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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위 구리밥에 단풍이 들었다.
▲ 개구리밥과 얼음 얼음위 구리밥에 단풍이 들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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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 북한강과 남한강 두 머리를 맞대고 있는 그곳은 새벽이면 운동을 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물안개와 어루러진 강변의 풍경과 황포돛배를 담기위해 출사를 나온 이들로 붐빈다.

사계절 내내 아름답지 않은 날이 없어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그곳에는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도 있으며, 여름이면 연밭에는 연꽃이 피어나고 있다. 언제라도 가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온 생명을 품고있듯 모든 것을 품어주겠다는 듯 평온하게 다가오는 곳이 그 곳이다.

4대강 사업이 진행되면 이곳의 보는 다른 곳보다 높게 쌓아야 할 것이라고 한다.

몇 십년간 늘 한결같이 다가왔던 두물머리의 아침도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 사라지게 되는 것이구나 생각하니 슬프기만 하다.

아직 깊은 겨울이 아니라 강은 얼지 않았지만 연밭에 남아있는 물두덩엔 얼음이 얼었다. 그리고 얼어붙은 얼음위에 개구리밥이 단풍이 들어 이전엔 볼 수 없는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개구리밥도 단풍이 든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나뭇가지가 잎을 모두 내려놓은 그곳, 줄기에 떨어진 단풍잎이 물들었다.
▲ 반영 나뭇가지가 잎을 모두 내려놓은 그곳, 줄기에 떨어진 단풍잎이 물들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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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밥과 얼음의 조화를 한참 바라보다 아직은 얼지 않은 물 속에 반영된 세상을 바라본다. 나무줄기엔 지난 가을 떨어진 단품이 물들고, 하늘이 물 속에 들어와 푸른 물감을 풀었다.

함께하다 이별한 것으로 끝이 아니라 이렇게 다시 이어지는 것이 자연이구나 싶다.
다시 하나가 되고, 썪어져 뿌리를 통해 다시 새순이 되는 순환의 고리를 어기지 않고 살아가는 나무가 그래서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구나 싶다.

반영된 나무를 보면서 불규칙한 듯한 나뭇가지들을 바라본다.
저것들이 잘다고, 아무렇게나 뻗쳤다고 다 쳐내고 굵은 줄기만 남겨놓았다면 나무일까 싶다. 나무는 줄기도 줄기려니와 나뭇가지가 있어야 나무일 수 있는 것이다. 줄기는 이파리를 내지 못한다. 가녀린 나뭇가지들이 이파리를 내고 그로인해 나무가 나무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저런 등급으로 사람을 나누고, 오로지 1등급(?)이 아니면 모두 실패자라고 하질 않는가?

두물머리의 아침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 두물머리 두물머리의 아침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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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끝난 수능시험의 홍역을 치른 딸을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난다.
마치 푸줏간에 걸린 고기를 감별하여 등급을 매기는 것과 뭐가 다른가 싶어서 그랬다.

하늘을 나는 새, 들에 피어난 꽃, 나무들은 경쟁을 할지언정 등급을 매기고 그들이 다 피어나기도 전에 '넌 실패자야!'하지 않는다. 끝까지 기다려주고, 생명이 있는 한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끝까지 피워낸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을 경쟁대열에 세워놓고 등급을 매기며, 피어나기도 전에 아예 싹수를 잘라버린다. 1등급이 아니면 루저, 외모나 키도 어느 정도가 아니면 루저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러니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성형외과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냥 바라만 보아도 아름다운 아이들인데 그 얼굴에 칼을 대고, 기성사회가 미인이라고 규정지은 틀에 어서 편입되고 싶어 안달을 하는 것이다.

아직 남은 이파리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 나뭇가지 아직 남은 이파리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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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혹은 꽃이 아니면 벌과 나비가 아름다운 것은 같은 것이로되 같지 않기 때문이다.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피어나고, 때론 비바람에 상해 온전하지 못할지라도 그런 삶을 피하지 않고 자기만의 모습으로 승화시키기 때문이다.

온전함에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죽어 또다시 자연의 일부가 되고, 자신의 온전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기에 자연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리고 살아갈뿐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는 자연스러움을 다시 일깨워줄 수 있는 곳들을 하나 둘 파헤져버리고, 파괴시켜버리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것이다. 어쩌면, 자연스러움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들이 자신의 적이 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부류에 의해 자연은 파괴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두물머리의 아침, 그냥 강변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이젠 이런 풍경도 시멘트옹벽이 쳐지는 순간부터 다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아니, 그렇게 되기 전에 막아야지.

매일 새벽이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작품사진을 담으러 이곳으로 달려오시는 분들만이라도 하나가 된다면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마음이 허해진다. 사랑하는 방식들이 저마다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냥 저강, 이렇게 유유히 흘러흘러 바다로 가게 하면 안되는 것일까?


태그:#두물머리, #4대강 사업, #개구리밥, #루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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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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