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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큰아이는 고등학교 3학년이다. 수능을 10여일 앞 둔 지금,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아이는 고3이라는 무거운 짐 위에 농촌이라는 열악한 환경을 극복해야 하는 부담까지 짊어지고 매일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태풍 같은 신종플루까지 기승을 부린다. 아이의 건강을 염려하며 옆에서 지켜보는 나조차도 가끔은 숨을 쉴 수가 없을 만큼 고통스럽다. 아이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대천에서 가족모임을 가졌다.  바닷가에서 힘차게 뛰어노는 조카들의 귀여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 땅의 고3생들이여, 더 높은 꿈을 향해 힘차게 뛰어라.
▲ 꿈을 향해 뛰어라 대천에서 가족모임을 가졌다. 바닷가에서 힘차게 뛰어노는 조카들의 귀여운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 땅의 고3생들이여, 더 높은 꿈을 향해 힘차게 뛰어라.
ⓒ 이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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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년 내내 아이를 지켜보며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어찌보면 황금 같은 청춘의 시간들, 그 귀한 시간들을 오로지 공부라는 굴레에 갇혀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마음의 부담 때문에 가족행사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고 혼자서 책 속에 묻혀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난다.

사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좋은 대학을 나와야만 성공한 인생이냐?"고 스스로에게 반문하면서 내 딸은 고등학교 시절을 갇힌 새처럼 보내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씩 가족여행을 하고, 노래방도 가고, 나름대로 가족이 누려야 할 소중한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현실은 쉽게 내 뜻대로 실천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여느 인문계고등학교가 다 마찬가지겠지만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공부해야 하는 아이를 데리고 여행 가고 노래방 가고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이가 마음의 부담 때문에 그런 시간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의 일이다.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1학기 말 기말고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아이가 갑자기 노래방엘 가고 싶다고 했다. 예전 같으면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가족과 함께 노래방도 가고,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하고, 영화를 보는 등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을 자주 만들었었다. 그러나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실천하지 못했다. 노래방에 가고 싶다는 아이의 말이 얼마나 고맙던지, 우리 가족은 정말 오랜만에 시내에 있는 노래방으로 향했다.

마이크를 잡아든 아이들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땅이 꺼져라 온몸을 흔들어댔다. 옆에서 지켜보다가 깜짝 놀랐다. 언제 우리 아이들이 저런 모습이었나? 싶을 정도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습이다. 자리에 앉아 박수를 치며 아이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남편과 눈이 마주쳤다. 그도 꽤 놀란 눈치다. 평소에 차분하게 노래 부르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치 무슨 발광을 하는 듯한 아이들의 모습이 그 순간 신나기는커녕 왜 측은하게 느껴졌을까.

작은아이가 혼자서 노래를 부르는데 큰아이가 옆으로 오더니 귓속말로 속삭인다.

"엄마, 나 이런 모습 처음 봤지?"
"친구들에게도 내 이런 모습 안 보여줬는데 오늘 엄마, 아빠랑, 동생이랑 오니까 마음도 편하고 나도 모르게 신나게 춤추게 되네, 너무 놀라지 마세요?"

사실 놀랍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다. 이렇게라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노래도 참 잘 부른다. 최신식 노래를 무리 없이 소화하며 가창력을 뽐내는 아이들, 그들을 바라보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가슴 벅차고 행복하다. 오늘 이 순간만큼은 일상에서 벗어나 그동안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리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3인 언니와 함께 지내면서 중3인 작은아이도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벌써부터 숨이 막히는 듯 작은 아이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심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도대체 하기 싫은 공부를 왜 해야 되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왜 하필 농촌에서 살고 있느냐고 원망을 섞어 보내기도 한다. 결코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고서는 "엄마 죄송해요, 열심히 공부 할게요"라는 문자를 보낸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이다.

언제쯤 맘 편하게 놀 수 있느냐고 펑펑 눈물을 쏟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안아주는 일뿐이다. 그러면서도 밤늦게까지 언니와 공부를 하는 아이, 언제쯤 아이의 바람대로 신나게 놀고 자신의 끼를 발휘하며 아름다운 청춘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얼마 전의 일이다. 큰딸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수능을 한 달 남겨두고 모의고사를 봤는데 무려 70점이나 성적이 올랐다는 것이다. 한 과목당 평균 10점 정도 올랐다며 이렇게 성적이 오를 줄 몰랐다는 것이다. 너무 성적이 안 나와서 내심 큰 걱정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 역시도 모의고사 성적이 너무 안 좋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입시지옥이다 뭐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많은 아이에게 나까지 부담을 줄 수 없어 내색은 하지 않았다. 다만 힘들어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고3시절 최선을 다해 달라는 말로 대신하였다.

