 들어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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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은 나뭇가지 사이로 빛 내림을 하고, 아침 햇살에 자기의 몸을 내맡긴 안개들은 서둘러 하늘로 올라간다. 햇살이 머무는 만큼 겨울 숲은 조금씩 깊은 속내를 드러낸다. 걸어가면 걸어가는 만큼만 보이고,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길조차도 사라져버린다. 세상에 홀로 남은 듯한 느낌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나목이 되어버린 산벚나무, 저 너머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 나무 나목이 되어버린 산벚나무, 저 너머로 푸른 하늘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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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이미 푸른 빛, 안개가 걷히면 오늘 날씨가 얼마나 화창할지를 미리 알려준다. 바람이 잠을 자는 날이어야 안개가 평온하게 숲을 감쌀 수 있으니, 안개를 걷어내는 햇살이 쨍하고 바람까지 없는 날은 맑을 수밖에 없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길을 나서는 어머니는 늘 "오늘 날씨는 좋겠다!"라고 하시곤 하셨다. 거짓말같이 안개가 자욱했던 날은 화창하고, 따스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도 안개가 자욱한 아침이면 '오늘 날씨 좋겠다!' 생각하곤 했다.

붉은 바다를 연상케 하는 붉은 단풍잎들의 쉼, 아침햇살이 만든 그림자들이 길게 기대어 쉬고 있다.
▲ 단풍잎과 나무 그림자 붉은 바다를 연상케 하는 붉은 단풍잎들의 쉼, 아침햇살이 만든 그림자들이 길게 기대어 쉬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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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이 만든 나무의 그림자들이 떨어진 붉은 단풍잎들 사이에 길게 눕는다. 그림자는 아침과 저녁에 길게 누워 쉬다가 한낮에나 잠시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어둠이 찾아오면 자기가 어둠인지 어둠이 그림자인지 하나가 되어 생명 있는 것들을 쉼의 시간으로 인도한다. 가을과 겨울 초입,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단풍의 얼굴은 온통 홍조다. 해넘이와 해돋이의 바다가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이슬이 추위에 얼어붙었다. 얼음이슬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 얼음이슬 이슬이 추위에 얼어붙었다. 얼음이슬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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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홍조의 바다를 걸어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간다. 낙엽들이 썩어가며 내뿜은 열기의 도움을 받아 아직도 푸른빛을 간직한 들풀에 얼음이슬이 맺혔다. 겨울과 안개가 이른 아침에 만들어놓은 보석이다. 햇살이 비치면 물방울보석이 되어 그 작은 몸 안에 겨울 숲을 가득 담을 것이다.

아침 햇살에 이내 얼음이슬이 녹아 이슬방울로 변하고 있다.
▲ 이슬 아침 햇살에 이내 얼음이슬이 녹아 이슬방울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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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비치자 곧 얼음이슬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이런 순간들을 만나면 조금 천천히 진행되길 바라지만 세월도 그렇듯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천천히 느릿느릿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변하는 자연도 이리 빠른데, 우리는 얼마나 빨리빨리 살아가는 것일까? 봐야 할 것, 느껴야 할 것을 보기나 하고 느끼기나 하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싶다.

안개낀 숲, 그 숲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 나무 안개낀 숲, 그 숲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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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벗어버린 나목들을 바라본다. 월동준비를 한다고 꼭꼭 쟁여놓는 사람과는 달리 입고 있던 옷을 다 벗어 던지는 것도 모자라 제 몸에 있는 물까지 내어놓은 나무. 그것도 모자라 겨울눈까지 어느새 준비하고는 새봄의 꿈을 가지마다 달고 있다. 그들에게 겨울은 쉼의 계절이요, 새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안개낀 겨울 숲, 나무들의 본 모습이 가장 극명하게 보이는 계절이다.
▲ 겨울숲 안개낀 겨울 숲, 나무들의 본 모습이 가장 극명하게 보이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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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듯 쉬지 않고, 분주한 듯 분주하지 않은 자연은 '정중동의 미'를 몸 안에 새기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움직임을 자연스럽다 하고, 그래서 그들을 통틀어 '자연'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외형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 척하며 살아가는 데 익숙한 사람은 자연의 삶을 살지 못한다. 자신의 삶이 얼마나 반자연적이고 비인간적인 삶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열매와 남은 이파리들, 저들은 새봄에 다시 푸른빛을 낼 것이다.
▲ 덩굴식물 열매와 남은 이파리들, 저들은 새봄에 다시 푸른빛을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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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비틀어진 가지들과 이파리들은 죽은 것이 아니다. 그렇게 온몸으로 겨울을 맞이하고 새봄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맨몸이라 더 처절한 몸부림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저 말라비틀어진 것들을 보면서 새봄에 새싹을 낼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의심이 없어 믿음조차도 없을 수 있지만, 저 마른 가지는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안개낀 숲, 산책을 하며 행복했다.
▲ 숲 안개낀 숲, 산책을 하며 행복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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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겨울 숲에서 나는 출렁이며 반짝이는 단풍의 물결을 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꿈틀거리며 유영하듯 살아있는 생명의 기운을 느꼈다. 얼음이슬은 큰 바다에 기대어 사는 물고기의 편린과도 같은 것이요, 아직도 가을빛을 담고 남아있는 나뭇잎들은 소박한 여인네들의 장신구 중의 하나처럼 보였다.

텅 빈 겨울 숲을 가득 채운 안갯속 풍경, 그 안에는 촉촉함이 남아있다. 그 품에 잠시 안겼다 나온 내 몸에도 그 촉촉한 기운이 남아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겨울 숲, #안개, #나무,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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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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