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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건물을 복원하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집을 다 정리를 하고 난 후에는 그 안에 들어갈 소품을 구색들 갖추어 잘 정리를 해야, 비로소 하나의 역사적인 집의 복원을 마쳤다고 생각이 든다. 여주 명성황후 생가 곁에 있는 감고당은 원래 서울 종로구 안국동 덕성여고 본관 서편에 있었다. 그 후 1966년 도봉구 쌍문동으로 옮겨졌다가, 쌍문고등학교 신축계획에 따라 철거될 위기에 처했던 것을, 마침 여주군이 명성황후 생가 성역화 작업을 할 때였기에 2006년 현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복원과정에서 감고당의 원형이 변화가 되었음은 감고당의 설명에 나와 있는 바다. 그러나 감고당을 돌아보면 여기저기 옥의 티가 보인다. 그 중 몇 가지는 이해가 안 될 부분들도 있다. 관람을 하는 학생들조차 지적하는 옥의 티, 정리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무조건 나열하는 식의 전시는 삼가야

안채는 안주인이 기거하는 곳이다. 금남의 지역인 이곳 불을 때는 부엌에 지게가 있어 어울리지 않는다
▲ 안채 부엌에 지게 안채는 안주인이 기거하는 곳이다. 금남의 지역인 이곳 불을 때는 부엌에 지게가 있어 어울리지 않는다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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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고당은 머슴들이 기거하는 대문 옆에 붙은 행랑채와 남주인이 주로 기거를 하면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사랑채, 그리고 청지기나 침모 등 여인네들이 기거를 하는 중문채, 그 안편에는 외부와 차단이 된 여주인이 기거를 하는 안채로 구분된다. 이 중 안채는 중문채에 기거를 하는 청지기조차 들어갈 수 없는 금남의 집이다. 그러기에 이 안채의 부엌 등에는 남자들이 사용하는 도구가 있어서는 안된다.

보존을 위한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황토색을 섞은 부뚜막과 같이 처리를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 시멘트로 바른 바닥 보존을 위한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황토색을 섞은 부뚜막과 같이 처리를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 하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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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안채의 작은 부엌에 지게가 떡하니 놓여있다는 것이다. 부엌을 드나드는 여인들이 지게질을 했을까? 그리고 작은 부엌은 주로 불을 때면서 물을 끓이는 정도로 사용을 한다. 과도한 장식을 하는 것은 오히려 보기가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구, 맷돌 등이 놓여있어 비좁은 부엌을 더 좁게 나열을 하였다. 더욱 이 부엌의 바닥은 시멘트로 발라놓았다. 부뚜막을 바른 황토색으로 칠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보기가 좋았을 텐데 말이다.

안채 부엌에 웬 양은그릇

어울리지 않게 전시된 양은그릇.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다 놓았을까?
▲ 양은그릇 어울리지 않게 전시된 양은그릇.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다 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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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의 살림을 하는 큰 부엌은 음식을 조리하는 등의 생활공간이다. 이 부엌은 넓기도 하지만 집안 일을 맡아하는 여인네들이 많이 사용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도 옥의 티가 있다. 어울리지 않게 전시된 양은그릇이다. 몇 개의 양은그릇이 구색에 맞지 않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누가 막걸리라도 마시고 이곳에 두고 간 것인지. 이런 것 하나가 역사적인 건물의 가치를 떨어트린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채의 방은 가구전시장(?)

복잡하게 빈틈없이 들어찬 가구들. 가구 하나의 배치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 안채의 가구들 복잡하게 빈틈없이 들어찬 가구들. 가구 하나의 배치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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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를 둘러보니 한 마디로 가구전시장이란 생각이 든다. 사대부가들의 집은 많은 가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사대부가들은 방안이 의외로 정갈하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것들만 진열하는 것이 통상적인 예이다. 그런데 이 많은 가구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도 제각각 다른 가구들이 즐비하다. 이렇게 복잡한 가구들을 들여놓은 까닭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예산이 남았다거나, 아니면 무조건 많이만 진열하면 좋다는 생각에서일까? 이런 것 하나에도 신경을 써서 진열해 주었으면 좋겠다.

장식품과 문갑이 행랑채에

행랑채를 돌아보다가 실소를 했다. 행랑채 방 한구석에 놓인 지게 때문이다. 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모조품인 작은 지게가 행랑채 방구석에 떡하니 놓인 것이다. 물론 예전 머슴들이 사용하던 행랑채이다 보면, 어느 머슴이 심심풀이로 만들었다고도 이해를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역사적인 건물은 재미로 전시를 하면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가는 곳이다. 명성황후 생가는 일 년에 유료관객이 25만 명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감고당에 들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나하나에 좀 더 세심한 진열이 필요할 듯 하다.  

재미있으라고 갖다가 놓은 것일까? 그런데 이 지게로 인해 감고당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일까?
▲ 모조품 지게 재미있으라고 갖다가 놓은 것일까? 그런데 이 지게로 인해 감고당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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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슴이 새끼를 꼬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 놓인 문갑은 사랑채에나 있을법한 가구다.
▲ 행랑채 머슴이 새끼를 꼬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 놓인 문갑은 사랑채에나 있을법한 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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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랑채 한편 마루에는 머슴이 새끼를 꼬고 있다. 그런데 그 마루에 놓인 문갑은 양반집 사랑채에나 있을 법한 가구다. 그리고 도자기까지 올려놓았다. 여주는 도자기의 고장이기 때문에 이런 것 하나가 도자기를 선전하는 효과도 있을 수가 있다. 하지만 좀더 세심한 고증을 거쳐 전시를 했다고 하면, 교육적인 효과까지 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조건적인 전시보다, 하나하나 전문가의 고증을 거친 전시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태그:#감고당, #전시품, #고증, #진열,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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