딸아이는 이상하게도 모의고사 성적이 저조했다. 언젠가 하도 모의고사 성적이 안 나와서 물어보았는데 주어진 시간 안에 문제를 다 풀지를 못한다고 했다. 아무리 빨리 풀려고 해도 잘 안 된다고 했다. 주어진 지문을 다 읽고 문제를 풀다 보면 다 풀기도 전에 끝나버리기 때문에 자신도 너무 너무 답답하다며 가슴을 친다.

이 일을 어째... 걱정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문제를 못 푸느냐고 물었다. 딸의 대답은 심각했다. 뒷장을 거의 못 풀 때도 있다며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딸아이의 눈망울에 눈물이 글썽인다. 학원이나 과외를 변변히 시키지 못한 게 여간 후회스럽지가 않다. 남들처럼 학원이나 과외를 꾸준히 시켰더라면 지금, 딸이 알고 있는 문제를 시간 안에 풀지 못해 애태우는 일은 없었을텐데. 이 모두가 엄마인 내 잘못 같아 가슴이 답답하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시간 안에 풀 수 있도록 연습을 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노력하겠다고 한다. 아빠는 잘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EBS를 들어서라도 알고 넘어가야 함을 강조했다. 가끔씩 늦은 밤, 학교에서 돌아와 힘들다며 내 가슴에 얼굴을 묻는 딸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다. 이불을 덮어주며 오늘은 일찍 자라고 하면, 조금만 더 하고 잔다며 슬그머니 일어나 책상머리에 앉아 졸고 있는 딸의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그럴 때면 나 자신도 수험생처럼 느껴져 애가 탄다. 내가 대신 공부해 줄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큰 아이는 서울의 일류대학을 꿈꿀 만큼 실력이 높지 않다. 그저 평범한 농촌의 고등학교 학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3이라는 짐은 너무 버겁기만 하다. 공부를 잘 하고 못하고를 떠나 고3이라는 자체가 이 땅의 아이들에게 큰 짐이고 상처라 생각한다. 그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또 그들의 부모가 겪어야 할 마음고생은?

며칠 전 밤 10시경,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춥다며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심한 기침까지 하며 힘겨워 하는 딸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밤을 꼬박 새웠다. 신종플루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우려를 안고 아이를 간호하며 내 가슴이 다 타는 줄 알았다. 아파 누워 있으면서도 공부걱정을 하는 아이의 모습을 애타게 바라보며 나 또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열은 그리 높지 않았고 조제한 약으로 치료가 되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건강이다. 건강이 무너지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살피는 것이 아이의 기분이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지, 몸 상태는 어떤지, 마음은...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저 아이의 몸과 마음이 덜 힘들도록 배려하는 일 외엔 아무것도 해 줄 게 없다. 그저 하루 빨리 수능이 끝나고 아이의 마음에 여유가 생겨 몸도 마음도 자유로워질 수 있으면 좋겠다. 대학은 아이의 수능성적에 맞추어 스스로 선택하게 할 생각이다. 아이의 심성으로 보아 어느 대학을 가든지 대학에서도 나름 최선을 다하리라 믿기 때문이다.

혹 수능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좌절하거나 생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정말로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인류대학을 가는 것만이 반드시 성공의 길은 아니기에 수능성적에 목을 매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고3 수험생의 엄마인 나는 딸이 얻은 결과에 무조건 만족할 것이다. 수능결과가 좋지 않아 비록 이름 없는 대학을 갈지라도 결코 실망하거나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긴긴 시간을 나름 최선을 다한 딸이기에 나는 너를 믿고 기다릴 것이다.

"딸아~ 엄마는 무조건 너를 믿어. 그러니 너무 부담갖지 말고 최선을 다해주렴."
"사랑한다 딸아~~~~"
"수능이 끝나고 후련해 할 네 모습이 벌써 부터 기다려진다. 결과에 상관없이 수능이 끝난것을 기뻐하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보자. 사랑해..."

수능이라는 고지를 향해 여기까지 잘 참고 견뎌온 딸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땅의 고3 학생들 모두에게 끝까지 힘내라고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결과가 어떻든 최선을 다한 내 딸과 그대들에게 말하고 싶다. 세상을 향해 힘껏 날아올라 또 다른 꿈을 꾸라고.


태그:#고3, #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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