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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년 전, 우리나이로 23세의 한 청년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평화시장에서 일하던 시다 여공들이 배가 고플까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걸어서 집에 가다, 통금에 걸려 유치장에서 자던 청년이었다.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전태일 열사가 자신의 일기에 썼던 '너희들은' 당시 가장 낮은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이들이었다. 40여 년 전, 불쌍한 사람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던 청년의 삶은, 2009년 대학생들을 모이게 했다.

'20대, 전태일을 만나다'

대학생사람연대, 고려대/한국외대/서강대 20대 대안학교 Vita Activa, 성균관대 사회과학학회, 국민대학교, 강남대학교, 서울대, 인천교육대학교 교지, 인하대학교 교지 등, 정말 다양한 학교와 모임에서 39주기 전국노동자대회 참가단 '20대, 전태일을 만나다'를 결성, 그의 가족과 동료들을 만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31일(토) 아침 9:30 동대문역 1번 출구, 주말의 달콤한 늦잠을 마다하고, 전태일을 만나기 위해 30여명의 대학생이 모였다. 이들은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실로 이동, '진실'이라는 전태일 열사의 삶을 다룬 영상을 시청했다. 영상시청이후, 열사를 태일이 형이라 부르는 청계피복노조활동을 하셨던 한 분이 나오셔서 전태일 열사의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전태일 열사가 함께하고자 했던 시다들은, 지금으로 따지자면 비정규직노동자입니다. 전태일열사는 당시에 재단사였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정규직노동자입니다. 전태일열사정신을 계승한 노동운동은 비정규직노동자와 연대하는 정규직노동자운동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못하고 있죠."

많은 대학생들은, 이 말에 공감했다. 전태일 열사가 보여준 타인에 대한 사랑과 휴머니즘은 시대를 초월하여 지지받을 수 있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열사의 '분신'과 '죽음'보다는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삶과 뜻이야말로 오늘날의 대학생들이 진정으로 배우고자 했던 것이다.

시청각교육을 마치고 대학생들은 모란공원으로 이동했다. 비가 내렸지만 대학생들은 멈추지 않았다. 모란공원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는 다음과 같은 당부가 이어졌다.

"사람의 죽음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모두가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열심히 살다 돌아가셨다는 점에서 모두 같다. 그래서 전태일 열사뿐만 아니라 모란공원에 있는 다른 열사들 역시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열사들이 다 내 또래라는 사실에 놀랐어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대학생들이 열사의 묘역을 둘러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 모란공원 비가 내리는 가운데, 대학생들이 열사의 묘역을 둘러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 대학생사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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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공원입구 앞에 모인 대학생들은 묵념을 하고, 어색하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처음 불러보는 대학새내기친구들도 많아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유래와 의미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어색해하던 친구들도, 광주 5.18에서의 박기순 윤상원열사의 삶과, 열사들에 대한 예의로 산자들이 부르는 노래라는 설명을 듣고 이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성균관대학교에서는 김귀정열사, 서울대학교 박종철열사를 둘러보는 등, 참가한 대학생들의 학교선배들을 만나보는 시간도 가졌다. 1995년 11월 노점철거에 저항하기 위해 망루에 올랐다가 변사체로 발견된 이덕인 열사의 묘도 있었다. 용산참사에서 보듯 열사가 돌아가신 지 10년도 더 지났지만, 철거에 의한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모두가 그의 죽음과 변화지 않는 현실에 숙연해졌다. 아직 대학생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이 날 행사에 참가한 이리나 학생은(고려대 간호학과 08) 열사들 대부분이 자신의 또래라는 사실에 놀랐다.

"열사들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이잖아요.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신기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요즘에도 용산참사와 같이 우리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일들이 많잖아요.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고 앞으로는 더 많은 것들을 보고 고민 해야겠어요."

모란공원을 나와 당초 전태일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를 뵙기로 했지만, 몸이 좋지 않으셔서 만남은 취소됐다. 비가 오는 날이면 몸을 움직일 수 없으시다고 한다. 아들의 뜻을 잇기 위해 노동운동에 투신, 경찰로부터 받은 폭행과 고문의 후유증이 축적된 결과였다. 실망보다는 안타까움과 현실에 대한 씁쓸함이 컸다.

  "용기와 열정, 패기 없으면 젊은이가 아니에요"


박종철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유가협을 찾은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박정기씨 박종철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유가협을 찾은 대학생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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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최 측의 배려로 대학생들은 유가족협의회에 들려, 박종철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를 만날 수 있었다. 87년 대학생 아들을 잃었던 박정기씨는 20여년이 지나서도 열사들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대학생들을 보면 어떠하시냐는 물음에 '반갑지요'라고 웃으면서 대답하셨다. 그리고 하실 말씀이 있으셨던지 민주화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민주화는 끝이 없어요, 끊임없이 투쟁해야 하는 것이지. 한계라는 게 없어요. 이 일하다보면 1년 12달이 추모 사업이에요. 그래서 몇 년 쯤 지나서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하다가도, 미래를 위해서 멈출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나이가 먹어도 용산참사현장도 가고, 계속 운동하는 거에요."

그러한 운동을 계속해오면서, 그 길의 힘듦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박정기씨는, 만만치 않은 삶임을 지적하셨다. 그래도 그것이 옳은 것이고 진실이라면 계속해나가야 한다 라고 힘주어 말하셨다.

"우린 힘 닿는데까지 하는 거지, 이젠 민주화의 몫이 젊은이들에게 넘어갔지요. 우리는 지켜 보는 거고. 그게 힘들고 두려워도 뚫고 나가는 패기와 열정이 있어야지. 그런 게 없으면 젊은이가 아니야."

민주화에는 끝이 없다는 말, 그리고 그 몫이 이제 20대 대학생들에게 넘어갔다는 말, 그리고 열정과 패기가 없으면 젊은이가 아니라는 말, 모두 참가한 대학생들의 가슴을 흔드는 말이었다. 부끄러움과 희망이 교차했다. 청년이 아닌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뻘의 분이 이렇게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대학생들은 힘찬 박수를 쳤다.

'20대, 전태일을 만나다'에 참가한 대학생들은 그렇게 새로운 희망을 만났다. 전태일 열사가 그랬던 것처럼, 현재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휴머니즘을 가지는 것,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것, 그것이 오늘 20대들이 전태일과의 만남을 통해 얻어간 전태일정신이다.

유가협을 찾아온 대학생들과 박정기씨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20대, 전태일을 만나다 유가협을 찾아온 대학생들과 박정기씨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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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peoplefor와 다음뷰에도 송고하였습니다.
필자는 대학생사람연대 대표입니다.



태그:#전태일, #박정기, #대학생사람연대, #유가족협의회, #대학생사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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